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길 태릉선수촌장이 14일 오후 기자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 ⓒ김철관 기자

제30회 런던올림픽(2012년 7월 27일부터 8월 12일까지)은 역대 올림픽 출전사상 원정 경기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금 13 개 은 8개 동 7개. 메달 합계 28개, 종합순위 5위의 성적이었다. 특히 스포츠 강국이라고 불린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호주 등을 제친 것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피땀 흘린 훈련 등이 이뤄낸 쾌거였다.

하지만 이들 선수들이 메달을 딸 수 있게 선수촌에서 고락을 함께하며, 선수들의 뒷바라지를 한 주인공이 있다. 바로 박종길(67) 태릉선수촌장이다. 박 촌장은 선수들이 메달을 따는데 1등 공신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선수들의 식사, 면담, 숙소 등은 물론, 소소한 일까지 직접 챙기며 묵묵히 뒷바라지를 해 왔다. 역대 태릉선수촌장 중 세계올림픽 최고의 성적(5위)을 거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언론은 이를 주목하지 않았다.

지난 14일 오후 5시 서울 노원구 화랑로 727번지에 있는 '태릉선수촌'을 찾아 박종길 선수촌장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런던올림픽 580여일을 남기고 지난 2011년 1월 3일 태릉선수촌장으로 부임해 선수들과 함께 생활해 오고 있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시사철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장 열 바퀴를 돈다. 새벽 6시쯤 선수들이 일어나 훈련을 하려 하나 둘 나온다. 매일 먼저 촌장이 일어나 운동장을 돌면 선수들이 '왜 이렇게 일찍 일어냐'고 묻는다. 촌장이 일찍 일어나 선수들을 살피고 훈련 장면을 보면서 무엇을 도와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리더가 솔선수범해야 선수들이 편하게 훈련할 수 있다.”

▲ 박종길(가운데) 선수촌장이 인터뷰를 끝내고 동석한 홍윤선(오른쪽) 무용가와 최경택 태릉선수촌 지도위원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김철관 기자

그는 선수들을 위해 열정을 보이고 배려하고 따뜻하게 보살피는 것이 리더로서 할일이라고 강조했다.

“내가 생각하는 리더십은 열정과 모험, 배려 등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 열정이 가장 중요하다. 모든 선수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솔선수범을 했다. 이런 열정이 제대로 된 리더십이라고 생각해 지금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선수촌에서 선수들과 함께 자면서 매일 훈련 현장을 쫒아 다녔다. 먼저 솔선수범을 하니 감독, 코치들도 말할 필요 없이 잘 따랐다. 특히 리더는 식당 아주머니 등 약자에 대한 배려도 중요하다.”

그는 선수들과 자연스레 만나 스킨십을 하면서 컨디션과 선수들의 어려움을 파악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긴장돼 고민하는 선수들이 더러 있다. 이런 선수들과 면담을 하고 용기를 심어준다. 훈련장, 식당 등에서 선수들을 만날 때마다 자신감을 심어주고, 동기유발이 될 수 있는 얘기를 해줬다. 부임 6개월 이후부터 선수 각자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열심히 훈련한 모습에서 메달을 딸 수 있는 선수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50여명 정도가 메달권이 되겠구나하고 예측을 했다. 종목마다 메달권 진입 선수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 남자 국가대표 선수 숙소인 올림픽의 집이다. ⓒ김철관 기자

그는 선수들에게 꾸지람을 하기보다 용기를 심어주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게 했다. 특히 선수로서 본분을 망각한 선수까지 껴안으면서 자신감을 심어줬다.

“이름을 밝힐 수 없지만 늦은 저녁 선수촌을 몰래 나가 새벽에 들어오다 발각된 일이 있었다. 바로 합숙 생활 선수촌 규정을 지키지 않았으니 징계를 해야하는 것이 규칙이다. 두 선수를 조용히 불러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고민을 들어줬다. 앞으로 열심히 훈련할 수 있겠냐. 금메달 꼭 따야 한다. ‘예 한번만 봐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끼리 알 수 있게끔 각서 하나를 써라. 각서 하나 쓰고 가더니 훈련을 더욱 열심히 했다. 두 선수가 결국 금메달을 땄다. 각서는 징계를 위한 것이 아니고 훈련을 열심히해 메달을 따라는 각성을 의미한다. 이외에도 모든 선수 하나하나에게 관심을 보여줬다.”

유도 금메달 리스트인 송대남 선수는 ‘촌장이 용기와 희망을 줬기 때문에 금메달을 땄다’면서 고마움을 전했다고도 했다.

▲ 올림픽의 집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김철관 기자

런던올림픽에서 아쉽게 메달을 놓친 레슬링 정지현 선수의 일화도 들려줬다. “올림픽 출전을 얼마 남겨두고 정지현 선수가 나이가 스물 아홉살이라서 걱정을 했다. 그래서 67세인 내가 그 선수 앞에서 푸샵 100번을 거뜬이 했다. 그리고 나는 45살에 금메달을 땄다고 했다. 너는 20대이니까 한참 때라고 했다. 이후 정 선수는 연습을 열심히 했다. 그에게 메달을 기대했다. 금메달을 따기 위해 자식 이름도 '정올금(올림픽 금메달)’이라고 지을 정도로 대단히 노력한 선수이다. 약간의 심판 편파 판정에 메달을 놓쳐 아쉬웠다.”

