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J.존의 기고글인 ‘돌아가는 길인 줄 알았는데, 그 길이 가야 할 길이라면?’(What if the detour is the road?)을 11월 3일(현지시각) 게재했다.
J. 존은 목사, 연사, 방송인,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개인 팟캐스트인 ‘J.John Podcast’를 운영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약속 시간에 이미 늦었을 때 마주치는 ‘우회’ 표지판만큼 마음을 조급하게 만드는 것도 드물다. 목적지와 도착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가는 길만큼은 막힘없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눈앞에는 ‘도로 통행금지’ 표지판이 서 있고, 내비게이션은 차분하게 “경로를 재탐색합니다”라고 안내한다. 물론 내비게이션이 예배당에 모인 성도들에게 초청 설교자가 경운기 뒤에 갇혀 늦고 있다는 사정까지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인생에서도 직선으로 뻗은 길을 선호한다. 학업과 직장, 결혼과 가정생활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순조롭게 이어지기를 바란다. 계획을 세워 다이어리에 적고 하나님께 축복을 구한다. 때로는 계획을 확정하기 전에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삶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열려 있던 문이 닫히고, 유망해 보이던 기회가 사라지며, 생각지도 못한 책임이 찾아온다. 눈앞의 현실이 기대했던 미래와 멀어질수록 우리는 묻게 된다. 혹시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닐까.
실제로 방향을 잘못 잡았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정직한 성찰과 지혜로운 조언,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겸손이 필요하다. 그러나 예상 밖의 길을 걷는다고 해서 반드시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아니다. 계획이 달라졌다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삶의 목적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회로라고 여기는 길이, 사실은 지금 걸어가야 할 길이라면 어떨까.
요셉은 감옥에서도 사람을 살폈다
성경의 요셉은 예상하지 못한 길을 걸었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하나님께 꿈을 받았지만, 이후 그를 기다린 것은 구덩이와 노예 생활, 억울한 누명과 감옥이었다. 약속과 현실 사이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요셉은 자신을 해치려 했던 형제들에게, 하나님께서 그 일을 선으로 바꾸셔서 많은 생명을 구하게 하셨다고 고백했다.
형제들의 잔혹한 행동은 분명 악이었다.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셨다는 사실이 그들의 잘못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악행조차 하나님의 역사를 끝내 막지는 못했다. 타인이 행한 악이 우리의 삶에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요셉의 이야기는 보여준다.
물론 요셉이 처음부터 그 의미를 모두 알았던 것은 아니다. 감옥에 있을 때 그에게는 석방 날짜도,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는 안내도 없었다. 그는 앞날을 알 수 없는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다.
우리는 모든 일이 잘 풀린 뒤 하나님의 때를 돌아보는 간증에는 기뻐한다. 그러나 자신의 기다림을 견디는 일은 훨씬 어렵다. 가능하다면 당장 상황이 바뀌고 마음의 평안도 찾아오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요셉은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맡은 일을 감당했다. 함께 갇힌 이들의 근심 어린 얼굴을 알아보고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자신의 처지가 어렵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아픔까지 외면하지 않았다.
상황이 달라지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우리 곁에는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 기다림의 시간이 이웃을 사랑하는 일까지 멈춰야 하는 시간은 아니다.
중국으로 향하던 꿈을 바꾼 한 소년
19세기 아동복지 운동가 토머스 바나도(Thomas Barnardo)의 삶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발견한다.
청년 시절 바나도는 중국 선교사를 꿈꾸며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런던으로 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마주한 이스트엔드의 빈곤과 짐 자비스(Jim Jarvis)라는 소년과의 만남이 그의 삶을 바꿨다.
바나도의 기록에 따르면, 짐은 빈곤 아동을 위한 야간학교 수업이 끝났는데도 돌아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집에 가라는 말에 소년은 갈 곳이 없다고 답했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돌아갈 집도 없었다.
바나도는 소년에게 음식과 따뜻한 음료를 내줬다. 소년은 먹으면서 자신의 사연을 들려줬고, 거리와 지붕 위에서 밤을 보내는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도 전했다.
그 만남은 바나도가 집 없는 아이들을 돌보는 사역에 나서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는 1870년 아이들을 위한 첫 보호시설을 열었다.
처음 계획은 바다를 건너 먼 선교지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눈앞의 한 아이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따뜻한 음식과 경청으로 시작된 만남이 오랜 아동복지 사역으로 이어졌다.
