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유혈 사태에도… 현지로 돌아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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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1년 동안 미얀마 선교사로 활동한 A씨
21년 동안 미얀마에서 선교를 해 온 A 선교사 ©A 선교사 제공

21년 동안 미얀마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한국인 A씨가 본지에 현 미얀마 상황을 전했다. 한국에서 안식년을 보내던 중 미얀마 유혈 사태를 목도한 그는 지난 3월 중순 미얀마로 다시 돌아갔다. 다음은 그와의 서면 인터뷰 전문.

- 미얀마 현지 상황이 어떤지 궁금하다.

“2021년 2월 1일 발발한 군사 쿠데타로 인해 미얀마는 어두움과 절망과 공포만이 휘몰아치는 아수라장이 돼버렸다. 현재까지 민주주의와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기꺼이 생명을 희생한 미얀마의 영웅들이 700명이 넘었다. 무고한 시민들과 각계의 지도자들을 4천명 넘게 체포·구금하고 있다.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고 민주화를 지지하는 시위가 지난 5년간 민주정부에서 교육받고 자라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전국의 모든 도시에서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군부는 지난 군사독재의 경험을 바탕으로 총칼과 무력으로 쉽게 진압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겠지만, 다시는 어두움의 독재시절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구호 속에 전 국민이 하나 되어 군사 쿠데타 타도를 위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해외에 거주하는 미얀마 임시정부의 대표, 외교관, 유학생, 교민들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미얀마의 비극을 알리고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 미얀마 시위에 직접 참석했나?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초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현장의 엄청나고 장엄한 분위기를 경험했다. 우리의 역할은 물과 음식을 제공하고 기독청년들 공동체에 필요한 부분들을 협조하는 것이었다. 종교, 직업, 종족을 초월해 미얀마의 민주화와 자유를 되찾기 위해 하나 되어 외치는 미얀마 시민들의 모습에서 장엄하며 위대한 시민의식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 언론보도에 따르면, 현재 군경이 지난 8~9일 시위대에 박격포, 실탄 등 중화기를 사용해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다. 시위대 중 최소 82명이 숨졌다고 한다.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나?

“양곤에 바로 인접해 있는 ‘바고’라는 지역에서 9일 새벽 4시부터 시작된 군부와 시민 시위대의 접전으로 엄청난 희생이 발생했다. 3월 27일 양곤 흘라잉따야에서 발생한 시위대와 군경의 충돌에서 114명의 최대의 희생자가 발생한 뒤 지난 9일 바고에서 82명의 생명이 희생됐다. 여기서 많은 부상자들이 발생했다. 바고는 지난 한달 동안에도 시위규모가 크고 점점 심각해지는 지역이었다. 군부는 본보기를 삼는다는 작전으로 중화기를 동원해 민간인 시위대를 무차별 공격했다. 하루 종일 시위 현장에 방치된 시신들마저 3구를 제외하고 모두 수거해 간 후에 희생자를 은폐하고, 일부 시신들은 유가족의 간절한 요구로 돈을 받고(9만6천 원 상당)돌려 주기도 했다. 일부 시신은 장기를 훼손한 후에 봉합하여 돌려주기도 하였다.”

- 미얀마 시위대 중 기독교인이 많다고 들었다.

“이번 민주화 운동의 큰 틀을 보면, 군부는 버마족 민족주의 불교세력 중심이라고 표현을 해도 무방하고, 저항하는 시민세력은 불교도가 90퍼센트인 미얀마에서 대부분이 참여한다고 해야 맞는 해석이다. 하지만, 특별히 CRPH(국회 대표위원회: 임시정부)의 유엔대표인 닥터 사사를 비롯해 지도자 그룹이 기독교인이며, 쿠데타 세력에 대항하는 소수종족 독립군을 하나로 연합해 구성하고 있는 연방군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다. 그러므로 미얀마 전체적으로 보면 기독교는 전체 인구 대비 6퍼센트 가량의 소수 종족에 국한됐지만, 지금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에 나라를 구하고 군부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기독교가 역할을 해내고 있다.”

