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추수감사절로…취약계층·소외된 자들 섬기고 나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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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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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나비 2016 추석 논평] 가족과 친척연대 강화·고향교회 방문해 성도교제·미자립 교회 돕자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 상임대표·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창립원장)

오는 9월 15일은 2016년에 맞이하는 추석이다. 3일 동안 공휴일을 갖는 추석 명절은 추수와 결실을 맛보면서 잔치를 열고 놀이를 즐긴다는 측면에서, 아마도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삼국시대 이래 추석을 명절로 지켜온 우리의 조상들은 잔치를 벌이며 여러 놀이를 즐겼다. 풍요로운 가을 작황과 천고마비의 계절을 몸으로 체험하기도 하지만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후여서 9월은 가장 여유가 있고 놀며 쉬기에 좋은 때이다. 이런 이유로 다른 날에는 즐겨하지 못해도 이 날 만큼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잔치를 만끽하며 각종 놀이를 함께하였다. 물론 매우 종교적이었던 우리 조상은 추석 명절에 '조상신'에게 제사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가을의 풍요는 조상신 덕분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수 천 년 전 우리 민족에게 죽은 조상은 살아있는 가족의 안녕과 평안 그리고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추석이 서구의 추수감사절과 그 내용상 유사하다면,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11월 추수감사절과 9월의 추석, 곧 '두 번'의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셈이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기에, 샬롬나비는 추석을 맞이하여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지킬 것을 다시 제안하면서 추석 절기가 갖는 문화적 의미를 다음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1. 추석 명절을 추수감사절 행사로 지내는 것은 복음을 전통 문화로 수용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절은 1908년 예수교장로회 제2회 대한노회에서 양력 11월 마지막 목요일로 정한 이래 여러 번 10월 혹은 11월 중에 변경 실시하다가 지금은 11월 셋째 주일에 지키고 있다. 이는 아마도 미국의 추수감사절(11월 넷째 주 목요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11월은 과일과 곡식을 거둘 철이라기보다는 추수하고 거둔 과일과 곡식은 이미 곳간에 넣어 둔지 몇 달이 지난 시기이다. 당연히 이러한 시기에 감사절을 지킨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특히, 오늘날 넓게 보아 추수감사절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구약의 수장절(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을 추수를 한 후 감사하는 절기, 출 23:16)이 우리나라의 추석과 유사한 9-10월 중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꼭 추석이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나라의 수확 계절 상 9~10월 중 하루를 택하면 되지만 실용적인 면에서 모든 사람이 추수의 기쁨을 즐기며 함께 만나 대화하며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추석 연휴 때가 가장 적합하지 않겠느냐고 답하겠다. 이것이 맥추절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올바르게 적용하여 지키는 방식일 것이다. 풍요의 추수를 감사하여 절기를 마련하는 것이 날짜를 따지는 형식에 매이기보다는 그 나라의 계절과 여러 정황에 부합하여 우리의 것으로 체득화하여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이 훨씬 더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2. 추석을 추수감사주일로 지내는 것은 제사 문화 극복하는 데 기여한다.

서양사람들은 '추수감사절'에. 물론 조상신 숭배 대신에 기독교권 시민들은 풍요의 결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다. 영국, 독일, 캐나다, 미국 등 서구 나라들은 자기들 나름의 각기 다른 날을 감사절로 정하였다. 영국은 8월 1일, 독일은 9월 29일 이후 첫째 일요일, 캐나다는 10월 둘째 월요일, 미국은 11월 넷째 목요일에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다. 한국교회가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다면 아마도 우리나라의 전통적 추석 문화 중 우리가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이 제사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드리는 제사는 주로 조상신 숭배 행위이다. 조상신이 자식들의 현세의 삶 곧, 이들의 화와 복, 고난과 평안 등을 결정짓는다고 보아서이다. 당연히 우리 민족에게 올해 가을의 풍요를 가져다 준 자는 당연히 조상신이었다. 그런데 이 제사는 저급한 상거래(商去來)적 특성을 갖는다는 점에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죽은 조상은 '좋은 곳'으로 가야하는 데 많은 '여비'가 필요하고, 살아있는 자식들은 현세의 풍요와 건강을 필요로 하는 데, 조상신에게 드리는 제사 행위는 이 두 가지 모두를 만족시켰던 것이다. 돈 많이 들이는 '큰 굿'의 제사를 지낼수록 죽은 조상은 넉넉한 여비를 얻는 셈이고, 이에 흡족한 죽은 조상은 살아있는 자식에게 그 대가로서 건강과 재산의 풍요를 허락한다는 것이다. 자연적으로 우리네 삶은 큰 제사를 드리기 위해 물질지상주의적 삶을 살게 하였다.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지킴으로써 우리는 이러한 상거래식 고사(告祀)를 지낼 필요가 없고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절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조상들에 대하여는 감사하고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서 화목의 시간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3. 추석을 가족과 친지들의 감사와 화목의 축제로 만들자

