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데일 모로의 기고글인 '당신이 망가진 것이 아니다. 지금 당신의 삶이 점령당해 있을 뿐이다'(You're not broken. You're occupied territory)를 9월 16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데일 모로(Dale Moreau)는 성서학 학사(BA), 목회학 석사(MDiv), 성서신학 및 성경언어학 박사(PhD) 학위를 취득했으며, 30년 동안 목회자로 섬겼다. 또한 대학과 신학교에서 강의했으며, 55년 넘게 글을 써왔다. 그의 저술은 학술 문헌에서도 인용되고 있다. 현재 그는 서브스택(Substack)에서 ‘Theological Voice’를 운영하며, 목회자와 학자, 학생들을 위해 성경이 담고 있는 초자연적 세계관을 재조명하고 회복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현대 심리학은 인간의 불안을 신경전달물질의 수준까지 세밀하게 설명할 수 있다. 행동 패턴을 어린 시절의 경험과 뇌의 화학 작용, 애착의 상처로 거슬러 올라가 추적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중요한 현실이며,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 모든 설명을 한데 모은다고 해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또 하나의 거대한 차원은 여전히 설명되지 않은 채 남는다.
먼저 오해가 없도록 분명히 해야 한다. 이것은 심리상담이나 약물치료, 혹은 그러한 치료를 제공하는 전문가들을 폄하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트라우마는 실제하며, 뇌의 화학적 작용 역시 실제다. 극심한 고통이 인간의 신경계에 남기는 변화와 반복적인 경험이 형성하는 신경 회로도 실제로 존재한다. 이를 연구해 온 학자들은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귀중한 지식을 제공해 왔다. 지금 상담을 받고 있거나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면, 이 글의 어떤 내용도 그러한 치료를 중단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문제는 심리학이 거짓을 말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본질적으로 다룰 수 있는 영역에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데 있다.
현대 임상과학의 상당 부분은 관찰하고 측정할 수 있는 자연적·물질적 현상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인간의 행동은 유전자와 뉴런, 호르몬, 환경과 조건화 등의 상호작용을 통해 설명되며, 의식이나 정서 역시 뇌의 활동과 긴밀하게 연결된 현상으로 연구된다. 이러한 접근은 과학적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방법론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영적 차원을 과학적 방법만으로 검증하거나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영적 현실이 과학적 연구에서 다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곧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심리학이 제공하는 지도는 인간이라는 거대한 영토 가운데 매우 중요한 한 부분을 정교하게 그려낸 지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이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그보다 더 넓은 차원을 포함한다.
성경은 인간을 단순한 생물학적 기계로 보지도 않고, 육체 안에 갇힌 영혼으로만 보지도 않는다. 창세기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 묘사한다. 고대 근동에서 왕의 형상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었다. 왕이 직접 존재하지 않는 지역에 세워진 형상은 그곳이 왕의 통치 아래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그의 권위를 상징하는 역할을 했다. 이런 배경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창세기의 선언은 인간에게 단순한 심리적 특성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성품과 통치를 세상에 반영하도록 창조된 존재이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세계를 돌보도록 부름받은 살아 있는 대리자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하나의 특성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정체성과 사명에 관한 선언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 소명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형상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삶과 세상은 죄와 반역의 영향을 받게 됐다. 인간은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반영하기보다 다른 욕망과 권세에 끌려가게 됐다. 신약성경은 이 현실을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 갈등으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말한다(엡 6:12). 성경의 세계관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에는 눈에 보이는 사회적·육체적 차원뿐 아니라 영적인 차원도 존재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중요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이러한 성경적 세계관이 곧 우울증은 귀신 때문이고 불안은 죄 때문이라는 식의 단순한 공식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성경 자체도 인간의 모든 고통을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복음서에서는 질병을 앓는 사람과 악한 영의 억압을 받는 사람이 구별되어 묘사되기도 한다. 인간의 고통은 육체적 질병이나 정신적 상처, 죄의 결과, 다른 사람의 악행, 사회적 환경, 그리고 경우에 따라 영적 갈등 등 다양한 원인에서 비롯될 수 있다.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무조건 악한 영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성경적인 태도라고 보기 어렵고, 고통받는 사람에게 오히려 또 다른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따라서 생물학적·심리학적 설명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인간 현실의 한 부분을 설명한다는 뜻이다. 상담과 의학이 인간이라는 건물의 한 층을 자세하게 보여준다면, 성경은 그 건물이 더 넓은 현실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까지 함께 보여준다.
이 더 큰 관점은 고통 속에서 분투하는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심리적 고통이 계속될 때 사람은 쉽게 자신의 어려움을 곧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내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 고통을 겪는다”, “내가 망가졌기 때문에 제대로 살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을 단순히 자신의 상처와 실패의 총합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성경적 관점에서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이며, 동시에 죄와 죽음, 왜곡된 욕망과 악한 권세의 영향을 받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선을 행하고 싶지만 그것을 방해하는 내적·외적 저항을 경험하는 것은 반드시 개인이 특별히 더 망가졌다는 증거만은 아니다. 그것은 타락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이 어느 정도 경험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은 고통받는 사람이 짊어지고 있는 불필요한 자기비난을 덜어주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물론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된 실제 죄책감은 정직하게 인정하고 다뤄야 한다. 복음은 죄를 부정하지 않고 용서와 회복의 길을 제시한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상처와 실패를 곧 자신의 무가치함에 대한 증거로 받아들이는 왜곡된 죄책감까지 짊어질 필요는 없다. 세상이 자신에게 저항하고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곧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셨거나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는 뜻은 아니다.
복음이 선포하는 구원 역시 단순히 죄책감을 없애는 심리적 위로에 머물지 않는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말한다(골 1:13). 이 표현은 단순한 자기계발의 언어가 아니다. 한 통치 아래 있던 사람이 다른 왕국으로 옮겨지는 해방과 전환의 언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은 인간이 점령된 현실에 조금 더 잘 적응하도록 돕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을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로 옮기신다. 인간의 가장 깊은 정체성은 자신의 상처나 실패가 아니라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에 의해 새롭게 규정된다.
따라서 상담과 약물치료, 깊은 자기 성찰과 같은 임상적 도움을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것들은 인간 삶의 실제적인 영역을 다루며 많은 사람에게 중요한 도움을 제공한다. 다만 그것이 인간 존재에 대한 모든 설명을 담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단순히 오작동하는 생물학적 기계가 아니며, 상처받은 자아의 집합만도 아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으며,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존재라고 말한다.
그리고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 형상을 지닌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다고 선포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은 죄와 죽음의 권세로부터 건짐받고, 본래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도록 부름받는다. 이 회복은 인간의 육체나 정신을 무시하는 과정이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를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바라보도록 하는 회복이다.
심리학이 제공하는 지도는 귀중하며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인간 존재의 모든 영역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도는 지나치게 작아진다. 인간은 뇌와 신경계, 과거의 상처와 행동 패턴을 지닌 존재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과 관계하도록 창조된 영적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고통을 바라볼 때 “내가 망가졌다”는 결론만으로 자신을 규정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상처를 입었을 수 있고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켜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의 정체성 전체는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더 큰 이야기는 당신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으며, 죄와 죽음의 지배 아래 놓인 세계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복음은 당신을 더 나은 고장 난 기계로 만드는 이야기가 아니라, 본래의 왕에게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 회복의 이야기다.
반쪽짜리 지도도 길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 전체를 이해하려면 더 큰 지도가 필요하다. 인간의 몸과 마음뿐 아니라 영혼과 소명,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함께 바라보는 지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