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개정시한 한달여를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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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취현 변호사

이제 연말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코로나로 정신없이 가버린 한해가 야속합니다. 그런데 올해가 이대로 그냥 가버리면 오랜 논란의 대상이 되어오던 낙태죄 규정이 맥없이 사라져버립니다. 안팎으로 열심히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이것이 무슨 문제인지 알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법은 어렵다고 하는데, 연수원까지 합쳐 15년차 변호사인 제 눈에는 법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의뢰인들이 찾아오셔서 ‘제가 이상한 건가요?’라고 물으실 때 제가 종종하는 말이 ‘선생님이 이상한 것이 아니예요. 법은 원래 우리의 상식에 맞는 것의 최소한을 정한 것이고, 그 상식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상식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있는 겁니다.’라고 말씀드리곤 합니다.(물론 지금 세상에도 언제나 그대로 적용가능한 말인지는 의문이 들때도 있긴 합니다.)

형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형법’이라는 용어를 포털사이트에서 용어검색 해보니 “무엇이 범죄이고 그것에 어떠한 형벌을 과할 것인지 규정하고 있는 법률을 형법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흔히 형법은 처벌을 하기 위한 법이라고들 생각하시는데, 형법은 무조건적인 처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형벌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침해받기 쉬운 어떤 법익을 보호하고, 이것을 통해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형법의 주된 기능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낙태죄에 대해서 살펴보면, 낙태죄에서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은 바로 ‘태아의 생명권’입니다. 바꿔 말하면 형법에서 낙태죄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단순히 죄명이나 규정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고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법익이 침해되더라도 처벌을 통해서 보호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동의를 전제로 이제 법률규정에서 제외시키자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려면 태아의 생명권이 보호가치가 없다고 인정되거나 아니면 다른 제도를 통하여 충분히 보호되고 있는 두 가지 경우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다른 법이나 제도를 통해 태아의 생명권이 충분히 보호되고 있습니까? 낙태죄를 폐지하자는 사람들의 주장은 태아의 생명권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에 비해서) 보호가치가 없다는 점에만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이런 취지에서 헌법재판소의 다수의 재판관들도 낙태죄 전부 위헌이 아닌, 낙태죄 조항 자체는 효력을 유지하는 형태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고, 태아의 생명권 자체에 대해서도 우리사회가 보호할 가치가 있는 법익이라는 점을 명시하였던 것입니다.

어차피 처벌되지도 않고 사용되지도 않는 조항이니 형법에서 없애버려도 별 무방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그러나 형법의 사회질서유지기능을 고려할 때, 그 질문이 반드시 타당한 것인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간통죄가 폐지된 후 간통자체의 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배우자의 간통으로 고통 받는 상대방이 보호받을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인 형벌 기능이 사라짐으로서 간통 배우자의 상대방이 느끼는 어려움은 더욱 커졌다는 것입니다. 태아는 자기의 이익을 추구할 방법이 없고, 고통을 경감시킬 능력이 전혀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간통죄 폐지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낙태죄 폐지로 인한 피보호자(태아)의 어려움이 말할 수 없이 더 커진다는 것, 그것이 법률가로서 낙태죄 폐지를 결사반대하는 이유입니다.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것은 곧, 낙태한 여성을 처벌해야 한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질문을 하십니다. 그러나, 형법에 정한 범죄 조항은 어느 하나 빠짐없이 누군가의 자유와 행복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낙태를 해 본적이 있다는 미투 운동을 어딘가에서 보았습니다만, 이것은 피해자 미투가 아닙니다. 생명을 살해한 적이 있고, 그래서 처벌되지는 않았지만 형법에 정한 범죄행위를 해 보았다는 미투는 이기복 교수님이 하셨던 것과 같이 철저한 자기 성찰과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과거 범죄행위에 대한 자기고백이 과거에 좀 놀아본 언니의 당당함의 선포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 사회의 진정한 진보인지, 그것에 동의하시는지 우리를 돌아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연취현(변호사, 사법시험 제47회, 연취현 법률사무소 대표, 행동하는 프로라이프 법률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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