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인간 존재의 가장 오래된 질문이자, 가장 깊은 신앙의 고민이다. 왜 선한 이들이 고통을 당하는가?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 이 책 <오직 고통당하는 하나님만이>는 바로 이 물음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저작이다. 얇은 두께 속에 담긴 밀도 높은 사유는 신학, 철학, 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고통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묻는다.
이 책의 제목은 20세기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고백에서 비롯되었다. “오직 고통당하는 하나님만이 우리를 도울 수 있다.” 히틀러 암살을 시도하다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본회퍼는, 폭력과 부조리, 악이 넘실대던 시대에 신학이 어떻게 현실의 고통을 말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고통의 문제를 관념이 아닌 실존의 자리에서 다룬다.
책은 6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독자들이 신앙의 여정에서 마주치는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려 한다. 1장에서는 인간의 탄식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정직하게 표현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성경은 고통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시편의 시인들은 분노와 슬픔을 쏟아내며 하나님께 질문을 던진다. 그 탄식은 신앙의 부정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2장에서는 욥기를 통해 고난의 신학을 다룬다. 욥은 자신의 무고함을 외치며, 의문과 분노를 하나님께 토로한다. 그는 신성모독에 가까운 말을 쏟아내면서도 하나님과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 장은 고통 속에서도 관계를 붙드는 ‘반항적 신앙’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욥의 친구들처럼 고통에 신학적 해답만을 요구하는 태도가 얼마나 피상적인지, 고통이 실존적 위기라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를 드러낸다.
3장은 “하나님의 눈물”이다. 하나님은 고통을 멀리한 채 하늘에서 관망하는 존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고통을 직접 경험하신 분이다. 십자가는 그 결정적 증거다. 저자는 하나님이 고통을 통해 인간의 삶에 얼마나 깊이 들어오셨는지를 설명하면서, 고통당하는 신이라는 파격적인 진술을 전개한다. 하나님은 고통을 당하시기로 선택하셨고, 그 고통 속에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하지만 저자는 하나님의 고통이 단순한 동정이나 연민의 표현이 아님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고통에 압도당하지 않으시며, 그 고통 속에서도 선을 창조하신다. 부활은 그 상징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고통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그리고 고통이 종말이 아니라는 하나님의 선언이다.
4장은 자연재해나 동물의 죽음, 멸종과 같은 '자연적 악'을 신학적으로 성찰한다. 전통적인 신정론이 이 문제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함을 비판하며, 과학과 신앙의 대화를 통해 고통의 신비에 접근한다. 저자는 “자연적 악”이라는 표현 자체가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된 편견일 수 있음을 지적하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그 안에 담긴 자유와 위험의 본질을 탐구한다.
고통 중에도 소망은 가능하다
5장과 6장에서는 고통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소망을 품을 수 있는지를 다룬다. 신앙은 단순한 낙관이 아니라 현실을 직면한 용기이다. 고통과 의심, 애통과 분노, 명확성과 모호함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 신앙의 진실된 모습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안에서 자유롭게 질문하고, 탄식하며, 때론 분노할 수 있다.
부활의 하나님은 고통을 덮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 고통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그 가운데서 새 생명을 일으키신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될 것이다. “믿음의 반대는 의심이 아니라, 확실성에 대한 욕구”라는 문장은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신앙의 깊이를 대변한다. 확신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오직 고통당하는 하나님만이>는 단지 신정론의 이론적 탐색을 넘어, 고통을 겪는 이들과 함께 아파하며 그것을 신앙의 언어로 해석하려는 진지한 시도다. 이 책은 신학, 철학, 과학의 경계를 넘어 고통을 묵상하고 싶은 독자, 고통 가운데 있는 교우를 섬기며 고민하는 목회자나 상담자, 고통의 이유를 찾기보다,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과 함께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추천된다.
이 책은 분명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 물음 속에 남겨진 자리에서 우리는 가장 깊고도 참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탄식하는 신앙, 질문하는 기도,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하는 시선을 다시 회복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잊을 수 없는 동반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