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97) 도마의 고백

오피니언·칼럼
설교
요20:24-29
이희우 목사

화창한 봄날 송사리 가족이 봄소풍을 떠났다. 가족은 모두 네 명, 들뜬 마음으로 적당한 곳에 자리잡고 재밌게 놀고 있었다. 그런데, 분명 네 명의 가족이 놀고 있었는데, 놀다 보니 다섯이다. 이상해서 아빠 송사리가 “동작 그만!” 가족을 체크하기 시작한다. “나, 아빠 송사리” “당신, 엄마 송사리” “너, 늠름한 아들 송사리” “예, 저는 이쁜 딸 송사리” 그런데 송사리가 하나 더 있다. 그래서 물었다. “넌 누구니?” “저요? 전 꼽사린데요” 믿음이란 꼽사리처럼 시작한 우리의 신앙생활이 결국 하나님의 아들 딸처럼 주인공이 되는 거다.

이런 시가 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정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차라리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했었다/ 망각의 눈(雪)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웠으니…”

T. S. 엘리엇(Eliot)의 ‘황무지’(The waste land)라는 시의 일부다. 1922년에 발표된 시니까 104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4월이 되면 이 시를 생각하는 현대인들이 많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 목련에 이어 연상홍이 만발해서 부활의 계절이 절정인데 부활의 계절을 보내고 있는 현대인들의 마음이 왜 부활 소망으로 충만하다는 생각보다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유명한 말로 시작하는 황무지가 오히려 현대인의 실상을 더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까?

엘리엇은 생명의 향연으로 가득한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다. 왜냐하면 4월의 천지가 꽃과 생명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3년쯤 지난 시기에 이 시를 썼다. 4년간 계속되었던 전쟁이었으니 전쟁의 잔인한 살육과 폐허와 몰이성으로 말미암아 인류 문명이 파산 선고를 받으면서 모두가 다 너무 힘들게 사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꽃이 피고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는 걸 보며 시인은 참 잔인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모양이다. 땅이 다 죽었는데 꽃이 피어났다? 시인이 볼 때 그 모습은 마치 시체 위에 꽃이 핀 것 같았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강렬한 생명이 과거의 아픔과 죽음을 더 생각나게 해서 그 괴로운 심정을 시로 남긴 것, 얼마나 힘들었던지 ‘차라리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했었다’고 했다.

괴롭기는 현대인들도 마찬가지다. 팍팍한 인생살이에 지친 현대인들은 대체로 희망이나 기대를 포기하며 사는 것 같다. 연애‧결혼‧출산·내 집 마련·인간관계·꿈·희망···을 포기한 젊은이들, 그들의 4월은 잔인한 달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계절의 여왕 5월에는 즐길 수 있을까? 5월에 대한 기대도 접을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본문에도 아무 희망도 기대도 없다는 생각에 불안해하는 한 제자가 등장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녀가셨다며, 모두들 뵈었다며 열 명의 동료 제자들은 표정이 달라지고 말도 달라졌지만 의심으로 충만하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셨다. 의심하는 제자 한 사람을 위한 특별 재방문이다. 과연 주님다우시다.

예수님은 누가 봐도 대단한 분이지만 내적 고민을 안고 살던 니고데모라는 단 한 사람을 밤중에 만나주시고, 사람 만나는 게 싫어 불볕더위, 아무도 물 기르기 위해 오는 사람이 없는 대낮에 우물가를 찾은 사마리아의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해 남들이 가지 않는 사마리아로 가신 분이다. 그뿐인가? 38년을 병치레하며 외롭게 실로암 연못가에서 지내는 한 병자를 만나 고쳐주시고,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한 한 이름 모를 여인을 만나주시고, 나면서부터 한 번도 앞을 보지 못한 채 지내는 한 시각장애인을 만나 눈 뜨게 해주신 분, 죽은 지 나흘이나 된 사람의 무덤을 찾아가 그 한 사람 나사로의 이름을 부르며 살려주신 분,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도마를 찾아오신 예수님이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시자 도마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을 한다. 의심 많은 도마(Thomas the Doubter)가 확실한 믿음의 사람(Thomas the Faithful)으로 바뀐 거다. 그 과정 가운데 ‘도마의 고백’에 초점을 맞춘다.

