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종전 협상을 추진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아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는 동맹 관계보다 개인적 친분을 중시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외교 스타일이 반영된 행보로 풀이된다.
22일 외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젤렌스키 대통령을 독재자로 지칭하고, 우크라이나에 전쟁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서방 동맹국들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미국이 주도하던 서방 세계의 단결이 흔들릴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미국이 러시아와 가까워지고 우크라이나를 비난하는 행보를 보이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먼저 종전 협상을 논의하면서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러시아와 협상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CNN은 이를 "미국이 민주주의 동맹을 무시하고 권위주의 국가들과 협상을 모색하는 외교 정책의 충격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8일, 러시아가 주장하는 '우크라이나 대선 후 협상' 방안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지율이 4%에 불과하다"며 그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발언을 했으며, "이 전쟁은 시작되지 않았어야 했다"는 주장으로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유발했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어 19일에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적당히 성공한 코미디언"이라거나 "선거도 치르지 않은 독재자"라고 표현하며 비난의 강도를 높였다. 반면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는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아 대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러시아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며, 우크라이나 측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러시아는 그동안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정당성이 없으며, 대선을 치러야 휴전 협정이 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헌법은 전시 상황에서 선거를 금지하고 있으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지율도 최근 조사에서 5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제기된다. 그의 핵심 측근에는 JD 밴스 부통령,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DNI) 국장, 보수 언론인 터커 칼슨 등 친러시아 성향을 보이는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또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임 행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 정책을 지속적으로 비판해왔으며, 최근 우크라이나가 미국과의 광물 협정 초안을 거부하고 러시아와의 협상에 반발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종전을 신속히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이 러시아와 먼저 협의한 뒤, 우크라이나를 압박해 종전안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목표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러한 외교 방식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는 북미 협상 재개 의지를 여러 차례 드러냈으며, 한국을 배제한 채 북한과의 협상에 집중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뿐 아니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집권 시 북한과의 직접 협상을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캐슬린 스티븐슨 전 주한미국대사는 지난 19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대담에서 "유럽 동맹국들이 우크라이나 없이 미국과 러시아가 협상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며, "한국 역시 북미 협상에서 배제될 가능성에 대해 불안해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