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댄 델젤 목사의 기고글인 ‘인간의 영혼 바닥에는 치명적인 영적 독소가 들어 있다’(The basement of man's soul contains deadly spiritual toxins)를 12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델젤 목사는 네브래스카주 파필리온에 있는 리디머 루터 교회(Redeemer Lutheran Church in Papillion)의 담임 목사로 섬기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하나님은 인간이 마음과 영혼과 생각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도록 창조하셨다. 그러나 로마서 1장 29절에 기록된 대로, 인간의 마음이 “모든 불의, 악, 탐욕, 악행”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이는 불가능하다. 타락한 마음은 도덕적으로 부패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길 능력이 전혀 없다.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생각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복음(요한복음 3:16)의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마가복음 1:15)에 응답하는 것이다.
로마서 1장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경건치 않음과 불의”를 묘사한다(18절). 하나님은 이러한 행위를 매우 불쾌하게 여기신다. 이 장에서는 “파라디도미(paradidomi)”라는 그리스어가 세 차례 등장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수치스러운 욕망”(26절)과 “타락한 마음”(28절)에 “내어버려 두셨다”는 뜻이다.
이것을 법정 장면에 비유할 수 있다. 격분한 피고가 재판장을 향해 달려들어 침을 뱉자, 판사는 ‘법정 모독’ 혐의로 그에게 180일을 추가로 선고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진리를 고의로 억누른 사람들에게 타락한 마음을 내어주심으로써 신적 징벌을 내리신 것이다.
성경은 타락한 마음의 다양한 징후를 나열한다. 그런 사람들은 “시기, 살인, 분쟁, 속임, 악의로 가득 차 있으며, 수군수군하고 비방하며 하나님을 미워하고, 건방지고 교만하며 자랑하며, 악을 꾀하고 부모를 거역하며, 우매하고 신의 없고 무정하며 무자비하다”(로마서 1:29–31).
그렇다면 누가 왜 하나님을 미워하는 선택을 할까? 그 답은 인간 영혼의 ‘지하실’ 즉 ‘죄성(sinful nature)’에 있다. 바울은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로마서 7:18)라고 고백했다. 죄성은 마음이나 생각 그 자체는 아니지만, 온갖 악한 욕망과 죄된 성향이 들어 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이 ‘지하실’로 내려가 죄의 욕망을 따를 의무가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로마서 6:18).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성령을 따르는 자는 성령의 일을 생각하느니라”(로마서 8:5).
인간은 자신이 생각과 욕망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 없이 인간은 죄성의 욕망에 매여 있으며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 죄와 불신에서 돌이키기 전까지 인간은 “율법 아래”에 있으며 “은혜 아래”에 있지 않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면 인간은 자유롭게 된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라”(로마서 6:14). 그리스도인은 지하실에 내려가지 않고 위층, 곧 마음과 생각의 영역에서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포르노를 보거나 원한을 품는 등의 행동을 하면, 이는 지하실로 내려간 것이다. 이때 성령의 열매는 사라진다. 죄된 욕망을 만족시키려는 행동과는 달리, 성령의 열매는 영혼을 새롭게 하며 “사랑과 기쁨,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갈라디아서 5:22–23)로 구성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로마서 12:2)라고 가르친다. 여기서 ‘변화’라는 단어는 ‘메타모르포오(metamorphoo)’로, 영어 단어 ‘metamorphosis’(변태)의 어원이다. 타락한 마음이 변화된 마음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거듭남(베드로전서 1:3)이 필요하며, 이어서 “무엇이든지 참되며, 경건하며, 옳으며, 정결하며, 사랑할 만하며, 칭찬할 만한”(빌립보서 4:8) 것들을 순간순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 믿는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 초기부터 구원받고, 용서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바울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로마서 8:6)라고 썼다. 만일 당신의 생각이 통제되지 않고 방황하고 있다면, 성령께서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하실”(이사야 45:2)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먼저 죄된 생각을 예수님께 자백해야 정결함과 새로움을 입을 수 있다.
사람들이 “썩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의 형상으로 바꾸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서로의 몸을 욕되게 하게 하셨느니라”(로마서 1:23–24).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하며,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로마서 1:26–27).
오늘날 동성 간의 음욕에 사로잡힌 사람들도 많지만, 실제로는 이성 간의 음행과 간음이 훨씬 더 흔하다. 성경은 “우리가 음행하지 말자, 그들 중 몇 사람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느니라”(고린도전서 10:8)라고 경고한다.
인간의 영혼 지하실에는 치명적인 영적 독소가 가득하다. 바울은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움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이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갈라디아서 5:19–21)라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오늘 당신의 마음은 무엇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가? 성령인가, 아니면 죄된 욕망인가? 만일 당신의 마음이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려는”(고린도후서 10:5) 갈망이 있다면, 예수께 당신의 죄를 고백하고 매순간 거룩하고 건강한 생각에 헌신하라. 기억하라. 바른 삶은 바른 생각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