‘내 탓이로소이다’는 항상 상대편의 입장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내가 배신을 당해도 나를 배신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사건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저절로 ‘내 탓이로소이다’가 됩니다. 매사 ‘내 탓이로소이다’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깨달음입니다. 신비한 능력이고,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나를 배신한 사람 앞에서도 평강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내 인생에 반드시 보복해야 할 일이 있어도 그렇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다 예수님의 배를 타고 항해 하기에 하나님이 다 처리해 주실 줄 믿습니다. 최고의 보복을 해 주실 것입니다. 사람은 결코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랑의 대상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사랑하기에 기회가 와도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도 이런 지혜가 필요합니다. 큰일을 행하려면 사람을 분별하는 능력이 필수입니다.
김양재 – 위기!입니다
부흥은 하나님이 인간을 캐스팅하심으로 이뤄진다. 에덴동산의 아담은 흙에서 생기를 불어넣어 만드셨고, 하와는 아담을 잠들게 한 뒤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만드셨다. 하나님이 인간을 캐스팅하셨다. 모든 기독교 가문의 선조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 곱과 요셉도 하나님의 캐스팅이다. 부흥은 가문을 따라 전이되고, 확산되고, 증가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이 이어지듯이, 한국의 부흥자들 역시 부흥의 불을 따라 전이되고, 확산되고, 증가된다. 부흥을 경험한 사람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하늘에 닿아 있는 듯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이다. 급진적인 겸손, 하나님께 동의하는 것, 구름 같은 증인들의 메아리, 부서진 세상에 드러나는 주님의 뜻 같은 말들이다. ‘부흥은 생명이 살아나는 것이다!’ 성령 하나님이 마음에 감동을 주신다. 하나님은 시대를 세우기 위해 매 순간 사람을 캐스팅하신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한순간도 허비하지 않으신다. 81억 인류 중에 반드시 오늘 성령 하나님에게 반응하는 단 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
윤학렬 – 부흥
지난 2천 년 동안, 기독교의 상징은 ‘생명’이 아니라 ‘죽음’을 뜻하는 십자가가 되었다. 그 죽음은 비극이나 사고가 아니었다. 십자가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다. 구유에 누인 작은 아기는 궁극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오셨다. 우리는 가족이 필요한 외로운 사람들, 집이 필요한 난민들, 자유가 필요한 노예들, 먹을 것이 필요한 가난한 이들, 정의가 필요한 억압받는 이들로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다. 예수님의 오심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섬기라는 예수님의 초대이자, 부르심이다. 예수님에게 우리의 섬김이 필요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하나님으로서 예수님은 완전한 분이며, 우리에게 어떤 것도 의존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우리가 그분을 필요로 한다.
데이비드 플랫 - 예수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