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나란히 국빈 방한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한국으로 쏠리고 있다. 세계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두 정상이 6년 만에 다시 대면하게 되면서, 미중 무역 갈등이 고조된 현 시점에서 어떤 외교적 돌파구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백악관이 26일 공개한 일정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와 일본 방문 일정을 마친 뒤 오는 29일 부산 김해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해 1박 2일간 방한한다. 그는 29일 오전 이재명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APEC CEO 오찬에서 기조연설을 진행하고 같은 날 저녁에는 각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실무만찬에도 자리할 예정이다.
이번 방한 기간에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첫 미중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오전 시진핑 주석과 양자 회담을 가진 뒤 당일 워싱턴DC로 출발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그는 31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APEC 본행사에는 불참하게 된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은 30일부터 내달 1일까지 방한할 예정이다. 그는 30일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을 가진 후, 다음 날부터 APEC 정상회의 본행사에 참석하며 회의 종료 후에는 이재명 대통령과 별도의 양자 정상회담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APEC 의장국인 중국은 이번 회담 말미에 한국으로부터 의장직을 인계받을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대면은 2019년 일본 오사카 G20 정상회의 이후 6년 만이다. 이번 경주 회담으로 인해 한국이 다시금 국제 외교의 중심 무대로 떠오르고 있으며, 미중 정상이 동시에 방한하는 것은 2012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이후 13년 6개월 만이다. 두 정상 모두 국빈 자격으로 방문해 의장대 사열, 공식 환영식, 국빈 만찬 등 최고 수준의 의전을 받을 예정이다. 특히 미중 정상이 지방 도시에서 국빈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로, 일정의 간소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최근 다시 격화된 미중 무역 분쟁 때문이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맞서 100% 추가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으며, 미국은 중국을 겨냥한 소프트웨어 수출 규제도 논의 중이다. 이번 회담에서는 희토류 공급 문제를 비롯해 미국산 대두 수출, 핵 군축 등 다양한 경제 및 안보 현안이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 기자들에게 “시 주석과 상당히 긴 회담이 예정돼 있다”며 “우리는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최소한 희토류 문제에서는 합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관세는 희토류보다 더 강력하다”고 덧붙이며 협상의 여지를 시사했다. 이에 따라 이번 경주 회담이 미중 관계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미중 정상회담의 개최 장소로는 보안상의 이유로 부산 김해국제공항 인근 공군기지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번 APEC을 통해 미국과는 역대 최단 기간 내 정상 간 상호 방문을 완성하고, 11년 만에 중국 정상의 국빈 방문을 통해 한중 관계 복원의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