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파키스탄 대법원이 신성모독법 피해자와 종교 소수자를 대변해 온 유명 인권 변호사 부부에게 선고된 징역 17년형의 집행을 정지하고 보석 석방을 명령했다고 9월 17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파키스탄 대법원의 나임 아크타르 아프간, 이쉬티아크 이브라힘 대법관은 이만 자이나브 마자리-하자르와 하디 알리 차타 부부에 대한 항소심 심리를 열고 이같이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슬라마바드 고등법원의 최종 결정이 나올 때까지 각각 20만 파키스탄 루피(약 720달러)의 보증금을 납부하는 조건으로 부부의 석방을 지시했다. 이들은 현재 이슬라마바드 고등법원에서 유죄 판결에 대한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남편인 차타는 파키스탄의 가혹한 신성모독법 위반 혐의로 억울하게 기소된 무슬림과 기독교 등 종교 소수자들을 적극적으로 변호해 왔다. 마자리-하자르 역시 강제 실종, 구금 중 가혹행위, 사법 외 살인 피해자들을 대리하며 파키스탄 인권 문제의 최전선에서 활동해 온 법조인이다.
국제사회의 사법 탄압 비판 및 인권 옹호 활동 위축 우려
국제 인권 단체들은 이들 부부를 향한 무리한 기소가 인권 옹호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명백한 사법 탄압이라고 지적해 왔다. 국제법학자위원회(ICJ)와 클루니 정의재단 등은 부부의 체포와 유죄 판결이 표현의 자유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엔(UN) 특별 절차 전문가들 역시 지난 2월 파키스탄 정부에 서한을 보내 이번 기소가 파키스탄 신성모독법의 부당함을 지적해 온 변호사들을 위협하고 침묵시키려는 의도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변호사들 또한 평범한 시민과 마찬가지로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으며, 정당한 표현 행위를 범죄화하는 것은 인권 옹호자들에게 심각한 위축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지 기독교계와 인권 단체들은 대법원의 보석 결정을 즉각 환영했다. 현지의 한 익명 기독교 변호사는 종교 소수자를 변호하는 법조인들이 형사 소추의 위협에 시달리게 되면 취약한 피해자들을 방어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무너질 것이라며, 변호사들이 보복의 두려움 없이 전문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보호 조치가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대법원의 하급심 지연 질타 및 향후 항소심 재판 전망
이날 열린 대법원 심리에서 부부의 변호를 맡은 파이살 시디키 수석 변호사는 이슬라마바드 고등법원의 재판 지연 행태를 강하게 성토했다. 대법원은 이미 지난 5월 고등법원 측에 부부의 형 집행 정지 신청을 신속히 결정하라고 지시했으나, 고등법원은 이를 무시한 채 재판을 거듭 연기하고 변호인 측의 조기 심리 요청마저 기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 재판부는 고등법원이 대법원의 지시를 핑계로 삼으면서도 정작 아무런 사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을 강하게 질타했다. 아프간 대법관은 부부가 모두 법조인임을 강조하며 법정의 엄숙한 품위를 지켜줄 것을 당부한 뒤 석방 결정을 내렸다.
이들 부부는 지난 1월 이슬라마바드 지방법원에서 파키스탄 전자범죄예방법(PECA) 위반 혐의로 총 17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당국은 이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국가 보안군의 실종 사건 개입 의혹을 제기하고 무장 단체에 맞서는 군의 능력을 비하했다는 이유로 사이버 테러 및 허위 정보 유포 혐의를 적용했다.
부부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지난 2월 이슬라마바드 고등법원에 항소했으나 형 집행 정지 신청이 거부되자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번 파키스탄 대법원의 보석 결정으로 부부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으나, 이는 형의 일시적인 집행 정지일 뿐 최종 유무죄 여부는 고등법원의 항소심 결과를 통해 가려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