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중간사를 넘어서

[신간] 제2전성기
도서 「제2전성기」

“신약의 배경사가 아니라, 구약의 완성기이자 신앙의 응집기.” 신간 <제2전성기>는 그리스도인이 너무 쉽게 지나쳐 버린 ‘신구약 사이의 시간’을 새롭게 조명한다. 저자 김근주 목사(일산은혜교회)는 흔히 ‘신구약 중간기’라 불리던 이 시기를 ‘제2성전기(Second Temple Period)’라 명명하며, 그 이름에 담긴 깊은 역사적·신학적 의미를 되살린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귀환자들이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운 주전 516년부터, 로마 제국이 예루살렘을 파괴한 주후 70년까지 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진 ‘제2성전기’는 단순한 공백기가 아니다. 그것은 구약의 신앙이 응집되고, 신약의 복음이 잉태된 시간이었다.

■ “성경은 하늘에서 떨어진 책이 아니다”

저자는 “구약성경은 하늘에서 단번에 떨어진 책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책이다. 그들의 절망과 희망, 회개와 해석의 과정 속에서 구약은 태어났다.”라고 말한다.

책은 포로기 이후의 이스라엘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바빌론의 포로, 성전의 파괴, 민족의 분열은 그들에게 깊은 상처였지만 동시에 신앙의 전환점이었다. 그들은 멸망을 ‘하나님의 징계’로 이해하며 과거를 성찰했고, 그 속에서 새로운 말씀을 정리하고 편집하며 구약성경의 정형을 세웠다.

이 시기, 예레미야애가와 에스겔, 학개와 스가랴, 에스라-느헤미야와 같은 책들이 탄생했다. <제2전성기>는 각 책이 어떤 역사적 상황 속에서 형성되었는지를 섬세하게 추적하며, 구약이 단일한 신앙 문서가 아니라, 치열한 현실 속에서 형성된 ‘살아 있는 신앙의 기록’임을 보여 준다.

■ 제국의 시대, 변화 속에 지켜 낸 믿음

제2성전기의 무대는 바빌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등 거대한 제국들의 연속이었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제국의 그림자 아래 있었고, 그 속에서 신앙은 끊임없이 시험받았다. 저자는 “신앙은 시대 변화와 결부된다. 시대 변화가 신앙의 특정 부분을 부각시키며, 그렇게 부각된 신앙이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한다.”라고 말한다.

이 시기, 이스라엘의 신앙은 성전 중심의 집단적 예배에서 개인적 신앙으로 이동했다. 성전이 무너지고, 포로의 삶이 길어지자, 그들은 음식 규례와 절기, 할례와 같은 외적 표지를 통해 신앙을 지켜 나갔다. 이러한 ‘외적 신앙의 강화’는 단순한 형식주의가 아니라, 신앙을 지키려는 절박한 몸부림이었다.

그 속에서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와 같은 다양한 유대 공동체가 등장했고, 쿰란 공동체의 기록들과 묵시문학이 태어났다. 저자는 이 다양성이 단순한 분열이 아니라 신앙의 역동성이라고 강조한다.

■ “신약은 제2성전기의 기다림에서 피어난 꽃”

저자는 <제2전성기>를 통해 구약과 신약을 잇는 신학적 다리를 제시한다. 예수의 복음은 제2성전기의 기다림 위에서 피어난 꽃이었다. 그 기다림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신앙의 응축과 변화를 거친 기다림이었다. “신약은 구약의 완성이며, 구약은 제2성전기에서 응집되었다. 그러므로 제2성전기를 이해하지 않고는 신약의 복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주후 1세기 중반, 아직 ‘신약성경’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붙잡았던 성경은 오직 구약이었다. 예수 역시 구약의 율법과 예언을 근거로 말씀하셨다. 따라서 신약의 세계는 구약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두 성경 사이를 이어 주는 결정적 다리가 바로 제2성전기라는 것이다.

■ 열린 책, 열린 신앙

<제2전성기>의 마지막 장은 외경(Deuterocanonical books)에 대한 논의로 마무리된다. 저자는 외경을 단순히 ‘정경이 아닌 책’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외경을 신앙의 경건서적, 시대와 공동체가 만들어 낸 ‘열린 책’으로 평가한다.

“고대의 신앙은 닫힌 경전이 아니라 열린 해석의 체계였다. 공동체가 책을 만들고, 책이 공동체를 바꾸었다.” 이 통찰은 오늘날 교회에도 던지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신앙은 완결된 문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시대를 해석하고 응답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신학적 지도

<제2전성기>는 단순한 역사 개론서가 아니다. 그것은 잊힌 시대의 신앙을 복원하는 ‘신학적 지도’이며, 구약과 신약 사이에 놓인 공백을 하나님의 섭리로 엮어내는 ‘해석의 여정’이다.

한국 교회가 여전히 “신구약 중간기”라는 낡은 구분에 머물러 있다면, 이 책은 그 개념 자체를 리셋하며, ‘제2성전기’를 통해 복음의 연속성을 새롭게 깨닫게 한다.

무너진 성전, 포로의 땅, 제국의 억압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하셨고, 그 말씀은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제2전성기>는 바로 그 “하나님이 침묵하지 않으셨던 시간”을 기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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