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우신 최초의 공동체였다. 교회와 함께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가정을 20세기 최고의 부흥사였던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은 ‘작은 교회’라고 했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무너지고 디아스포라 상태일 때도 여호와 신앙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한 중심이 가정이었고, 안식일 준수나 유월절 등 절기 만찬이나 예전이 이루어진 곳도 대부분 가정이었다.
그러니 가정은 회당보다도 더 중요했다. 중심은 부모, 아버지가 가정의 제사장이 되어 신앙을 계승하고, 안수 기도로 자녀들을 축복하고, 아내와 함께 마치 랍비처럼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으로 살도록 가족들을 세웠다. 신명기 6장에 나오는 유명한 쉐마교육을 보면, “이스라엘아 들으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4-7절), 부모의 역할을 분명히 밝혔다.
가정은 유대인들에게 국가보다 더 소중했다. 국가가 무너져도 끝까지 살아남고, 가정에 의해 신앙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시편 127편과 128편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정의 소중함과 신성함을 일깨워주는 대표적인 시편이다. 127편이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는 가정을 위한 노래였다면 128편은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가정을 위한 노래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가정의 모습을 한 폭의 그림처럼 묘사했다. 구성은 두 문단, 4절이 1절 내용의 반복이기에 주제 구절은 1절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으로 사는 가정은 복될 것이라는 말씀이고, 2-3절과 5-6절은 주제에 따른 축복이다. 가족들이 그림 같이 아름답게 가정을 세우는 모습을 노래한 거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이 시 128편을 특별히 좋아하며 ‘결혼의 노래’(Married Song)라고 불렀다. ‘복된 가정을 위한 노래’라고 제목을 붙여본다.
수고한 보람을 누리는 가정
시인은 “네가 네 손으로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2절)라고 노래했다. 가정이 무엇보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배곯은 흥부 아이들이 한 이불에 누워있는 모습을 복된 모습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꿈꾸던 하나님 나라는 대단한 나라가 아니었다. 그저 자기가 수고한 결과를 누리는 삶, 수고한 대로 가족이 함께 먹고살면 된다는 거였다.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왕상4:25), 이게 이스라엘이 꿈꾸던 메시아 왕국에 대한 그림이다. 거창하기는커녕 소박하지 않나?
그런데 이게 중요하다. 욕심내다 망하면 자기가 수고한 대로 먹지 못하기 때문에 욕심은 금물이다. 이스라엘이 그리던 소박한 삶의 모습, 이사야 65장에도 잘 나타난다.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 안에 살겠고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이 건축한 데에 타인이 살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심은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내가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이며”(사65:21-23), 거대한 부나 성공이 아니라 그저 정당한 노동의 대가만 주어진다면 만족, 그걸로 행복하다는 거다.
이게 가정의 본질이다. 가정은 목표가 안정과 행복이라야 한다. 하지만 현대의 가정은 마치 자본주의 체제의 하청 공장 같다고 할까? 가족 모두가 다 온몸에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수고하고, 성공을 위해 가정의 행복을 반납하며 열심히 뛰지만 돈을 뚫어진 전대에 넣으며 사는 것 같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학1:6), 불행이고 비극 아닌가? 수고한 보람을 누리며 사는 가정 되어야 한다.
관계가 아름다운 가정
이어서 시인은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3절)라고 노래한다. 마치 가족들이 축복 가운데 거하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같은 모습이다. 가족들이 아름다운 정원에 생명으로 충일한 나무가 되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연상시켜 준다.
시인은 가정의 모습을 두 나무에 비유한다. ‘결실한 포도나무’와 ‘감람나무’, 하나님이 주시는 풍요를 상징하는 나무들이다. 아내를 이스라엘의 상징인 포도나무에 비유했는데 건강한 출산 능력을 기도한 거다. 볼품없는 포도나무, 꽃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줄기도 볼품없고, 가지도 가늘다. 오죽하면 에스겔 15장이 이런 질문으로 시작될까?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숲속의 여러 나무 가운데 나은 것이 무엇이랴”(2절). 하나님의 말씀인데 제조할 것도 없고, 뭔가를 걸 못으로도 쓸모없고, 그저 땔감에 불과하다는 거다.
하지만 포도나무는 열매가 아름답고, 달콤하고, 풍성하다. 열매가 존재 이유랄까? 열매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도나무를 보며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시인은 복된 가정의 아내의 모습을 생명으로 충만한 ‘결실한 포도나무’ 같다고 했다.