그는 체조 도마의 양학선 선수도 연습 벌레라고 했다. 양 선수를 위해 올림픽경기장과 같이 연습장도 꾸며주고 실전같이 연습을 하게 했다. 박 촌장은 수영, 양궁, 태권도 등에서 메달을 많이 기대했는데 예상이 빗나갔다고도 했다. 다행히 레슬링과 체조, 복싱 등에서 선전해 메달을 보태게 됐다고도 했다. 여자 배구는 메달을 확신했는데 아쉽다고도 말했다.

메달은 딴 선수의 피나는 노력도 있지만, 매일 훈련을 잘할 수 있게 여건을 마련해 준 박 촌장의 꾸준한 관심도 한 몫 작용했다.

박 촌장은 런던올림픽을 위해 태릉선수촌, 태백선수촌, 진천선수촌 등에서 연습하는 선수들을 격려하기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돌아다녔다. “태릉선수촌(9만 5천평)이 비좁아 연습을 하지 못한 종목들을 위해 마련한 곳이 태백선수촌과 진천선수촌이다. 사격장, 수영, 야구, 육상, 핸드볼, 농구, 배구, 테니스, 육상 등 12개 종목은 진천선수촌(25만평)에서 연습을 한다. 훈련 상황을 체크하고 선수들을 관리해야 하니 자주 가게 된다.”

그는 올림픽을 앞두고 스위스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선수촌을 돌아다니면서 선수촌 운영실태를 점검했다. “외국 선수촌에서 훈련 상황을 보고와 자신감을 얻었다. 프랑스는 금메달 13개가 목표였고, 일본은 15개가 목표였다. 하지만 이들 나라보다 우리가 더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더 힘들게 훈련하는 것을 알았다. 독일을 가 연습을 하는 것을 보니 워낙 강한 나라라서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자신을 못했다. 여기서 생각한 것은 선수들만의 경쟁도 중요하지만 각 나라 선수촌장과의 경쟁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누가 촌장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를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돌아와 선수들이 먹는 것, 자는 것, 고민, 컨디션, 방 등을 밀착 관리했다. 식당 아줌마 이름, 선수 이름과 코치 이름 등을 다 외우고 있다. 선수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갔다.”

한국 출전 역대 올림픽 중 최고의 성적(5위)을 거둔 것은 우연히 아니었다. 촌장이 리더십을 십분 발휘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해 냈다. 호주, 스위스, 일본,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태리 등을 모두 물리쳤다. 과거 동독과 서독으로 나눠 있을 때도 그들의 메달을 따라가지 못했다. 이제 통일이 돼 독일이 하나가 됐는데도 우리가 이겼다. 상상을 못할 일이었다. 호주도 한번도 이겨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이번에 이겼다. 미국 중국 영국 러시아 그리고 우리나라 이니까 대단한 성과다. 촌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성과가 좋아 마음이 너무 뿌듯하다.”

▲ 14일 오후 연습을 마친 국가대표선수들이 선수촌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김철관 기자

박 촌장은 70~80년대 사격의 대명사였다. 당시 해병대에서 장교 생활을 하면서 제법 사격 솜씨가 좋았다. 이 때문에 사격 국가대표로 뽑힌 사연도 기막히다. “해병대에서는 인천상륙작전 기념일 9월 15일과 해병대가 창설한 4월15일에 사격대회를 한다. 이 때 해병대 전체에서 우승을 했다. 그래서 월남전 참전 용사로 뽑혔다. 베트남으로 출발할 배를 탔다. 베트남 청룡부대와 함께 하기 위해 간 것이다. 그런데 총 잘 쏜 사람 내리라고 했다. 내가 잘 쏜다고 하니까 월남전보다 청와대 특명이 중요하다고 데리고 갔다. 70년도 박종규 경호실장이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유치해놓고 선수들이 없으니까 군인과 경찰 중 총을 잘 쏜 사람들을 선수로 모은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바로 이전에 아시안올림픽을 유치하고도 체육 인프라가 없어 반납할 시기였다. 당시 280만불 정도의 벌금까지 물었다.”

70년대 태릉사격장으로 들어와 먼저 불러온 선수들과 함께 연습을 했다. “선수촌에 들어온 지 9개월 만에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출전했다. 당시 이제 9개월 된 선수가 나간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선수명단에서 빼려고 했다. 그러나 선발전에서 이겨 경기에 나가 메달 두개를 땄다. 이후 아시안 게임 금메달 3연패를 했다.”

