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다스리는 장로를 배나 존경하라”(딤전 5:17)
사도 바울은 목회서신에서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딤전 5:17)고 말씀한다. 여기서 장로는 두 부류로 나뉜다. 잘 다스리는 장로는 교회를 다스리고 권징과 질서를 세우는 역할을 맡은 장로이고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장로는 말씀 선포와 교리 교육에 전념하는 장로이다.
장로교회는 이 말씀에 근거해, 말씀 선포와 성례 집례, 교리 교육을 담당하는 가르치는 장로(목사)와, 교회의 질서 유지와 행정, 권징에 참여하는 다스리는 장로(평신도 장로) 제도를 두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두 장로는 본질적 권위 면에서 차별이 없으며, 다만 사역의 초점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성경은 장로와 목사의 자격을 동일하게 규정한다(딤전 3장, 딛 1장). 그러나 한국교회는 장로교와 감리교, 심지어는 평신도 중심 교회인 침례교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담임목사 중심이기 때문에 장로들이 담임목사에 종속되는 경우가 많다.
한편, 대한민국 민법은 교회를 대체로 비법인사단으로 본다. 따라서 장로라는 직분은 국가 법률상 특별한 공적 자격을 갖지 않는다. 장로는 교회의 정관과 규칙에 따라 세워지는 내부 직책일 뿐, 법적으로 가르치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를 구분하지 않는다. 법적 대표권은 장로 개인이 아니라 정관상 대표자인 담임목사에 속한다.
그러나 장로가 당회의 일원으로 교회의 재정과 운영 의사결정에 참여한 경우, 그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있었다면 민·형사상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법은 장로의 권위를 영적 의미로 인정하지 않지만, 직책 수행에서 발생하는 책임은 일반 국민과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신약성경은 장로를 세우는 절차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지만 몇 가지 원리를 보여준다. 첫째는 사도들의 위임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각 성읍에서 기도와 금식 가운데 장로를 세웠다(행 14:23). 둘째는 자격의 강조다. 디모데전서 3장과 디도서 1장은 장로가 반드시 신앙과 도덕적으로 흠이 없고, 가정을 잘 다스리며, 바른 교훈으로 성도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장로는 단순히 다수결 투표의 산물이 아니라, 영적 자격과 소명에 의해 세워져야 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는 장로를 교인들의 투표로 선출한다. 이는 교회 공동체가 장로의 지도력에 신뢰를 보낸다는 점을 확인하는 장치가 되며, 민주성과 공동체적 참여를 보장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선거 과정이 정치적 경쟁 구도로 변질되면 교회 안에 파벌이 형성되고, 당선·낙선 결과로 인해 서운함과 불신이 쌓여 교회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장로 선출을 둘러싼 갈등이 법정 소송으로 번진 사례도 적지 않다.
교인총회의 신임투표로 장로 지위를 상실한 자가 총회결의 무효소송을 제기한 사건에서, 법원은 원칙적으로 국가기관은 교리적 분쟁에 개입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시무장로가 교회의 항존직원이자 당회의 구성원이라는 점에서 그 지위는 교회의 신앙적 정체성과 밀접히 관련된다고 판시하였다. 결국 장로직을 둘러싼 분쟁은 단순한 법적 절차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정체성과 신앙에 깊이 얽혀 있는 사안으로 본 것이다.
이러한 무익한 분쟁을 예방하려면, 역사가 깊은 교회들은 교회 원로들이 기도 가운데 장로 후보자를 추천하고 당회와 교인총회의 인준을 받는 방식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한다. 이는 선거의 정치화를 막고, 성경적 원리에 더 가까운 장로 세움의 길일 수 있다.
성경은 “잘 다스리는 장로를 배나 존경하라”(딤전 5:17)고 교훈한다. 장로의 권위는 법적 지위나 투표 결과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섬김과 말씀, 그리고 책임 있는 지도력에서 비롯된다. 이것이야말로 교회 안에서 장로 직분이 차지하는 진정한 지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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