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 기술기업과 기관 53곳을 거래제한 명단에 올렸다. 이는 미국 기술이 군사적으로 전용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조치로,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이 다시 긴장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6일(현지시간) 연방관보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두 건의 발표를 통해 중국 기업 및 기관 53곳을 '거래제한 명단(entity list)'에 추가했다. 이 명단에 오르면 미국산 제품과 기술에 대한 접근이 제한된다. 이번 제재는 오는 28일부터 시행된다.
이번 조치에서 주목되는 대상은 중국 최대 서버 제조업체인 인스퍼(Inspur, 浪潮) 그룹의 6개 자회사다. 인스퍼는 이미 2023년 8월 제재 대상이 된 바 있으며, 이번에는 중국 본사의 자회사 5곳과 대만에 사무소를 둔 1곳이 새롭게 명단에 포함됐다. BIS는 "해당 자회사들이 중국군의 슈퍼컴퓨터 개발에 기여한 점이 제재 사유"라고 밝혔다.
또한 중국 과학기술부의 지원을 받는 '베이징즈위안인공지능연구원'과 관련된 수마전자 계열사 2곳도 제재 명단에 추가됐다.
BIS는 별도의 공지에서 중국 외에도 이란 2곳, 파키스탄 19곳, 남아프리카공화국 3곳, 아랍에미리트 4곳 등 총 70개 기업과 기관을 추가로 명단에 올렸다고 발표했다.
미국 상무부는 이번 조치의 배경에 대해 "고성능 컴퓨팅, 초음속 미사일, 군용기 훈련 등과 관련된 기술이 오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미국의 기술이 적국의 군사력 강화나 미국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데 사용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주미 중국대사관은 성명을 통해 "미국의 조치를 단호히 반대한다"며 "무역과 기술 문제를 정치화하고, 이를 무기화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군사 문제를 명분 삼아 기술을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