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안나 메이스의 기고글인 ‘NFL이 교회보다 더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Why is the NFL more popular than the Church?)를 28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안나 메이스는 경제학자이자 영 보이스 기고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로브 시티 칼리지를 졸업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브런치 예약과 미식축구 킥오프, 이 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오늘날 미국인들에게는 이 둘이 주일 예배보다 더 ‘성스럽게’ 여겨지고 있다. 큐레이션된 편안함의 옵션이 늘어날수록, 교회 출석률은 감소하고 있다. 이는 신앙이 더 이상 의미 없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습관적인 교회 출석만으로는 사람들을 더 이상 예배당에 머물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택지가 무한한 시대, 교회는 단순한 ‘편리함’ 이상을 제시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제시해야 한다.
2006년, 경제학자 조너선 그루버와 다니엘 헝거먼은 일요일 상업 규제 해제가 교회 출석률과 헌금 감소에 뚜렷한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그로부터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 이 추세는 더욱 심화되었다. 매주 교회에 출석하는 미국인의 비율은 20% 수준으로 떨어졌고, 미국 장로교(Presbyterian Church USA)와 같은 주요 교단은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 미국 사회가 더 많은 세속적 대안을 제공하면서 교회는 중대한 질문에 직면하고 있다. ‘일요일은 그리스도가 지배할 것인가, 문화가 지배할 것인가?’
교회 출석률의 하락이 반드시 신앙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가 더 이상 주일 예배당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무언가 ‘고유한 것’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단들이 성경적 명료함과 가르침을 포기하고 문화적 순응을 택하는 한, 진지한 신자들과 영적 진리를 찾는 이들은 다른 곳에서 명료함과 깊이, 영적 진실성을 찾게 될 것이다. 이제 교회는 ‘관련성’(relevance)을 좇는 것을 멈추고, ‘경외심’(reverence)을 회복해야 한다. 교회는 다시금 확신(conviction), 언약(covenant), 변치 않는 복음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단지 현대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교회는 산만함과 타협으로 약화되어 왔다. 400년 전 청교도들도 안식일 예배 대신 세상적 오락을 택하는 시대적 흐름을 탄식했다. 17세기 영국의 ‘성일 스포츠’ 논란부터 오늘날의 NFL 일요일까지, 문화적 편의성과 언약적 헌신 간의 긴장은 항상 존재해왔다. 교회는 역사 속에서 신학을 희석시키며 대중의 호감을 얻고 갈등을 피하려 했다. 20세기 ‘시커 센서티브 운동’(seeker-sensitive movement)은 명확성보다 접근성을 우선시했으며, 사람들을 모으기는 했지만 진정한 제자들을 길러내지는 못했다.
오늘날 주일을 보내는 방식은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다. 굳이 교회에 가느니, 명상 팟캐스트를 듣고, 향기로운 캔들을 켜고, 수천만 원짜리 소파에 몸을 묻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선택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주일을 ‘큐레이션’한다. 편안함, 영감, 심지어 ‘가짜 영성’까지 집에서 모두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선택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나쁘지 않다. 문제는 많은 교회가 출석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세상이 이미 제공하는 것의 ‘약한 버전’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전통 예배는 무드등으로 바뀌었고, 성경 말씀은 자기계발 문구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교회의 본래 부르심은 ‘편안함’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분명하다. 한때 미국의 주요 교단이었던 미국 장로교(PCUSA)는 2024년 기준 100만 명 남짓의 교인을 보유하고 있다. 단 1년 사이, 15만 명의 활동 교인이 줄었고, 140개 이상의 교회가 문을 닫았다. 복음주의 루터교(ELCA)는 2003년 500만 명이던 세례교인이 2024년에는 279만 명으로 감소했다. 미국 연합감리교(UMC)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약 7,600개의 교회가 성경의 성윤리·결혼·권위에 대한 가르침에서 벗어난 데 반대하여 탈퇴하면서, 현대 교회사에서 가장 큰 교단 분열을 겪고 있다.
일각에서는 교회가 시대에 적응하지 않으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데이터는 오히려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종교연구리뷰」(Review of Religious Research)에 발표된 동료 평가 연구에 따르면, 보수적인 복음주의 교회가 자유주의적 교회보다 성장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유는 성경의 권위에 대한 명확한 신학적 입장 때문이다. 정통 신학은 사람들을 밀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신앙을 지탱해 준다.
이것은 단지 이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성경의 변치 않는 진리를 설교하는 교회들은 지속적인 성장과 건강성을 보이고 있다. 그레이스 커뮤니티 처치(Grace Community Church)는 신학적으로 흔들림 없이 서 있으며, 진보적 교회들이 겪는 침체를 겪지 않았다. 이와 같은 현상은 개신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통적인 라틴 미사를 드리는 가톨릭 공동체들도 성장세를 보이며, 특히 젊은 세대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파편화되고 상대주의적인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명확함, 확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교회로 향한다.
교회가 문화를 얻기 위해 성경을 버리면, 목적도, 사람도 함께 잃는다. 그러나 교회가 진리를 붙들 때 비록 그것이 인기가 없더라도 그 사역은 더욱 견고해진다.
우리는 교회 출석의 감소를 슬퍼해야 한다. 숫자가 전부는 아니지만, 때때로 숫자는 깊은 영적 손실을 반영한다. 한 교회가 문을 닫는다는 것은 단지 건물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들이 진리에서 멀어지고, 공동체가 영적 닻을 잃고, 다음 세대가 복음으로부터 뿌리 뽑히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문제다.
동시에, 이 영적 위기의 배후를 더 깊이 들여다보도록 우리를 격려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버린 것이 아니라, 더 진지하게 그분을 찾고 있다. 교회가 타협할수록, 사람들은 움직인다. 그리고 그들은 점점 더 ‘성경적 진리’를 설교하는 공동체로 향하고 있다.
사람들은 또 하나의 세속 기관, 애매한 영성, 포장된 자기계발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한다. 교회는 소파보다 더 편할 수 없다. 그리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교회의 능력은 ‘관련성’에 있지 않다. 교회의 능력은 ‘변치 않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