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책은 파리 장로교회에서 30년을 목회했던 이극범 목사님의 엣세이 집이다. 그는 네덜란드와 미국에서 유학하고 파리에서 한인 선교사로 한국의 이민 목회를 해왔다. 그의 책을 보면, 파리에서 만났던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만남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교회 개혁자 요한 칼빈(그는 ‘쟌 깔뱅’이라고 했다)의 스토리와 종교개혁 전후의,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프랑스가 낳은 위대한 철학자나, 문학자들의 이야기도 쓰고 있다. 파리에서 그의 30년 간의 목회 스토리지만, 묵직한 글도 많다.
나는 20여 년 전에 파리를 여행 중에 이극범 목사님의 안내를 받았고, 그와 함께 한 시간도 있었다. 그 후 나는 여러 번 파리를 여행했고, 몇 해 전에 나의 책 ‘아브라함 카이퍼의 사상과 삶’이 불어로 번역되었고, 파리 교외에서 출판 기념회를 성대히 가진 바 있었다. 이 일은 불란서의 ‘Le Calvinium’의 대표자 최 마가(Dr. Marc Choi) 박사의 노고로 완성했다. 불란서는 가톨릭의 나라이다. 그러니 개혁교회는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렵다. 오히려 한국의 선교사들이 파리로 가서 한국인을 중심으로 한인 선교 교회를 세우는 형국이었다.
사실 불란서는 칼빈이 출생한 나라다. 그러나 불란서는 칼빈을 출교하고, 체포하려 했다. 그래서 칼빈은 스위스 제네바로 도피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칼빈보다 먼저 제네바의 개혁운동을 하고 있던 파렐에게 붙잡혀 칼빈은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하게 된다. 그때 칼빈의 나이 겨우 27세였다. 그의 기독교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를 출판하던 직후였다. 칼빈이 기독교강요를 집필하게 된 것은, 사실 25세부터였다. 어떻게 25세 나이에 오늘날 우리 개혁교회의 교리를 그렇게 완벽하게 저술할 수 있었을까?
첫째, 칼빈은 당대 최고의 언어학자였다. 그는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에 천재적이었다. 특히 라틴어는 모국어인 불어보다 더 잘했다. 그리고 그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다.
둘째, 그는 독서광이었다. 그는 천재적 어학 실력으로 교부들의 원전을 모두 탐독했었다. 예컨대 폴리갑에서 아다나시우스, 암브로스, 크리소스톰, 어거스틴을 다 읽었다.
셋째, 칼빈은 수사학(Rhetoric)의 천재였다. 말과 글을 대중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명쾌하게 쓰는 훈련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런 위대한 천재인 칼빈을 구속하려 했고, 체포하려 했던 나라가 불란서였다. 그리고 그 후, 불란서는 개신교였던 위그노파(Huguenots)를 심히 박해했었다. 하지만 칼빈 서거 30년 후에도 불란서는 칼빈의 신앙 노선을 따르는 위그노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을 이끈 지도자는 ‘가스파드 드 꼴리니(Gadpard de Coligny)’ 제독이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1572년 파리에서 성 바돌로매 축제일에 3,000여 명의 위그노파 성도들을 무참히 학살했고, 꼴리니 제독의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 창틀에 걸어놓았다. 그 후에도 수개월 동안 개신교 성도들인 위그노파 성도들을 닥치는 데로 학살해서 말 그대로 파리의 쎄느강은 피의 강이 되었다. 1618년 네덜란드 돌트(Dordt)에서 돌트 종교회의가 있을 때, 불란서 개신교 지도자도 초청되었으나, 불란서 국왕이 그들을 보내지 않아, 결국 불란서 교회는 개혁되지 못하고 지금까지 가톨릭 국가로 남아 있다.
그리고 불란서는 혁명의 나라다. 이른바 자유, 평등을 내세웠지만, 그것을 위해 또 다른 혁명이 필요했었다. 그런데 불란서의 혁명사상은 ‘인간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인본주의 사상을 사람들에게 심었다. 이때 네덜란드의 역사가요, 왕립 비서관과 수상을 지냈던 흐룬 봔 프린스터(Groen van Prinsterer)는 1847년에 그의 위대한 저서 ‘불신앙과 혁명: Ongeloof en Revolutie’이라는 책을 썼다. 이것은 칼 맑스의 공산당 선언이 나오기 1년 전에 나온 예언서이기도 하다. 이 책은 내용은, ‘모든 혁명은 하나님 없는 불신앙에서 출발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참된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할 것을 선언했다. 그래서 그가 만든 정당을 반혁명당(Anti–Revolutionary Party)이라고 했고, 당 총재로 수상의 자리에 있었다. 불란서 혁명 같은 인본주의 세계관으로는 나라를 옳게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흐룬 봔 프린스터는 70세 때,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 박사를 자신의 후계 지도자로 지명하였고, 카이퍼는 일생 동안 불같은 설교와 명강의, 명칼럼으로 세상을 움직이고, 상원의원, 하원의원, 수상으로 교회,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주장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금 파리는 불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비극은, 하나님을 배제한 인간의 방법으로, 그리고 유물주의 세계관으로 나라를 이끌다가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교실은 비가 새고, 곰팡이와 쥐가 기어다니는 열악한 교육에 참다못한 고등학생들은 화염병을 들고 불을 지르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아무런 대책 없이 아이들을 수천 명을 체포하고 있다. 하지만 무한정 이민 정책, 무너진 교육, 인기 영합의 정치, 돌려막기식 복지 정책의 밑바닥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정성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