의심하던 제자의 고백

도마는 부활절 새벽에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 보이셨다는 말을 이미 들었다. 또 그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고, 같은 날 저녁 열 명의 제자들이 모여 있는 다락방에 나타나셨다는 말도 들었다. 동료들은 죄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찾아오셔서 손과 발을 보여주신 후 믿는 분위기지만 그 자리에 없었던 터라 믿을 수가 없다. 좀 혼란스럽기는 하다. 아침부터 허겁지겁 달려와 예수님을 만났다는 막달라 마리아의 보고하던 모습과 베드로와 요한이 자기들도 무덤에 가봤는데 무덤이 비었더라고 보고했던 것, 그리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돌아와서 예수님을 만났다고 한 것들 모두가 다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마는 그들이 본 것은 진짜가 아니라 환상인데 마치 진짜를 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동료들은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그러지만 전부 일종의 집단환각증상에 빠진 것 같다는 의심이 든다. 도무지 믿을 수 없다. 그렇게 비참하게 죽은 분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나? 물론 이상한 점은 있다. 그렇게 두려워하던 제자들의 모습이 달라졌다. 26절에 ‘문들이 닫혔는데’라고 한 것이 19절과 같은 표현이지만 지금은 두려워서 문을 잠근 것 같지는 않다.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라는 표현이 없다. 며칠 사이에 생긴 것이지만 습관적으로 잠근 것 같다. 벌벌 떨던 그들이 하나 같이 이제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표정이 달라졌다. 미소가 보이고, 희망의 빛이 보인다. 하지만 도마의 의심이 가시지 않는다. 여전히 혼란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도마는 8일 전 예수님의 방문 때 왜 그 자리에 없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화장실에 다녀온 것 같지는 않다. 먹을 음식거리 사러 장에 갔다 온 것 같지도 않다. 만약 그런 이유였다면 주님께서는 분명 도마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그들에게 나타나셨을 것이다.

모르기는 해도 도마는 다른 제자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밖에 나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대책을 강구하러 갔다왔을 가능성이 있다. 살아갈 대책을 세우러 나갔다가 온 것, 요즘 말로 어디 면접이라도 본 것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이제 믿고 따르던 예수님이 없다. 그냥 이대로 모여있다가 잡혀 죽거나 굶어죽을 수만은 없다. 이제는 살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옷을 뒤집어쓴 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여기저기 살길을 찾아보았을 것이다. 그러다 부활 후 찾아오신 주님을 뵙지 못했다. 부활의 주님이 주신 핵심 선물인 ‘성령’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25절), 은혜의 자리를 벗어난 사람이 “내가” “내 손가락” “내 손”,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공언한다. 그런데 이건 주님을 향한 요구일 수도 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바램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일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의심 많은 도마’ 또는 ‘회의론자 도마’라고 부르지만 아니다. 매사에 의심 많고 주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그런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아니 오히려 요한복음에 묘사된 도마는 예수님에게 매우 충성된 제자다.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했다.

11장에 보면 제자들이 유대 당국자들을 두려워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를 극도로 꺼릴 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16절)며 앞장섰던 충성심이 대단한 인물이다. 또 14장에 보면, 예수님이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할 때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질문했던 인물이다. 알아듣지 못하고도 묵묵부답이던 제자들과 달리 혼자 캐묻던 용감한 사람, 아리송한 말씀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모르면 묻는 사람, 도마는 말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그저 의심하는 삐딱한 사람도 아니다.

그는 매우 진지한 사람이었다. 다른 제자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도 꼭 직접 체험하고 확신하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부활 사건의 진위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의심?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도마처럼 은혜의 자리로 컴백해야 고백하게 된다. 기억하라. 살길은 컴백이다.

주님의 사랑으로 인한 고백

부활하신 예수님이 7일간 계속되던 유월절 축제 기간이 끝난 후인 첫 주일에 제자들 앞에 다시 나타나 대뜸 도마에게 직접 확인해 보라고 하셨다. 열 명의 동료가 확인했으면 확인된 거나 마찬가지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못 믿겠다고 의심하는 제자지만 괘씸하게 여기고 꾸짖는 말씀이 아니다. 답답하다고 무시하신 것도 아니다. 그저 도마의 의심을 해소시키시려고 오셨다. ‘믿음 없는 자(ἄπιστος)’가 아니라 ‘믿는 자(πιστός)’ 되라 하신다. 도마는 현대인의 모습, 우리도 그래야 한다. 기억하라. 신앙과 불신앙 사이에 중간 지대는 없다.

