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말하는 가장 큰 특권이자 복은 ‘무엇을 가지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보느냐’에 있다. 신간 <영광의 그리스도>는 바로 이 지점을 정면으로 파고든다. 17세기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의 고전 <그리스도의 영광>에서 깊은 감동을 받은 저자가, 오늘의 독자들이 성경 속에서 다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도록 돕는 그리스도론 묵상서다. 단순히 교리를 정리하는 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마음과 감각과 사유 전체로 누리게 하는 책”을 목표로 삼는다.
저자는 무엇보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최고의 기쁨이자 면류관이 되어야 한다”는 확신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교회에 오래 다녔지만 그리스도를 한 번도 삶의 중심에 두어 본 적 없는 이들, 그리스도를 닮으려 애쓰지만 반복되는 실패 앞에서 지친 이들, 처음으로 예수를 흠모하기 시작한 새 신자, 심지어 그리스도에 대한 첫사랑을 잃어버린 신자와 회의론자들까지도 염두에 둔다. 이 책은 교리 강의나 신학 교과서라기보다, 각자가 처한 자리에서 “다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그 영광 안에 안겨 보라”고 초대하는 안내서다.
책의 토대는 단순하다. 태초에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나, 죄로 인해 그 형상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좌절과 나약함 속에서 살아온 우리도 결국 주 예수님처럼 될 것”이라고 말하며, 그 변화가 그리스도인의 의지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가 이뤄내는 기적”임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실패를 되돌리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다시 빚으신다. 곧, 구원은 죄의 사면에서 끝나지 않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재창조의 여정이라는 것이다.
책에서 반복되는 핵심은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 곧 가장 큰 선물”이라는 관점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아버지의 영광을 보도록 아버지께 구하셨고, 그리스도인이 그 영광을 보는 길은 곧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데 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9절의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고린도후서 4장 6절의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과 같은 구절을 토대로, 저자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할 때 그 생각 자체가 우리를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은혜의 통로”라고 설명한다. 영광을 바라보는 것이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를 빚어 가는 능동적인 사건이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영적 침체에 빠진 독자도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도도 잘 되지 않고, 예배와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가 멀게 느껴지는 이들을 향해, 그는 아가서를 떠올리게 하며 “그리스도를 찾는 일을 포기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기도와 묵상, 애통 가운데 그리스도를 찾아 나서는 사랑의 여정이 영적인 회복의 길이라는 것이다. 말씀을 읽고 듣고, 공예배와 개인 예배에 성실히 참여하며, 작은 순종을 계속 쌓아가는 그 자리가 결국 “그리스도께서 다시 찾아오시는 자리”가 된다고 격려한다.
<영광의 그리스도>가 특별한 이유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매우 구체적이고 인격적으로 묵상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저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의 본성을 취하신 것보다 더 큰 일이 없다”고 단언한다. 그분께는 아무런 이익도 돌아가지 않는, 철저히 이타적인 자기 비움의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로부터 기꺼이 얼굴을 돌리시고, 그 아들을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주셨으며, 다시 살리시고 높이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게 하신 모든 은혜의 준비를 하나하나 떠올리게 한다. 독자는 이 과정을 따라가며 ‘복음’이라는 단어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새롭게 마주하게 된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 세밀하게 즐기라”고 제안한다. 영광의 주,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 나를 위해 기꺼이 죽으셨다는 사실, 영원 전부터 나를 향해 흘러온 지혜와 선하심과 은혜의 자취를 스스로에게 차분히 설명해 보라고 권한다. 이는 단순한 감상적 자기 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되새김으로써 마음과 생각이 서서히 그 사랑에 맞게 조율되는 훈련이다. 그렇게 할 때, 그리스도의 영광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오늘을 지탱하는 실제적인 기쁨과 위로가 된다.
이 책의 또 하나의 강점은 ‘공동체적 읽기’를 의도했다는 점이다. 각 장 끝에는 토론용 질문이 실려 있어, 개인 묵상은 물론 소그룹이나 교회 공동체에서 함께 나눌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서 함께 그리스도의 영광을 발견하고 나누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 상상력과 사색을 총동원해 함께 질문하고 대화하다 보면, 책 한 권을 넘어 공동체의 영적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영광의 그리스도>는 믿음의 여정 어디에 서 있든 “결국 신앙의 중심은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사실로 독자를 다시 이끈다. 무엇을 해냈는지, 얼마나 실패했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그리스도를 한 번도 자신의 중심에 두지 못했던 사람에게는 처음으로 그분을 ‘면류관’으로 모시는 초대가, 그리스도를 닮으려다 포기한 이들에게는 다시금 은혜 안에서 일어설 용기가, 식어 버린 첫사랑을 잃어버린 이들에게는 영광의 주님을 다시 바라보라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부름이 될 것이다.
영광의 그리스도를 깊이 바라볼수록, 신자는 점점 더 자신을 덜 보고 그리스도를 더 보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신앙의 회복과 변화의 비밀이 시작된다. 이 책은 그 첫걸음을 떼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눈을 들어 그리스도의 영광을 다시 보라고 권하는 따뜻하지만 단단한 동행자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