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신앙생활: 사명이란 무엇인가?(2)

오피니언·칼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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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 1:1~15
이태희 목사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 8:11)

이 시대를 살리는 것은 양식도 아니요 생수도 아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이 나라를 살리고, 이 겨레를 살리는 길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말씀이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때 기근의 문제가 해결되고 갈함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학개와 같은 선지자, 그리고 그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시대적인 사명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지도자들이 일어나야 한다.

다리오 왕 제 이년 여섯째 달의 시대적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 재건 운동이 다양한 방해와 공격에 의해 중단된 상황이었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학개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 주고 계시는 “하나님의 시대적인 메시지,” 그들이 듣고 순종해야만 하는 “하나님의 시대적인 사명”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중단된 성전 공사를 다시 재개하는 일”이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학 1:2)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이 두 지도자들은 “성전 재건”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시대적 사명을 백성들의 반대로 인해 중단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의 사명은 사람들이 반대한다고 중단 하는게 아니다.

세속적인 지도자와 하나님의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차이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하나님의 지도자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간다. 그러나 세속적인 지도자들은 백성들의 뜻을 따라간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와 같은 지도자들을 언제나 경멸하셨다.

“민심이 천심이다”라는 거짓말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민심은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천심을 거슬러 심판을 받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민심은 아론에게 하나님을 대체할 수 있는 금송아지를 만들도록 요구하여 천심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민심을 천심과 같은 것으로 여겼던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취득한 기름진 동물을 지키기 원했던 민심을 따르기 위해 모든 동물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천심을 거역했다. 그리고 결국 사울의 왕권은 다윗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민심은 민심이고 천심은 천심이다. 하나님의 지도자는 4 만명의 이스라엘 민심을 따라가는 자가 아니라, 4 만명의 이스라엘 민심을 천심으로 이끌어가는 사명과 책임을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 존 녹스에게 누군가가 찾아와서 다음과 같이 백성들의 민심을 전해 주었다고 한다. “존 녹스여, 지금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존 녹스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 모든 사람들을 반대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의 시대적인 사명이 중단된 이유는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이 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소리가 아닌 백성들의 소리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가 중단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메신저 학개를 보내주신 것이다.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하는 자들을 통하여 이뤄진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은 그와 같은 지도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이루신다. 하나님의 시대적인 사명은 언제나 그와 같은 사람들을 통해 성취되었다(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다윗, 베드로, 바울…).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성전 재건을 중단시키고 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회피하고자 할 때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핑계가 있다. “아직 때가 아니다.” 물론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는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라는 때가 우리가 해야할 때다. 하나님이 가라는 때가 우리가 가야할 때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직 때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그 속내를 드러내신다.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학 1:4)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직 성전을 재건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말한 이유는 “자기집”이 “하나님의 집”보다 더 우선순위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해야 할 일이다. 지금 시급히 당장 해야 할 일은 언제나 나를 위한 일, 내 집을 위한 일이다. 이것이 지금 성전 재건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시대적 사명이 중단된 이유였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징계하신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태도는 하나님의 사명을 방해하고 중단시키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명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그냥 모른 척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 그 요소들을 드러내시고 제거하신 다음 중단없이 이어가게 하신다. 그 방법이 바로 징계다(예: 요나의 징계).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깨닫게 된다. 그 때 나타나는 가장 분명한 회개의 열매가 무엇인지 아는가? 하나님만 중요하게 된다. 하나님의 뜻 외에는 하나도 중요한 게 없어진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만 살아가게 되어 하나님의 눈에 보기에 어떠한지만 중요하게 된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바로 이와 같은 코람데오의 정신 하나로 귀결된다.

하나님의 징계는 나만을 위해 살던 사람을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자기 집만을 위해 살던 사람을 하나님의 집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이것이 회개의 본질적인 열매다. 삶의 목적과 방향이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된다. 하나님의 사명. 그것이 내 삶의 유일한 이유요 목적이 된다.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재에 넣음이 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학 1:5-7)

너가 그렇게 너를 위해서만 살아가는데도 실제로 남는게 없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너의 삶의 괘적을 한번 정직하게 살펴보라. 왜 그런 것 같니?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살지 않고 자기 집만을 위해 사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징계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시 127:1-2)

하나님께서는 시대 시대마다 그 시대 속에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부르시고,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시대적인 사명을 맡겨 주신다. (계속)

이태희 목사(그안에진리교회 담임, 윌버포스 크리스천 스쿨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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