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형제와 화해하고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눅 17:3-4)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다(마 5:23–24). 이 말씀은 이 세상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화해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없다는 분명한 선언이다.
한편, 누가복음 17장 3–4절에서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죄를 짓고 일곱 번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이 본문은 죄에 대한 분명한 지적과 회개, 그리고 그 회개에 따른 용서라는 하나님의 공의와 질서를 보여준다. 표면적으로 볼 때 이 두 말씀은 ‘용서와 화해 중 무엇이 먼저인가’에 대한 충돌로 보이지만 진정한 화해는 언제나 진실과 용서를 함께 요구하며, 그 출발점은 항상 하나님의 마음을 본받아 먼저 다가가는 사랑이라는 진리를 다른 각도에서 조명한 것이다.
이러한 성경의 화해와 용서의 원칙은 단지 개인적인 신앙윤리를 넘어서 공동체 전체가 감당해야 할 과거의 책임과 고통 앞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의 이념 대립과 한국전쟁, 군사독재 정권 시기 등 굵직한 역사적 상처를 지나며 수많은 무고한 이들이 희생되었고, 그 가족들과 유족들은 오랜 시간 외면당한 채 살아왔다. 이러한 과거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치유하고자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운동, 군사정권 시기의 고문과 조작, 의문사, 강제동원 등과 같은 인권 침해 사건들을 조사하고, 그 왜곡된 진실을 바로잡음으로써 국가와 국민 사이의 신뢰를 회복하고, 화해를 바탕으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법에 따라 설립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5년 노무현 정부 시절 1기를 시작으로 2020년 개정 후 2기가 활동을 재개했고, 2025년 종료 예정인 가운데 현재 3기 출범을 위한 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그간 위원회가 다룬 대표적 사례를 보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보도연맹, 제주 4·3 등), 군사정권 하의 고문·조작 사건(인혁당, 민청학련), 의문사 진상규명(박종철, 김근태 등), 강제징용과 친일반민족행위 관련 사건 등이다. 이 가운데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조명되었던 기독교인 학살사건과 종교 탄압 사례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과거사법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TRC)를 모델로 삼은 바 있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종식 후 “우리는 증오를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미래를 위해 용서를 선택했다”고 선언하였고, 데스몬드 투투 주교는 “진실이 없다면 화해는 없다. 그러나 용서가 없다면 미래도 없다”고 말하며 신앙과 도덕의 언어로 정의와 화해를 이끌었다.
남아공의 TRC는 가해자의 자발적 고백과 피해자의 용서를 중심으로 했고, 한국의 과거사법은 피해자의 진술과 국가의 책임 인정 중심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남아공은 종교 지도자와 도덕적 리더십이 중심이 되어 화해의 분위기를 이끈 반면, 우리의 과거사 정리는 정치권 주도의 제도적 접근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더 나아가, 과거사위원회의 활동이 특정 진영의 피해만을 부각시키고 반대 진영의 폭력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소극적이었다면, 그 정의는 곧 선택적 정의로 전락할 수 있다. ‘진실규명’이라는 이름이 때때로 정치적 보복 수단으로 오용되지는 않았는지도우리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남아공이 보여준 교훈은 분명하다. 정치의 힘만으로는 진정한 화해에 이르기 어렵고,그 중심에는 신앙과 회개, 도덕성과 진실한 고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도 개인의 신앙적 용서를 넘어, 사회적 고통과 역사적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먼저 가서 화목하라”는 명령을 국가 공동체 차원에서도 실천하는 신앙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침묵하는 제단이 아니라, 회복과 치유, 용서와 화해가 선포되는 하나님의 제단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