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낡은 집을 직접 고쳐 살기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남편이 느닷없이 말했다. “우리 가족이 4년 동안 한국으로 이사하는 건 어때?”
나는 당황해 “어... 언제?”라고 되물었고, 남편은 “9월쯤. 아마 12월까지는 미룰 수 있을 거야”라고 답했다.
그 후 우리는 바쁘게 집을 마무리하고, 뜻하지 않은 홍수를 겪은 뒤 다시 수리를 해야 했다. 결국 2018년 12월, 영국에서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보낸 후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살아본 경험이 있었지만, 한국은 내가 가 본 곳 중 가장 이질적인 곳이었다. 서울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감각이 압도됐다.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12차선 도로, 읽을 수 없는 형형색색의 간판들, 생소한 음식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언어. 마트에 다녀오는 데 하루가 걸렸고, 돌아오면 쓰러지듯 쉬어야 했다. 그 정도로 버거웠다.
한국은 이민자가 많지 않은 나라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 눈에 띄었다. 특히 어린 자녀들은 지하철에서 사탕을 받거나 사진을 찍히는 일이 자주 있었다. 기본적인 생활을 시작하려면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했고, 우리는 ‘외국인’으로 불렸다. 인구 약 1,000만 명의 도시에서 우리는 철저한 외부인이었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낯선 환경 속에서, 내향적인 성격인 나는 문을 닫고 움츠러들고 싶었다. 사람들과의 관계, 낯선 문화와 경험을 마주하기보다 회피하고 싶었다. 많은 외국인들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적응한다. 익숙한 음식과 사람을 찾고, 고향에서의 일상을 그대로 재현한다. 이는 일종의 문화적 방어막이자 적응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다. 나 역시 그 유혹을 느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공동체 안에서 살도록 창조하셨다(창세기 2:18). 그는 우리를 가족으로 초대하시고(요한복음 1:12–13), 우리와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레위기 19:34). 나는 사람들과 연결되어야 했다. 나만의 안전한 울타리가 아니라, 실수하고 웃음 당하고, 누군가에게 배우고 이끌림 받는 경험이 필요했다. 나는 약해져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한국어 선생님에게서 글자를 배우고,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동네 편의점 아주머니에게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를 건네게 되었고, 나를 알아보는 커피숍 직원은 내가 항상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걸 기억해주었다.
70대의 구멍가게 할머니는 한국어로 나와 대화를 시도했고, 교회 예배 후 식사를 통해 한국 음식점에 자주 가게 되며, 매운 음식과 훌륭한 쌀맛에 눈뜨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에게 물어보면 알겠지만, 쌀의 품질은 매우 중요하다!)
완전히 다른 문화 속에 들어간 나는, 점점 내게 낯설었던 사람들의 인간다움을 인식하게 되었다. 한때 비행기로 13시간 떨어진, 거의 알지 못했던 나라의 사람들이 친구가 되었고, 나는 그들의 스타일과 음식에 감탄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내 문화와 습관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낯설기만 했던 한국 문화가 점차 내 일부가 되어갔다. 나는 더 많이 마음을 열었고, 더 많이 참여했고, 더 이상 그곳은 낯설지 않았다. 나는 어느새, 그 안에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82억 인구의 세상에서 우리는 쉽게 위축된다. 익숙한 세계 속에 갇혀 살기 쉽다. 그러나 바쁘고 혼란스러운 삶 속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깊은 연결을 필요로 한다.
하나님의 이야기 속에서만 우리는 모든 인간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익숙함을 벗어나 자신과 다른 이들과 삶을 나누는 순간,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고, 그만큼 더 풍요로워진다.
지금은 영국으로 돌아왔지만,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인지 몸소 체험했다. 그리고 외부인이었던 경험은 이제 국적을 불문하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더 깊이 공감할 수 있게 해주었다.
성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할 수 없다면, 시간이나 장소 혹은 상황의 우연으로 당신 곁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라.”
그러니 다음에 당신이 나처럼 외부인을 만난다면, 함께 무언가를 해보자고 초대해 보라. 의외로 많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게 되고, 무엇보다 서로에게 더 인간다워질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은 바로 연결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의 작성자인 헤더 캐러더스는 복음주의 연합(Evangelical Alliance)의 'Being Human' 이니셔티브 공동 코디네이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