요한복음에는 신자와 불신자의 모습이 선명하게 대조된다.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 믿는 자가 되었지만 5장과 6장에 나오는 유대인들은 38년 된 병자가 고침받는 기적을 보고도 불신자로 남았다. 또 9장의 시각장애인은 예수님을 믿는 자지만 유대인들은 믿지 않는 자, 요한은 계속 신앙과 불신앙을 대조시키면서 진정한 신앙인이 되기를 촉구한다.

주님은 의심하는 도마에게 직접 체험할 기회를 주신다. 그러려고 다시 찾아오셨다. 도마에게 하신 말씀을 보라.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27절) 사랑의 음성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도마도 함께 있고···”(26절), 그날 제자들이 모여 있던 다락방의 풍경을 상상해보라. 다른 제자들은 아직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도마를 배척하지 않는다. 그 다락방 공기는 도마를 껴안는 분위기다. 생각이 다르지만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토로할 수 있는 분위기, 솔직한 질문이 환영받고 존중받는 공동체, 이게 중요하다. 기억하라. 생각이 다르면 적인가? 아니다. 사회 분위기와는 달리 교회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자기 속에 있는 의심이나 의문을 마음껏 표현하고 해결 받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기억하라. 분위기가 사람을 살린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내 손 못 자국 만져라” 직접 만져보라는 말씀이다.

위대한 신앙고백

카라바조가 그린 『의심하는 도마』(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라는 작품이 있다. 1602년 작품인데 의심하는 사람들을 위해 본문 이야기를 그린 것 같다. 세 명의 제자와 함께 서 계신 예수님이 중심인데, 보는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든 작품, 검은 배경을 등지고 아치 형태를 만들며 선 등장인물들이 예수님의 상처와 도마의 손가락을 바라보고 있다. 예수께서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고 말씀하셨지만 성경에 도마가 그렇게 했다는 말은 없다. 사실 그림에 나타난 대로 예수님의 수의는 손을 넣어 볼 필요가 없는 옷이다. 또 그랬을 가능성도 별로 없다.

하지만 카라바조는 도마와 예수님의 손에 작품의 초점을 맞췄다. 그림을 보면 예수님의 왼손이 도마의 검지가 상처를 더 잘 확인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고, 도마의 오른손 검지를 창으로 찔린 예수님의 옆구리에 정말 들어간 것으로 그렸다. 마치 해부학자가 검시라도 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다른 두 제자도 진짜인가 확인이라도 하듯 그 상처를 지켜본다. 불경스런 그림이지만 화가는 의심하는 도마가 명확히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확인했음을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예수님을 보고 믿었다” 부활이 확실하다는 메시지를 부각시킨 그림이다.

도마를 찾아오신 예수님은 “직접 보라”고 하신다. 하지만 도마는 직접 만져볼 필요가 없다. 불신의 벽이 무너지고, 의심의 안개가 깨끗하게 다 걷혔다. 반사적으로 외친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긴가민가하던 사람이 “부활을 믿습니다”라는 고백하는 것과 같다. 예수님 부활 이후 가장 탁월한 고백의 절정, 요한복음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위대한 신앙고백이다. 마태복음 16장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뛰어넘는, 그때까지 누구도 이렇게 고백한 적이 없는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최고의 고백이다. 고백만 한 게 아니다. 확실한 믿음의 사람, 그 후 남인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주후 52년에 남인도에 교회를 세운다. 지금도 존재하는 교회다. 그리고 그는 선교지에서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지금도 그의 무덤이라 전해지는 무덤이 인도에 있다.

그리고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그가 남긴 최후의 말이 “예수 부활하셨다”는 외침이었다고 한다. “예수 부활하셨다!” 부활이 그를 인도까지 가서 교회 세우고 순교하게 한 이유였다는 뜻이다. 요한이 복음서를 쓸 때는 도마는 이미 순교한 다음이었다. 요한은 도마가 훌륭한 제자였음을 회상하며 복음서를 썼다. 의심했지만 마침내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남긴 선구자, 요한은 도마의 이 위대한 신앙고백으로 요한복음의 대미(大尾)를 장식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는 선언으로 시작한 요한복음,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도마의 고백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둘 다 예수님의 신성에 관한 진술, 21장이 후기, 부록이라면 요한복음은 20장 여기가 끝이다. 그렇다면 요한복음 대미를 장식한 도마의 고백, 이 위대한 고백이 우리의 고백 되어야 한다. 의심 체질이 아니라 믿는 체질, 체질 개선이 되어야 한다. 그게 주님의 기대요 마지막 당부다. 수준 높은 신앙의 경지에 올라야 한다.

인천신기중앙교회 담임 이희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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