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멸절설’(Annihilation Theory)은 성경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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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욱 교수

[1] 예나 지금이나 지옥 문제는 언제나 뜨거운 이슈 중 하나이다. 지옥이 참으로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그곳은 어떤 곳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지옥은 ‘문자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하는가, 아니면 하나의 ‘상징적인 표현’이나 ‘비유적인 표현’에 불과한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 영접하기를 거부한 채 죽은 사람의 운명은 과연 어떤 상태일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가 계속 늘어가고 있는 위기의 상황을 맞아 지옥에 관한 문제를 한 번 정리하고 넘어감은 유익한 일이라 생각한다.

[2] 전통적으로는 구원받지 않고 죽은 사람이 가는 지옥은 ‘불못’으로서 ‘영원한 형벌의 장소요, 분리의 장소요, 의식적 고통의 장소요, 후회의 장소’라고 믿어 왔다. 그러나 최근 이런 전통적인 지옥관은 많은 도전을 받고 있고, 견고하게 보이던 지옥문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복음주의자로 알려진 존 스토트(John Stott), 존 웨남(John Wenham), 필립 휴즈(Philip Hughes), 에드워즈 퍼지(Edward Fudge) 같은 학자들이 ‘영혼멸절설’(annihilationism)을 전통적인 지옥관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문제는 더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3]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우선 성경에서 구원받지 않은 자들을 향하여 ‘망한다’(απολλυμι; perish)는 단어나 ‘멸망’(απωλεια 또는 ολεθρο; destruction) 같은 단어들을 사용할 때 그 단어들은 반드시 문자적으로 망해서 소멸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cf. 빌 1:28, 3:19; 살전 5:3; 살후 1:9; 히 10:39; 벧후 3:7; 계 17:8, 11).

예를 들면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는 구절에서, 하나님은 영혼을 문자적으로 멸해서 완전히 소멸할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사람의 영혼은 불멸이 아니라고 말한다.

[4] 또 지옥에 관한 여러 이미지 가운데 ‘지옥불’, ‘불못’ 같은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어서 ‘지옥불’이라는 것은 ‘영원한 고통을 주는 것’이라기보다는 ‘태워서 없애 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불의 이미지가 영혼멸절론자들의 주장과 같이 태워버린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2)고 하신 말씀이나,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마 7:19)고 말씀하신 것은 ‘태워 없앤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5] 그러면 지옥형벌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끝난다는 영혼멸절설이 맞단 말일까? 천만에다. 신약에서 사용되고 있는 ‘απολλυμι’나 ‘απωλεια’ 같은 단어들이 사용되고 있는 구절을 잘 분석해 보면, ‘멸절’이나 ‘소멸’을 의미하는 구절도 있지만 그렇게 볼 수 없는 구절도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이 단어들은 ‘멸절’과 ‘소멸’이란 뜻 외에도 ‘잃어버린’(lost)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15장에서는 ‘잃어버린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눅 15:4, 6, 8, 9, 24, 32). 마 9:17절에서는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어서 가죽부대가 ‘찢어져 못쓰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막 14:4절에서는 한 여인이 예수의 머리에 부은 향유를 ‘허비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하나님을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분”으로가 아니라 “몸과 영혼을 지옥에 ‘버려두사 외면당한 채 영원한 고통 속에 거하게 하시는’ 분”으로 이해해야 한다.

[6] 또 모든 ‘불’ 이미지가 다 '태워 없앤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음에도 유의해야 한다. 마 25:41-46절도 불을 ‘태워 없앤다’는 의미보다는 ‘영원한 고통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 41절에는 분명히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로 들어가라”고 했는데, 불이 한순간 모든 것을 다 태워서 없애버리는 것을 의미했다면 어떻게 그 불을 ‘영원한’ 불로 묘사할 수 있었겠는가?

[7] 막 9:47-48절에 의하면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했다.
이 구절에서 중요한 것은 ‘구더기’라는 단어이다. 우리말 성경에는 그냥 ‘구더기’라고 되어 있지만, 헬라어 원문에서는 “‘그들의’ 구더기”(ὁσκώληξ αὐτῶν, their worm)라고 말하고 있다.

지옥이 구더기도 타지 않는 곳이라면 그 구더기가 파먹어야 할 대상인 ‘영혼들’ 역시 영원히 구더기의 먹잇감으로 고통당하는 곳이라는 뜻 아닌가.

[8]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도 분명히 ‘불’을 ‘태워 없앤다’는 의미보다는 ‘영원한 고통’의 의미로 소개되고 있음을 놓치지 말자. 부자가 불 속에 소멸되고 없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눅 16:24)라고 부르짖고 있음에 주목하라. 이것을 단순한 비유나 상징으로만 보려는 이들이 있어 왔지만, ‘나사로’라는 거지의 이름이 비유 속에 명시된 사실(“‘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20))로 볼 때, 이 사건은 필히 지옥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상황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9]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당한다는 근거는 성경 속에 차고도 넘친다. 만일 불신자들의 영혼이 지옥에서 영원히 불타지 않고 순간적으로 소멸되어 버린다면 전도의 필연성이 치명타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만일 ‘천국 갈래 아니면 지옥에 떨어져 순식간에 사라져버릴래?’라고 질문한다면 뭐라고 답할까? ‘천국이고 지옥이고 믿지도 않을 뿐더러, 혹 지옥이 존재하더라도 영원한 고통의 의미가 아니라면 굳이 예수 믿을 필요가 뭐 있나?’ 이렇게 반문한다면 뭐라 말할 것인가?

영혼구원과 전도의 필연성을 사라지게 만드는 교리는 결코 성경의 가르침도 아니고 아주 유해한 발상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10]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망자가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마스크를 낀 채 예배를 드리고, 되도록이면 바깥출입을 금하고 있다. 행여 공기 중에라도 바이러스 균이 호흡기로 침투하여 감염자로 확인 되어 사망에 이를까봐 모두가 두려움과 공포 속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늘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지는 것이 좋을까? 육신적 죽음이 무서워 건강에 신경 쓰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영원한 지옥형벌을 피하고 영혼의 영원한 안전과 안위를 위해 자기 마음을 잘 관리하고 다스림에도 최선을 다해야겠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신성욱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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