그런데 포도나무는 사람이 도와주지 않으면 열매는커녕 살아남을 수조차 없다. 넝쿨과라 반드시 밑에 받침대와 지지대를 세워 받쳐주어야만 설 수 있다. 그리고 가지치기를 해주지 않으면 열매가 제대로 열리지 않는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아내가 생명으로 충만한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려면 중요한 전제가 있다. 남편의 사랑이다. 남편이 받침대가 되고 지지대가 되어야만 결실한 포도나무가 되는 것, 부부관계가 좋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포도 열매의 특징이 달콤함인데 이게 포도의 매력이다. ‘여자는 가꾸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다. 화장 잘하면 예뻐지고 관리 잘하면 쭉쭉빵빵, 미시족, 몸짱 된다는 의미지만 아내는 남편이 얼마나 소중히 여기느냐에 달렸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남편이 아내를 받쳐주고 지지해주는 매력적인 남편이 되면 아내도 예뻐지고 매력적인 여자, 현숙한 아내, 결실한 포도나무가 된다는 거다. 맞다. 빛 좋은 개살구가 많다. 꽃만 피고 열매 없는 벚나무도 많다. 들포도 되면 먹지도 못한다. 아내가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려면 서로 매력을 느껴야 한다. 그래야 사랑이 유지되는 것, 함께 오래 살았더라도 매력 유지를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
그 집안이 행복한지 불행한지는 그 집안의 여자 표정을 보면 안다는 말이 있다. 기억하라. 여자가 행복하면 반찬이 달라지고, 집안이 깨끗하고, 자녀들도 행복하고, 온 가족들이 옷차림이 달라진다. 결실이 아름답다는 거다. 반대로 여자가 불행하면 반찬에 성의가 없고, 설거지도 대충, 청소도 대충, 아이들은 툭하면 울고, 집안 분위기는 엉망된다. 물론 이건 고대 가부장제 사회의 모습, 지금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맞다. 어쩌면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은 남자”가 필요한 시대일 수 있다. 누가 포도나무가 되든 부부관계가 아름다운 가정이 되어야 한다.
이어서 시인은 자녀의 모습을 ‘어린 감람나무’에 비유했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3절). 감람나무는 하나님의 축복과 평화를 상징하는 나무인데 ‘어린 감람나무’라는 것은 신선함과 활력, 건강하고 유쾌한 삶을 강조한 거다. 늘 잎이 푸른 상록과, 계절과 환경에 상관없이 언제나 같은 색, 그리고 잎이 떨어지지 않는다. 옥토보다는 거친 땅,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나무, 끈질긴 생명력과 긴 수명이 특징이다. 베어져도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또 나올 만큼 인내력과 번식력도 대단하다. 감람산 기슭의 겟세마네 동산에 가면 무려 2천 년이 넘은 감람나무가 있다. 8그루라고 하는데 정확한지 모르겠다. 예수께서 자주 가신 감람산, 예수님 당시에도 있던 나무라면 예수님의 울며 기도하시던 모습도 지켜봤을 거다.
이 나무는 기름이 유명하다. 올리브유, 이건 치료제로, 의식용 기름으로, 아름다운 향신료로, 또 건강한 음식으로 요긴하게 사용된다. 그래서 올리브나무라고도 한다. 하지만 심고 나서 열매가 열리기까지는 7년을 기다려야 하고, 제대로 된 열매는 무려 15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15년이 지나고 뿌리를 튼튼히 내리면 100년, 200년, 수백 년이 흘러도 열매 따는 풍성함을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시인은 자녀들이 어린 감람나무 같다고 했다. 당장 열매를 맺지는 못하지만 앞으로 20~30m되는 큰 나무로 자라듯 크게 자랄 자녀들, 그들이 열매 맺을 가정의 희망이다. 좋은 환경 만들고 충분한 양분을 공급해서 풍성한 생명을 가진, 위대한 가능성을 가진 감람나무가 되게 해야 하는데 아마 가장 좋은 환경은 좋은 부부관계일 거다.
그리고 시인은 특별히 함께 식사하는 것을 언급했다.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3절). 미국 미네소타 대학 연구팀은 가족들이 함께 식사하면 따로따로 식사하는 것보다 균형 잡힌 식사를 하게 된다고 했다. 함께하면 다양한 음식을 충분히 섭취하지만 따로 식사하면 인스턴트 식품 등 불충분하게 먹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또 함께하면 현대인에게 부족하기 쉬운 과일과 채소류 등의 섭취가 늘어나고, 유제품과 현미 등 영양분이 높은 곡물 섭취가 늘어나는 반면에 청량음료나 기름진 음식을 먹는 비율은 크게 줄더라며 최고의 웰빙 식사는 '온 가족이 함께 먹는 것'이라고 했다.
