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설교] 하용조 목사의 ‘세븐 터치’ 6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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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터치(요20:19~23)

* 본지는 온누리교회를 개척한 故 하용조 목사의 생전 주요 설교를 요약해 [다시 읽는 명설교] 코너에서 소개합니다.

故 하용조 목사 ©온누리교회 영상 캡쳐

기독교의 핵심 진리 가운데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창조의 대한 진리, 부활의 대한 진리이다. 이 두 가지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창조의 대한 진리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딱 맞다. 그러나 창조론은 믿음으로 이해해야만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핵심 진리이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부활이다. 십자가는 이해할 수 있다. 죽음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안다. 그러나 부활은 인간 안에 없는 것이고, 경험적인 것이 아니기에 어려운 것이다.

창세기 1장 1절을 보자. 인간은 유에서 유를 창조하지만,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다. 이것은 이성, 경험, 합리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믿음으로 창조를 받아 드릴 때 가능하다.

부활이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가 다시 죽으면 부활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나사로는 부활이라고 하지 않는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님을 부활하셨다고 말한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을 보면 어떻게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죽지 않을 수 있을까.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 죽음은 끝이 아니라 통과하는 문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죽음을 선물로 생각한다. 천국이 없고, 영혼이 없고, 구원이 없는 사람은 죽음이 절망이다. 그래서 안 죽으려고 하고 죽음이 슬프다.

고난 뒤에는 죽음이 온다. 주님은 죽음을 어떻게 극복하셨는가. 죽음을 어떻게 생명으로 바꾸었는가. 이것이 부활터치이다.

에스겔서에 마른 뼈가 살아나고 살아나서 군대가 된다. 부활의 기적을 구약에서 보여주는 대목이다.

요한계시록 1장 18절을 보면 부활은 영원히 사는 것이다. 죽음이 하나님의 손에 있을 때 영광스러운 것이다. 부활의 핵심에는 생명이 있다. 생명은 어떤 죽음도 살린다.

로마서 8장 11절에 바울은 당신은 죽은 후에 부활의 영이 들어가므로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탄핵정부, 총선 등 우리가 걱정하는 것들이 많지만, 하나님의 영이 이 민족 가운데 들어오면 이 민족이 부활할 줄로 믿습니다.

부활은 완전한 승리, 궁극적인 승리, 영원한 승리이다. 불안해하지 말라.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신다. 예수님이 죽으셨다면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모이진 않았을 것이다. 그 분이 살아 계신다는 것은 여러분들도 영원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 20장 19절을 보면 문을 닫았는데 예수님이 들어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활 이후에는 영의 몸으로 변한 것이다. 공간과 시간을 넘어 주님은 오신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육의 몸과 영의 몸이 존재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첫 번째 메시지는 ‘당신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이다. 샬롬이 그런 뜻이다. 샬롬을 가진 자는 불안해하지 않는다.

본문 20장 20절에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다는 것은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간다는 것이다. 창조한대로 온전한 몸으로 간다. 육과 영이 같이 공존하는 모습이다. 21절을 보라. 여러분이 지고 있는 불안의 무게가 얼마나 큰가. 모든 염려, 근심, 걱정 뿐 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좌절감과 열등감도 사라자길 바란다.

예수님의 두 번째 메시지는 ‘내가 너희를 보내노라’이다. 세상으로 파송하는 것이다. 가난과 절망이 있는 곳으로 가서 내가 한 것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라는 것이다.

본문 20장 22~23절을 보면 세 번째 메시지로 상처가 있는 모든 이들이여 ‘성령을 받으라는 것’이다. 어떻게 받는가. 그냥 받으라는 것이다. 사랑으로 주는 밥은 그냥 먹는 것이다. 성령이 그런 것이다.

끝으로 두 구절을 보자. 고린도전서 15장 12~14절을 보자.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이 헛것이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5장 42~45절을 보자. 사람은 혼자 있으면 지저분해진다. 썩는 것으로 심겨졌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부활한다.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부활한다. 약한 것으로 심어졌지만 강한 것으로 태어난다. 육의 옷으로 심고 신령한 것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부활이다.

부활의 축복이 북한 함경도에도 있길 원한다. 예수님이 부활한 것이 부활입니다. 부활의 영광이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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