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문수 박사
    '한국성결교회' 기원 '동양선교회에 뿌리 둬'
    박문수 박사는 마지막 부분에 서론에 제기한 한국성결교회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논의에 답변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는 서론에서 "최근 한국성결교회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었다. 그 발단은 선교학자인 모 교수가 한국성결교회는 미국 만국성결교회의 직계자손이며, 만국성결교회와 한국성결교회는 모자관계이고, 동양선교회는 만국성결교회의 산하기관이라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하였기 때문이다"..
  • 어니스트 길보른
    "그의 생애는 동양의 복음화 위해 계획하신 하나님의 부르심"
    박문수 박사는 길보른 가가 '한국성결교회에 끼친 영향'을 정리하며 "길보른 가의 선교활동은 한국성결교회에 소중한 사랑의 빚을 남겼다. 한국성결 교회에 빚을 안긴 길보른 가의 첫 번째 사람은 어니스트 A. 길보른(Ernest Albert Kilbourne)이다. 그는 1907년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을 창립할 당시부터 가장 빈번 하게 한국을 방문한 사람이었다. 또한 동양선교회의 한국사역을 직접 ..
  • 찰스 카우만 어네스트 길보른
    '한 벌 옷' 단추 하나로 변화줬던 '일본 선교사' 길보른
    어니스트 길보른 가족은 1902년 8월, 요코하마 항에 도착했다. 이대부터 어니스트 길보른은 동양선교회 부총재로서 카우만 선교사를 도와 일본선교를 위해 온 힘을 쏟게 된다. 박문수 박사는 "어니스트 길보른은 선교사 주택이 아닌 도쿄 주변의 시골에서 토착민의 집에서 살고자 하였다. 카우만은 이 요청을 동의하여 보내주면서 다음의 충고를 하였다. '기억하세요. 공부만 하는 것입니다. 언어를 공부하..
  • 찰스 카우만 어네스트 길보른
    4반세기 동안 같은 길 걸은 일본 선교의 시작
    박문수 박사는 "1902년 8월, 요코하마 항에 어니스트 길보른 가족이 도착한다는 소식은, 1년 전인 1901년 2월 21일 일본에 도착하여 동양선교회의 선교사역을 시작했던 카우만 부부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며 "이때의 흥분되고 기대감으로 가득한 분위기를 레티 카우만은 『동양선교회 창립자 찰스 카우만』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 찰스 카우만과 레티 카우만
    '동양선교회' 찰스 카우만·어니스트 길보른의 '회심'
    어니스트 길보른(Ernest A. Kilbourne)의 회심 체험을 소개하며 박문수 박사는 "어니스트의 회심에는 회사 동료였던 찰스와 레티 카우만의 영향을 부인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결혼 후, 어니스트 길보른은 미래가 없어보이는 서부의 버지니아를 떠나 웨스턴 유니언 사의 시카고 사무소로 전근을 요구하여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오래되지 않아 그는 전신 기사들을 1,000명이나 관리하는 ..
  • 문우일 박사
    "C&MA 창립자 심슨 '사중복음' 중국선교 위해 고안 가능성 높아"
    28일 오후 7시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진행된 서울신학대학교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주최 제 79회 정기세미나에서 '기독교연합선교회(C&MA)의 창립자 A.B. Simson의 사중복음과 아시아선교'를 주제로 문우일 박사(서울신대 교양학부)가 발제했다. 문 박사는 "심프슨(A. B. Simpson)과 '사중복음'(the Fourfold Gospel)은 19세기 말 부터 20세기 초까지 서구 복음주의 ..
  • 황덕형 교수
    "사중복음, 그리스도의 사랑 담는 그릇"
    황덕형 교수(서울신학대학교/조직신학)는 '성결: 종말의 은총인가? 인간의 경험인가?'를 주제로 발제하며 "작금의 한국교회의 위기와 고질적인 병폐가 한 두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그들이 몸담고 있는 한국교회 전체의 잘못된 관습과 구조적인 요인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통감하다"며 "한국의 전체 기독교가 근본적으로 새로워져야 하는 요구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