조상신 제사 행위는 당연히 인본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 자기 가족 중심적이며 기복적이다. 제사문화는 개인의 인생 철학을 이처럼 기복적이고 물질지상주의적이며 자기중심적이 되게 하였다. 그 결과 우리 조상은 사회 윤리 의식, 이타적인 삶, 공동체 의식 등을 계발시키는 데 매우 인색하게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이러한 가족주의 의식구조는 우리의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감리교 정동제일교회 목사 최병헌이 1900년경에 추석날은 조상에게 제사하기보다는 조상의 근본이 되는 하나님께 드리는 '참제사'의 날로 삼자고 주장했던 정신을 살려야 하겠다. 참 제사란 제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감사와 헌신과 화목의 정신을 갖고 나눔과 섬김의 착한 행실을 실천하는 것이다. 추석을 가족과 친지들의 감사와 화목의 축제로 만들자

4. 추석명절을 취약계층과 소외된 자들을 위한 나눔과 섬김의 기간으로 하자

추석에 우리 조상들은 마을의 축제로서 공동체의 화목과 연대를 공고히 하였다. 우리의 명절에 우리는 주위의 소외되고 취약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하여 깊은 관심과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이타적이고 섬김과 나눔의 정신을 최고의 가치로 제시하고 있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추석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면서 '조상에게' 절하면서 내 가족 잘 되게 해달라고 비는 대신에, 추석 연휴 중 하루 정도를 투자하여 소외된 이웃과 노숙자, 실직자, 재소자, 독거노인과 소년 소녀 가장, 장애인과 고아 등을 찾는다면 한국의 전통적인 '가족주의적' 제사문화를 개혁시키는 문화 혁신을 이루게 될 것이다.

5. 한국교회는 추석을 맞이하여 고향 교회를 방문하여 십일조를 드리자.

한국의 도회지 교회는 고향 특히 농어촌 고향 교회에 상당부분 빚을 지고 있다. 농어촌 고향 교회에서 신앙 훈련받은 청년이 학업과 취업을 위해 도시로 옮겨 신앙생활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이들이 다시 고향교회로 돌아가는 확률이 거의 없는 관계로 고향교회는 현실적으로 유지, 보존이 힘든 실정이다. 도시 중대형 교회는 물론, 어느 정도 재정 자립을 이룬 교회는 '빚진 자' 의식을 가지고 이들 고향교회들과 어떤 형태로든지 유기적 관계를 맺고 성도들로 하여금 고향을 방문하도록 유도하여 9월의 십일조는 방문하는 교회에 헌금하도록 하자.

6. 자립 교회는 도시와 농어촌의 미자립 교회에 추석에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물을 전하는 나눔의 날로 만들자.

추석 혹은 추수감사절을 지키면서 풍요의 계절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의미로 주일에 드리는 추수감사헌금을 미자립 도시, 농어촌 교회에 보내도록 하자. 기독교 정신은 감사와 나눔과 섬김이다. 매년 추석에는 도시와 농어촌의 미자립 교회에 여유가 좀 있는 자립 교회에서 이들 교회에게 나눔의 실천을 하여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하나된 한국 교회로 발전하는 계기로 삼자.

2016년 9월 13일

샬롬을꿈꾸는나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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