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사실인가 은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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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환 목사(구성감리교회 담임)
김요환 목사

대체로 많은 성도들이 성경을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과연 성경의 모든 내용이 사실일까?”라는 의심을 품는 성도들 역시 만만치 않게 많습니다. 특히 현대인들은 과학적 세계관에 놓여있음으로 성경의 기적에 대해서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사실이 아니라고 의심하거나 주장하는 사람들은 무슨 이유에서 그럴까요? 먼저, 성경 안에는 모순되는 것으로 보일 법한 장면들이 많이 연출됩니다. 대표적으로 사복음서의 상이함입니다. 신학을 전공한 이들은 복음서에 나타나는 각기 다른 차이는 저자들의 신학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사실로서 굳게 믿고 있는 교회 안 성도들에게는 이러한 논의 자체가 충격적인 접근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복음서 중 어느 한 권만 사실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나머지 3권의 복음서가 사실이 아닌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복음서들이 각기 다르게 보도하고 있는 사건을 같은 사건으로 통합시키는 것 역시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서 마태복음에서는 아기 예수님을 동방박사들이 찾아오지만, 누가복음에서는 목자들이 찾아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목자이면서 동방박사일까요? 아니면 목자 따로 동방박사 따로일까요? 이러한 질문은 성경무오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심각한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여기서 성경무오설이란, ‘성경은 인간에게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기원하였으므로 오류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무오설의 교리를 따르는 사람에게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들이밀면서 따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한 가지 사건을 두고 다르게 보도하고 있다면, 둘 중 하나는 오류가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까요? 아마 많은 이들이 적지 않게 당황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원점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복음주의 신앙을 가진 성도들은 이런 물음에 봉착했을 때 어떻게 답변해야 할까요? 성경은 사실이 아니고 단순한 은유이며, 문학 장르라고 말하면 될 문제일까요? 우선 이 문제를 답변하기 위해서 주의해야 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 복음서들을 억지로 조화시키려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서를 조화시키려는 모든 노력들은 사실 각 성경의 저자들이 이야기 속에 의도적으로 넣어놓은 신학적 장치를 왜곡하거나 지우는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복음서의 이야기를 조화시키려는 것은 논리학에서 결합의 오류에 해당합니다. 결합의 오류란 좋은 것 2가지를 섞으면 더 좋을 것이라는 기대로 섞었다가 본질을 놓치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쉽게 말해서 짬뽕과 짜장면이 맛있다고 2가지 음식을 섞어서 먹게 되면 더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를 섭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각 저자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신학적 의도를 무시한 채 혼합시키는 것은 각 복음서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를 훼손시키는 행위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마태복음 예수의 탄생 이야기에서 동방박사가 언급되지만, 누가복음에서는 목자가 언급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임으로 예수님의 탄생 때 누군가가 와서 경배한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누군가는 마태의 눈에는 동방박사로 기록되었고, 누가의 눈에는 목자로 기록되었습니다. 즉, 사건에 대해 성경 저자들의 해석과 신학이 성령의 조명과 허락 속에서 유기적 영감이 되어 반영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복음서는 단순한 예수님의 자서전이 아니고, 신학적인 문서요, 신앙의 증언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허구라거나 단순한 은유로서의 종교 문헌이라고 봐서는 안 됩니다. 또한 복음서가 예수님의 전기에 대한 역사성이 있음을 굳이 부정할 이유 또한 없습니다.

틀림없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기독교 신앙의 경전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서들에 기록된 사실의 조각들을 애써 ‘조화’시켜서, 상충된 내용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기보다는 그것들을 개별적인 이야기로 읽고 각자의 세계 속에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것은 상충이 아니라 완벽을 세워나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시선으로 각기 다르게 기록함으로써 그분의 그리스도 되심과 부활하심에 대한 강력한 증언이 더 확실시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은 ‘성경은 과연 사실인가?’라는 물음이 떨어졌을 때,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그리스도 사건에 대한 진리이다’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성령께서 성경 저자들을 조명하시고 이끄셔서 영감된 상태로 기록된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고백하고 받아들이기에 조금의 문제도 없음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성경을 그저 단순한 메타포(은유)라고 정의 내리는데, 이것은 성급합니다. 성경은 단순한 사실의 기록도 아니지만, 단순한 메타포는 더더욱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성숙한 신앙인들은 좀 더 물음을 구체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성경이 진리인가?’라는 질문이 ‘성서가 사실이냐? 은유이냐? 택일해야 한다’라는 물음으로 오해되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성경 전체를 문자적 사실로 주장하고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근본주의라고 비난받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성서는 전부 메타포(은유)로 구성된 메시지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자유주의적 근본주의’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전의 사건에 대해서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은유라고 단정지어버리는 행동이 또 다른 학문적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십자가 사건, 부활, 재림, 그리고 각종 기적을 기록된 그대로 믿는 신앙은 대단히 올바르며 소중합니다. 신앙의 전통과 신앙의 신비를 소중히 여기는 이들을 성서학계에 벌어지는 학문적 논의들로 거들먹거리며 성도들의 신앙을 훼손시키려는 사역자들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들에 대해서 단순한 실증적 사실 여부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면 안 되지만, 교리적 명제와 신앙적 사건에 대한 사실은 인정하고 믿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성도들은 성경을 단순한 문자적 사실로만 믿고 성경의 메타포(은유)를 무시하는 행위 역시도 대단히 반지성주의적인 행태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과학적 세계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우리는 성경이 진리임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에 대한 방어적 변증도 필요하지만 공세적인 차원에서 성경이 담고 있는 신학적 진리와 그 풍성하고 다양한 문학적 장르들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서도 주셨지만, 시가서와 선지서 그리고 복음서와 서신서도 주셨습니다. 즉, 성도들은 성경의 문자적 사실에만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성경의 장르와 기록 의도를 간과하는 우를 조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김요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