- 미얀마 기독교인들이 하고 있는 시위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젊은 Z세대의 시위 방법들은 기발하다. 비폭력 시민불복종을 근간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시위대를 집단지성으로 이끌고 있으며, 이전 홍콩의 우산혁명과 대만, 태국 등의 밀크티 얼라이언스 등이 함께 전력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시위를 이끌고 있다, 저녁 8시면 접시, 쟁반, 냄비를 두드리며 항의하고, 침묵시위, 플래시 라이트, 무인 시위, 꽃, 카툰, 퍼포먼스, 동영상 제작, SNS 조직망, 의사와 교사 연맹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군부를 압박하고 전 세계에 미얀마의 비극을 전파하며 군부의 잔악함을 노출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함께 모여 지역적인 연합 시위를 하고, 시위 현장에서도 찬양과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서원한다. 군부의 진압이 포악해지면서는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시민불복종으로 수배중인 공무원들과 가족들을 뒤에서 돕고 피신처를 찾아 보호하기도 하고, 모금을 통해 긴급한 생계를 지원한다. 또한 응급구조팀을 구성하여 시위 과정에서 발생한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 시위대에 참석한 미얀마 기독교인이 선교사님에게 한 말 중 인상 깊은 게 있다면?

“우리 선교부에 속한 공동체와 청년들은 모두가 시위에 참여했고 일부는 체포되기도 했다. 저는 한국에서 안타까움에 발만 동동 구르다가 서둘러 특별입국허가를 받고 들어올 수 있었다. 3월 중순에 미얀마에 입국했다. 그때도 한국에서 모든 지인들이 입국을 만류하고 걱정했지만, 가족과 사역과 공동체가 있는 미얀마에 주저함 없이 오게 됐다. 이곳에서 나를 맞이하는 청년들과 사역자들이 나에게 한 소리는 ‘선교사님이 돌아온 것이 가장 큰 선물이고 가장 큰 힘입니다’ ‘다른 외국인들은 탈출하는 이 때에 오히려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였다. 함께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기도 했다.”

- 위험을 무릅쓰고 미얀마로 가신 이유는?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선교사의 책무이기도 하다. 또한 국제 단체와 외교 채널의 권고 사항을 심각하게 고려한다. (하지만) 현장과 미얀마 역사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다면 신변의 위협보다는 이 때야 말로 함께하며 싸매고 치료하며 함께 부둥켜 안고 울어야 할 때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현재 미얀마 사태 속에서 교회 예배 상황은 어떤지?

“지난 일 년 간 코로나로 인해 대면 예배를 중단하고 소극적으로, 비대면 예배를 드려왔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은 소그룹 모임이나 줌을 통해서 더욱 뜨겁게 예배하고, 하루 몇 차례 시간을 정하여 기도한다. 때로는 금식기도도 하면서 그야말로 하나님께 탄식하며 탄원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 선교사님이 양육하고 있는 미얀마 교인 중 시위에 참석해 군경에게 붙잡혀 가거나 숨진 이가 있나?

”저는 지난 21년간 청년들과 한집에 살며 제자로 양육하고 최전방을 개척해 사람을 키워내는 사역을 했다. 현재 선교부의 전임 스태프 150명 중에서 거의 대부분이 함께 살고 양육한 제자들이다. 그 중에 한 남자 형제는 우리 청소년 기숙사를 졸업하고 공동체에서 양육 받으며 대학을 졸업한 후, 장애인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이번 시위에서 적극적으로 리더 역할을 했다. 그러던 중, 2주 전에 체포되어 지금은 인센 감옥에 수감돼 있다. 또한 일주일 전, 한 자매도 체포됐다. 이 자매는 우리 가족과 함께 살면서 제자양육 과정을 거쳤고 간호대학을 졸업해 병원에서 일하다 시위현장에서 부상자를 치료하고, 여러 지역에 파견할 응급구호 교육생들을 가르치는 역할을 했다. 그러던 중 의료팀과 함께 체포됐다. 현재 경찰서 구치소에서 최종 심사를 거치고 인센 교도소에 구금됐다가 조만간 석방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달 받았다.”

A 선교사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생일에 찍은 사진. ©선교사 A씨 제공

- 중국군이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나?

“중국은 군부를 지원하기보다 실리를 내세우며 중국의 이익에 유리한 편을 선택할 것이다. 전체적인 판도가 미국과 중국의 각축장이 되어가고 있지만, 유엔과 국제 사법재판소의 판결, 국제사회의 압력이 작용하면 중국도 민주정부의 손을 들어주며 ‘이기는 편이 내 편’이라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고 나는 전망하고 있다.”

-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당부할 말씀이나 기도제목이 있다면?

“더 많은 희생의 피를 흘리지 않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시민불복종에 참여하여, 그리고 쿠데타로 인하여 생계가 막막해진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힘을 모아주세요. 그러나 ‘수많은 한국의 모금이 투명하고 적절하게 집행돼야 할 텐데…’ 하는 걱정도 앞섭니다. 지난 2008년 사이클론 나기스 때도 구호와 선교를 앞세워 일부 브로커 같은 세력들이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킨 사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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