▲ 태릉선수촌 내 조형물 ⓒ김철관 기자

현재 그는 1년 6개월 정도 남은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2014년 2월 7일부터 23일까지)과 그 이후 있을 인천아시안게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박 촌장은 선수생활, 코치 등을 비롯해 30년 정도 태릉선수촌에 몸을 담았다. 그래서 태릉선수촌의 훈련 상황, 선수 행동, 방 도배, 주방, 후생시설 등의 환경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박 촌장은 스포츠는 행복해야 한다는 ‘스포츠행복론’자이다. 그는 무엇이든지 열정을 갖는 신바람 인생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선수촌 운영계획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더 자신이 생겼다. 메달을 딴 선수가 2연패 하기는 평균 20%정도 뿐이 안 된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도 20%도 안됐다. 이번에 딸 수 있는 선수가 못 딴 경우가 있었다. 그런 선수들은 다음에 가능하다. 배드민턴 이용대 선수, 유도 왕기춘 선수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런던올림픽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이 많아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것도 다음 대회의 어려움이다. 하지만 나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메달을 딸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 선수촌의 존재가 메달을 만든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미 7~8개 금메달은 확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머지 5개 이상을 따면 될 것이다.”

박 촌장은 올림픽 스포츠의 효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올림픽은 전 세계인의 축제다. 국민들에게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다. 경제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700조 이상의 부가가치가 생겼다고도 한다. 국가브랜드와 위상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예를 들어 우리 축구 동메달은 금메달이상으로 값진 것이다. 우리나라가 어려운 시기인 지난1964년도 런던올림픽이후 축구 종주국 영국을 최초로 이겼다. 축구 종주국을 깰 정도의 실력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 한국 스포츠의 위상이 높아졌다. 런던올림픽 영국과의 경기가 있고 난후 가는데 마다 ‘꼬레아’ ‘꼬레아’를 외치는 영국 국민들을 보면서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영국올림픽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감명 받은 선수의 일화도 하나 소개했다. 경기장 가까이에서 본 레슬링 김현우 선수의 금메달 확정 직후의 일이었다. “눈 한쪽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엄청 부었다. 온몸이 상처투성 이었다. 그 상황에서도 우승을 하니까 제일 먼저 찾은 것이 태극기였다. 태극기를 찾았다. 태극기를 건네받더니 한 바퀴를 돌고 태극기를 펴고 넙죽 절을 했다. 당시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을 많이 흘렸다.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선수들이 이 만큼 국가관이 뚜렷하고 태극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박 촌장은 김현우 선수의 퍼포먼스가 끝나고 그를 만나 어떻게 해 태극기를 찾게 됐냐고 물어봤다고 했다. “현우는 ‘국가 상징인 태극기가 있어 열심히 했다. 그래서 태극기를 펴놓고 넙죽 절했다’고 했다. 그를 몇 번 껴안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평소 훈련도 열심히 해 메달을 예상했다. 평소 현우에게 잘 대해 줬다. 한번은 현우 엄마가 찾아왔다. 그는 ‘촌장님이 현우를 예뻐한다’고 해 찾아왔다고 했다. 현우가 엄마한테 ‘촌장이 잘해준다’고 여러 번을 얘기를 했다고 들었다.”

옆에 있던 인터뷰를 지켜보던 최경택 태릉선수촌 운영본부 지도위원은 “지난해 1월 부임할 때 태릉선수촌 환경이 많이 열악했는데, 촌장님이 부임한 후, 많은 점이 개선돼 선수들이 훈련을 원활하게 할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박 촌장은 선수촌 곳곳을 보여줬다. 특히 선수촌 식당에서 선수들과 함께 저녁식사도 했다. 그는 지나가다 우연히 만난 선수들에게 다정다감하게 대했고 선수들도 아버지처럼 친근하게 여기는 모습을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이날 홍윤선(무용학 박사) 무용가와 최경택 태릉선수촌 운영본부 지도위원이 인터뷰 자리를 함께 했다.

▲ 이날 태릉선수촌의 저녁노을이 장관을 이루었다. ⓒ김철관 기자

한편, 지난 1966년 6월 30일 건립한 태릉선수촌은 대한체육회(1920년 7월 13일 설립)에 속해 있다. 태릉선수촌장이 진천선수촌(2011년 10월 1단계 준공, 2단계 공사 중), 태백선수촌(1997년 12월 건립)도 관할하고 있다. 태릉선수촌은 남자 310명, 여자 167명을 수용해 훈련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충북 진천선수촌은 수영, 테니스, 정구, 육상, 사격장 등 태릉선수촌의 부족시설 등이 들어서 있다. 2017년 2단계 공사가 끝나면 하키장, 양궁장 등이 들어서게 된다. 강원도 태백선수촌은 해발 1330m 고지에 위치해 선수들의 국내순환훈련장으로 효과가 높다. 특히 심폐기능강화 등 경기력 향상을 도모하고 있는 곳이다. 실내체육관과 400m 트랙운동장 등이 있다.

선수촌은 국가대표와 후보 선수 및 꿈나무을 육성하고 있고, 국가대표선수들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훈련을 실시해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게 기반을 마련한 곳이다. 특히 스포츠를 통한 국위선양 및 국민통합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태릉선수촌의 체계적인 훈련으로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세계 7위에 이은 런던올림픽 세계 5위는 출전 하계올림픽 중 최고의 성적이다. 지난 2010년 벤쿠버동계올림픽 5위를 했고,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면서 4회 연속 아시안게임 종합 2위의 기록 달성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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