때로 하루 중 가장 중요한 만남은 일정표에 적혀 있지 않다. 바나도의 이야기는 목적지만 바라보느라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한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 밝은 표정 뒤에 피로를 숨긴 동료, 늘 괜찮다고 말하지만 외로움을 견디는 가족이 있을 수 있다. 기대했던 삶에만 몰두하면 실제로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다음 걸음은 거창한 계획보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고통을 쉽게 설명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삶의 방향이 바뀌는 모든 순간이 명확한 부르심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당혹감과 슬픔, 긴 기다림만 남을 때도 있다.
중병이나 사별, 깨어진 관계를 겪는 사람에게 “조금 돌아가는 것뿐”이라고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보기에는 우회로처럼 느껴져도, 당사자에게는 삶의 토대가 무너지는 고통일 수 있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는 설명보다 돌봄이 먼저다. 식사를 챙겨주고, 안부를 묻고, 할 말을 잃은 사람 곁에 조용히 앉아 있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제는 괜찮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한 뒤에도 꾸준히 찾아가 함께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신앙은 슬픔을 서둘러 끝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눈물을 흘리고 질문하며 기다릴 자리를 남겨둔다.
영국 시인 윌리엄 카우퍼는 하나님께서 오묘한 방식으로 일하신다고 노래했다. 우리가 그 방식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의 시야에는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그 한계 안에 갇히지 않는다.
여행을 계획했던 때에 가족을 간병해야 할 수도 있다. 안정을 기대했던 시기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고, 눈에 띄는 사역을 꿈꿨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게 될 수도 있다.
그 모든 상황의 이유를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계획이 멈춘 듯한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고 빚어가실 수 있음을 신뢰할 수 있다.
계획보다 사람을 먼저 바라보는 지혜
예수님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을 눈여겨보셨다. 무리 가운데 들려오는 부르짖음과 옷자락을 만지는 손길, 나무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한 사람을 지나치지 않으셨다. 다른 사람들이 서둘러 지나갈 때에도 멈춰 서서 그들에게 응답하셨다.
우리가 모든 사람의 사정을 돌볼 수는 없다. 약속 시간을 지키고 맡은 일을 성실하게 마치는 것 역시 중요한 배려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만남과 요청 가운데 무엇에 응답해야 할지 분별하는 지혜는 구해야 한다.
잘 정리된 일정표는 유용한 도구다. 하지만 사람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뜻밖의 길에서도 주님은 함께 걸으신다
예상 밖의 길에서 지치고 외로워질 때는 에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를 떠올릴 수 있다.
누가복음 24장에서 두 제자는 예수님의 죽음 이후 낙심한 채 예루살렘을 떠난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제는 무너진 기대와 풀리지 않는 질문을 안고 길을 걷고 있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가가 함께 걸으셨다. 제자들은 곁에 계신 분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 채 그분 앞에서 자신의 슬픔을 이야기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말을 들으시고 성경을 풀어 설명하셨다. 이후 떡을 떼실 때에야 제자들의 눈이 열려 주님을 알아봤다.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이루셨는지 이해하기 전부터 그들은 이미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걷고 있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도 위로가 된다.
삶의 모든 굴곡을 설명할 수는 없다. 답을 얻지 못한 채 남겨둬야 하는 질문도 있다. 그러나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의 소망이 눈앞의 상황만으로 결정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끝이라고 여기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새로운 생명을 이루실 수 있다.
전체 길을 몰라도 다음 걸음은 내디딜 수 있다
계획이 틀어졌을 때 낙심할 수 있다. 그 마음을 숨길 필요는 없다. 다만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께 신실하게 응답할 길이 있는지 물어볼 수 있다.
지금 누구를 사랑할 수 있는가.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가. 오늘 내디딜 수 있는 다음 걸음은 무엇인가.
앞으로의 길을 모두 알아야만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계획은 신중하게 세우되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필요할 때 도움을 받고, 지혜로운 조언에 귀를 기울이며,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선을 실천하면 된다.
우회로라고 생각했던 길에서 뜻밖의 소명을 발견할 수도 있다. 짐 자비스처럼 우리의 관심과 돌봄이 필요한 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그 길의 의미를 아직 알지 못하더라도 혼자 걷는 것은 아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