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말론 드 블라시오 작가의 기고글인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검증을 조건으로 하지 않는다’를 최근 게재했다.
블라시오 작가는 문화 옹호자, 기독교 작가, 그리고 '문화를 분별하다'(Discerning Culture)의 저자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일부 기독교인들은 저명한 전문가들이 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는지 의문을 갖는다. "만약 기독교가 진리라면, 왜 ‘그 유명한 사람’은 믿지 않는 걸까?"라는 질문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이나 그 어떤 진리 주장도 누가 그것을 지지하는지에 따라 확인되거나 부정되지 않는다. 신앙의 궁극적인 확증을 인간의 권위에서 찾는 것은 어리석고 비성경적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갈라디아서 1:11)
솔로몬 역시 인간의 본성을 정확히 지적했다.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전도서 7:20)
역사는 반복해서 인간이 본래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으며,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해도 결코 무오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로마 제국에서는 정복한 장군이 개선식을 할 때, 황제는 항상 "너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임을 기억하라"라고 상기시켰다고 한다. 심지어 셰익스피어조차 "잠깐 기다려라. 내 손을 먼저 닦고 나서 입 맞추게 하라. 내 손도 필멸의 때로 얼룩져 있느니라." (King Lear)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오늘날 문화는 특정 인물들의 의견을 절대적인 진리처럼 받아들이도록 조장한다.
‘권위 있는 인물’이 기준이 될 수 있는가?
젊은 시절, 필자는 중요한 교훈을 배웠다. 바로 어떤 주장의 가치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람의 명성에 의존하지 않고, 그 자체의 논리와 증거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번은 교수님의 초청으로 과학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점심시간에 과학자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그들도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농담을 하고, 스포츠 이야기를 하며, 초콜릿 케이크를 먹었다. 그들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단지 학문적 훈련을 거쳤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러나 문화적 사고방식은 이러한 사람들을 신격화하고, 마치 그들의 견해가 일반 대중보다 월등히 우월한 것처럼 여기도록 만든다.
서구 사회에서는 특정 문화적 아이콘에게 과도한 경의를 표하고, 비판적 사고를 선택적으로 적용하도록 훈련받은 것처럼 보인다. 필자가 미국과 캐나다의 학술 기관에서 학생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기독교 신앙을 불신할 이유를 찾으면서도, 자신이 선호하는 이론에는 비판 없이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어, 심리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프로이트의 "신은 인간이 아버지의 부재를 채우기 위해 투사한 존재"라는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왜 프로이트의 이론이 기독교보다 더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질문하면, 그들은 문화적 권위 때문에 프로이트를 반박할 수 없는 존재처럼 여겼다. 마치 "네가 프로이트보다 더 많이 알 리가 없잖아"라고 말하는 듯했다.
기독교 신앙이 ‘똑똑한 사람’의 의견에 의해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는 심리적 함정이 신자의 마음에 자리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경고한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잠언 29:25)
문화적 압력과 기독교 신앙
기독교 신앙을 공격하는 사람들 중에는 진실을 탐구하기보다 단순히 기독교인을 괴롭히려는 의도를 가진 이들이 많다. 그들은 복음의 메시지가 자신의 양심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에 신앙을 변질시키고 싶어 한다. 이로 인해 ‘진보적 기독교’(Progressive Christianity)라는 문화적 타협이 등장하여, 기독교를 단순한 ‘자기계발 옵션’으로 격하시킨다.
이제 신자들은 문화적 사고방식이 만들어낸 ‘믿음의 신기루’를 극복해야 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디모데후서 1:12)
기독교 신앙은 단순한 철학이 아니다. 그것은 "혼과 영을 찔러 쪼개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는" (히브리서 4:12)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실 것"(요한복음 16:8)이라고 하셨다. 기독교 신앙에 대한 문화적 반발은 바로 이 메시지의 도전적 성격 때문이다.
믿음으로 반응하는 신앙
하나님의 은혜와 회개의 메시지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요한복음 15:18)
그렇기에 기독교인들은 미움을 받을지라도, 사랑과 기도로 반응해야 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44)
기독교 신앙을 공격하는 사람들 중에는 진지한 대화를 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과의 대화는 기꺼이 환영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더욱 굳게 하여, 문화적 회의주의가 결국 "모래 위에 지어진 집" (마태복음 7:26)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결함 있는 사상에 의해 흔들릴 수 없다. 우리는 그 어떤 문화적 권위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며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