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대신 ‘정직한 화공’… 이중섭 신화 다시 읽기

윤범모 『이중섭 신화, 거꾸로 보기』 출간… 교육과 실험으로 성장한 화가의 삶 조명
도서 「이중섭 신화 거꾸로 보기」

황소를 그린 국민화가, 은지에 그림을 새긴 가난한 천재, 가족을 그리워한 순애보의 주인공. 이중섭(1916~1956)을 따라다닌 익숙한 수식어들이다. 미술사학자 윤범모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는 이중섭 탄생 110주년이자 사망 70주년을 맞아 펴낸 『이중섭 신화, 거꾸로 보기』에서 이러한 이미지를 다시 살핀다.

책은 이중섭의 예술적 성취를 부정하기보다 ‘천재’라는 이름에 가려진 성장 과정에 주목한다. 갑자기 등장한 천재가 아니라 교육과 훈련,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구축한 ‘정진형 화가’였다는 것이다.

저자가 주목한 말은 이중섭이 자신을 일컬었던 ‘화공(畫工)’이다. 그는 이중섭을 “현실과 대응하면서 꾸준히 작업한 그야말로 ‘정직한 화공’이었다”고 평가하며, 이 표현이 천재라는 말보다 그의 예술을 이해하는 데 적합하다고 설명한다.

책은 평양의 문화적 환경과 오산학교 시절, 일본 유학과 전위미술 경험, 자유미술가협회 활동을 따라간다. 류영모와 함석헌, 임용련·백남순 부부의 교육과 김환기·유영국·문학수 등 동시대 화가들과의 관계도 살핀다. 특히 1930~40년대 일본에서 소를 소재로 작품을 발표한 기록 등을 통해 동아시아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성장한 전문 화가의 면모를 조명한다.

기존 연구와 작품 평가에도 질문을 던진다. 일본인 연인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보낸 엽서 그림을 모두 독립된 미술작품으로 평가하기보다 사적인 연서이자 자료라는 성격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1940년대 초 엽서화와 10여 년 뒤 피란기 은지화의 조형적 차이는 현실과 고통을 통과하며 성장한 흔적으로 읽는다.

마사코와의 사랑도 낭만적인 순애보에만 가두지 않는다. 편지에 담긴 사랑과 그리움뿐 아니라 의존과 집착,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했던 좌절까지 살피며 인간 이중섭의 복합적인 모습을 짚는다.

황소와 아이들, 물고기와 복숭아, 가족과 부부 등 반복되는 도상은 그의 호 ‘대향(大鄕)’, 곧 ‘큰 고향’과 연결한다. 분단으로 고향과 어머니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전쟁으로 가족과 헤어진 화가에게 대향은 실제 장소를 넘어 잃어버린 세계이자 돌아가고 싶은 이상향이었다는 해석이다.

윤 대표는 “이중섭 신화는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윤색되어 증폭되었다”며 전문적인 연구에 앞선 일방적인 예찬이 오히려 예술의 실체에 접근하는 데 방해가 됐다고 지적한다.

책은 ‘천재’라는 찬사 뒤에서 식민지와 해방, 분단과 전쟁을 겪으며 그림에 매진한 한 인간을 복원한다. 국민화가의 명성에 가려진 노력과 성장의 시간을 통해 이중섭의 삶과 예술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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