또 이 연구팀은 소아청소년 의학지에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의 장점을 실었는데 1주일에 7회 이상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청소년은 2회 이하로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청소년에 비해 성적이 좋고, 우울증, 음주, 흡연하는 비율도 훨씬 낮더라고 했다. 갈수록 가족과 함께 식사하기 어려운 시대지만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1주에 몇 번이라도 정하면 좋겠다. 먹던 것 다시 데워먹더라도 함께 먹는 게 좋다는 것, 핵심은 관계일 것이다. 기억하라.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관계에 의해 좌우된다. 가시나무 되지 않게 함께 먹고 마시는, 관계가 좋은 가정이 되어야 한다.
복을 계승하는 가정
시인은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5-6절), 복을 계승하는 가정이 되길 노래한다. 가정은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은혜의 통로이자 축복의 통로, 그래서 부모 대(代)에 누린 평강이 다음 대로 이어지기를 노래하고, 당대에 끝나면 안 되는 축복, 내가 좀 고생하더라도 내 자녀가 잘되는 것, 내가 받은 축복이 자손 대대로 내려가기를 기도한 거다.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이었던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는 미국의 청교도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영향력을 끼쳤던 인물이다. 부부가 기독교 원리로 자녀를 양육했다. 그가 죽은 지 약 150년 후에 그의 후손들을 조사한 결과 후손 873명 가운데 대학 총장이 12명, 교수 65명, 의사 60명, 성직자 100명, 군 장성 75명, 저술가 85명, 변호사 100명, 판사 30명, 공무원 80명, 국회의원 5명, 부통령 1명, 그리고 260명의 평범한 신앙인들이 살고 있었다.
반면에 같은 사람이 맥스 쥬크(Max Juke)라는 사람을 조사했는데, 이 사람은 조나단 에드워드와 같은 주일학교에 출석하다가 중간에 교회를 떠나 방탕한 길을 걷고, 믿지 않는 여자와 결혼하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가정을 꾸민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후손 1,292명의 조사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유아 사망 309명, 거지 310명, 불구자 440명, 매춘부 50명, 도둑 60명, 살인자 70명...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이 53명, 너무 대조적이지 않나?
대를 잇는 축복, 천대까지 축복, 받은 복이 후손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6절의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는 장수의 복이고, 가문이 지속되는 복이다. 시편 92편에 보면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12절), 가문의 영광을 백향목에 비유했다. 크기가 40m 정도에 이를 정도 크고 곧은 백향목, ‘신의 삼나무’라 불리며 성전 기둥에 사용되는 멋진 나무다. 하지만 쓸모가 많아서 적당히 크면 곧 베이고 만다.
그래서 감람나무 같은 축복이 좋다. 열매 때문에 중간에 베지 않는 나무, 비바람에도 잘 쓰러지지 않고, 수령도 오래가는 유익한 나무이기 때문이다. 탁월하지 않더라도 건강하고 밝은 자녀, 그들로 인해 가정이 감람나무와 같이 번성하고 행복한 가문이 되어야 한다.
나라가 시끄럽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맹수들은 동족간에는 절대 생명에 치명적인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방울뱀은 무서운 독이 나오는 송곳니를 갖고 있지만 자기들끼리 싸울 때는 이 무기를 절대 사용하지 않고, 사자들도 자신들의 영토 내에서 주도권 쟁탈전을 벌일 때 동족과 치열하게 싸우지만 상대를 죽이거나 중상을 입히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것이 동물세계의 싸움 법칙이다. 그런데 인간은 동족간에 살상의 무기를 사용한다. 상대를 잔인하게 공격해 굴복시킨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위대한 게 있다. 사랑이다. 사랑이 최고의 무기, 인간관계의 성패를 결정하는 열쇠다.
정리한다. 가정은 세상 근심이 사라지고 평화와 위로가 가득한 곳, 실수와 허물은 가려지고 사랑과 만족이 꽃 핀 곳, 아빠에게는 천국, 엄마에게는 온 세상, 아이들에게는 파라다이스 같은, 이런 가정을 만들어야 한다. 용돈 많이 준다고 되는 게 아니다. 자주 놀러 다닌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를 행해야 한다. 그래야 이런 복이 있을 것이라는 128편을 우리의 노래로 삼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같은 멋진 가정 만드시길 축복한다.
인천신기중앙교회 담임 이희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