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형식과 본질 사이에서 AI가 만들어내는 기도의 환상

비자예시 랄 목사. ©x.com/vijayeshl?lang=hu

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비자예시 랄 목사의 기고글인 ‘기도를 모방하도록 학습하는 기계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How should we respond to machines learning to simulate prayer?)를 1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비자예시 랄 목사는 인도 복음주의 펠로우십(EFI)의 사무총장으로 재직 중이며 인도 내외에서 교육, 사회경제적 발전, 옹호 및 연구 이니셔티브에 깊이 관여해 왔다. 또한, 인도의 EFI 출판사 Trust에서 발행하는 월간 잡지 AIM의 편집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지난 2023년 6월, 독일 바이에른주의 한 교회에 300명 이상의 개신교 신자들이 모였다. 그들이 들은 설교자는 다름 아닌 인공지능 ‘ChatGPT’였다. AI는 제단 위 화면에 아바타 형태로 등장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며 회중을 기도와 축복의 시간으로 인도했다. 이 실험적 예배를 직접 보기 위해 사람들은 1시간 넘게 줄을 섰다.

당시 54세의 IT 전문가 하이더로제 슈미트는 예배가 진행될수록 불편함을 느꼈다. 그는 “마음도, 영혼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바타들은 전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31세의 루터교 목사 마르크 얀센은 십대 청소년들과 함께 예배에 참석한 뒤, “생각보다 잘 작동했다”고 인정하면서도 필수적인 감정적 깊이가 부족했다고 덧붙였다.

이 상반된 반응은 오늘날의 불편한 현실을 드러낸다. 우리는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시스템을 만들고 있지만, 그 시스템은 동시에 인간됨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있다.

예배에 참석한 많은 이들은 한 번도 의심하거나, 신앙에 씨름해본 적도, 죽음을 마주해본 적도 없는 알고리즘이 생성한 말에서 영적 의미를 발견했다. 그들은 기도할 수 없는 시스템과 함께 기도했고, 축복을 받을 수 없는 존재에게서 축복을 받았다. AI는 영적 실재는 전혀 경험하지 않으면서도 그 형식을 흉내 낼 수 있기에 성공했다.

이 바이에른 교회에서 던져진 진짜 질문은 “AI가 예배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허용해야 하는가?”이다.

전 세계의 교회들은 이미 기도문 작성, 신학적 질문 응답, 영적 조언 제공 등, 전통적으로 인간만이 하던 일을 AI에 맡기고 있다. AI는 방대한 신학 자료를 바탕으로 그럴듯하고 영감 있는 문장을 만들어내며 이 작업에 탁월하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 없이 믿음의 언어를 생성하는, 순수한 ‘모방’에 불과하다.

헨리 키신저는 생전에 발표한 마지막 저서 ‘Genesis’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지금은 기술이 먼저 현실을 제시하고 인간의 의식이 그것을 해석하고 흡수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진단했다. 신학 영역에서도 이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AI가 먼저 신학 콘텐츠를 생성하고, 인간이 그것을 검증하고 수정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목회자들이 설교문 작성을 위해 AI를 사용하는 순간, 그들은 본질적으로 이익을 우선하는 대기업(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오픈AI 등)과 파트너십을 맺게 된다. 이 시스템들은 인간의 번영이 아닌, 수익성과 시장 점유율에 최적화되어 있다.

따라서 교회는 반드시 물어야 한다. “목회의 어떤 영역은 반드시 인간만이 감당해야 하는가?”
AI의 핵심 개발자 중 한 명인 제프리 힌턴은 2023년 구글을 떠나며 자신이 만든 기술의 미래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는 AI가 조만간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고 인간을 조종할 수 있을 것이라 경고했다. 발전은 우리의 이해 능력을 초월하고 있는 듯하다.

경제적 파장만 해도 실로 엄청나다. 앤스로픽의 CEO 다리오 아모데이는 AI가 향후 5년 내에 초급 화이트칼라 일자리의 절반을 대체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미 노동자의 14%가 AI로 인해 일자리를 잃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체성의 위기다. 대부분의 문화에서 “무슨 일을 하시나요?”가 자기소개 첫 질문인데, 일의 의미가 사라지면 인간 존재의 가치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는 새로운 질문에 직면한다. 인간 목회의 고유성은 어디에 있는가?
AI가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고, 신학적 조언을 제공하고, 공동체를 효율적으로 조직할 수 있다면, 인간 목회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나는 기계보다 나은가?”라는 질문을 더 자주 던지고 있다.

현행 AI는 의식도, 도덕적 판단도, 영적 감수성도 없다. 그들은 데이터를 조합할 뿐이며, 신학적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생성한다. 기독교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존재이며, 구속과 회복을 경험할 수 있는 존재다. AI는 그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실천적 과제는 여전히 남는다. 기계가 의식과 신앙을 흉내 낼 수 있고, 사람들에게 실제로 위로와 의미를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진짜 경험인가, 아니면 정교한 모방에 불과한가?

AI는 성경 번역, 데이터 분석, 설교 작성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효율성의 이면에는 진정성이 희생될 수 있다. 번역의 뉘앙스, 성경 본문과 씨름하는 과정, 관계적 상담의 맥락 등은 AI가 흉내 내기 어려운 영역이다.

성육신은 이 긴장을 해석하는 열쇠다. 하나님은 거리를 둔 최적화된 방식이 아니라, 몸소 찾아오시는 관계적 방식을 선택하셨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사랑과 공감, 희생을 몸소 보여주셨다. 이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어떤 목회는 위임할 수 있고, 어떤 사역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가?

AI가 발전할수록, 인간다움의 가치는 더욱 소중해진다. 오늘날의 교회가 진정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고유한 가치인 공감, 침묵, 눈물, 기도 속 분별력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이 질문 앞에 선다. “AI를 통해 의미를 발견했다면, 그것은 진짜인가?” “하나님은 AI를 통해서도 말씀하실 수 있는가?” 성경은 “돌들이 소리치리라”(눅 19:40)고 했다. 하나님은 수단에 매이지 않으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AI가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이다. AI는 진짜 신앙, 진짜 관계, 진짜 회개의 자리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 그 자리는 인간만이 설 수 있는 자리이다.

바이에른의 그 교회에서 300여 명은 ‘예배’라고 느낀 경험을 AI와 함께 했다. 그러나 AI는 예배할 수 없는 존재다. 이 아이러니는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다. 우리가 맞이할 도전은 ‘AI를 어떻게 쓸 것인가?’가 아니라, ‘AI에게 절대 넘기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이다. 그리고 그것을 왜 지켜야 하는지 분명히 아는 일이야말로, 인간다움과 신앙의 미래를 지켜낼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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