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허비 뉴웰의 기고글인 '위탁보호가 끝난 뒤에도 교회는 곁에 남아야 한다'(When foster care ends, the Church shouldn’t walk away)를 9월 10일(현지시각) 게재했다.
허비 뉴웰은 미국 최대 복음주의 기독교 입양기관인 라이프라인 칠드런스 서비스(Lifeline Children’s Services)의 대표다. 이 단체는 미국 내 민간 입양과 국제 입양, 가정 회복 지원, 임신 상담 등을 통해 취약한 아동과 가정을 돕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8월은 새 학기 학용품을 사고, 새로운 수업과 새 학년을 준비하는 설렘의 시기다. 그러나 위탁보호가 종료되어 홀로 자립해야 하는 수천 명의 청년들에게 이 시기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들은 가족의 든든한 지원 없이 갑작스럽게 성인의 세계로 내몰린다.
매년 미국에서는 2만 명이 넘는 위탁아동이 보호 기간이 끝나면서 시스템 밖으로 나온다. 성인기로 넘어가는 이 과정은 안정적인 가족의 지원을 받는 청소년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다. 하물며 친가족이나 위탁가정의 지속적인 돌봄 없이 홀로 어른이 되어야 하는 청년들에게 그 부담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위탁보호가 종료된 청년들은 노숙과 실업, 약물 남용, 주거 불안정, 원치 않는 임신, 신체적·정신적 건강 악화 등 여러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된다. 일부 통계에 따르면 18세 이후 약 20%가 노숙을 경험하고, 대학 학위를 취득하는 비율은 매우 낮으며, 보호가 종료된 여성 청년들 가운데 상당수가 21세 이전에 임신을 경험한다.
이 수치들은 암담하다. 그러나 이런 통계가 위탁보호를 떠나는 모든 청년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삶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한 가지 요소가 있다. 바로 기꺼이 그들 곁에 남아주기로 결단한 한 명의 어른이다.
한 사람의 존재가 인생을 바꾼다
‘멘토링’이라는 말은 단순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위탁가정 시스템 안에서 불안정과 상실, 거절을 반복해서 경험한 청년에게 누군가 변함없이 곁을 지켜준다는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인생 궤도를 바꿀 수 있다.
이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부 프로그램이나 재정 지원만이 아니다. 물론 그러한 지원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절실한 것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고, 가능성을 믿어주며, 성인이 되는 힘겨운 과정을 기꺼이 함께 걸어갈 한 사람이다.
이것은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다. 실제 삶에서 반복해서 확인되는 현실이다.
필자는 라이프라인 칠드런스 서비스(Lifeline Children’s Services)의 회장이자 대표로 일하면서, 헌신적인 어른 한 명이 위탁보호가 종료된 청년의 삶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직접 목격해 왔다.
우리 단체의 ‘헤리티지 빌더스(Heritage Builders)’ 프로그램은 지역 교회들이 자립을 앞둔 취약 청년들의 곁을 지킬 수 있도록 훈련과 자원을 제공한다. 목표는 단순하다. 청년들이 시스템을 떠난다고 해서 관계마저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대학으로
헤리티지 빌더스와 연결된 한 여성 청년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평생 겪을 법한 것보다 더 큰 역경을 경험한 상태였다.
그녀는 노숙 생활 때문에 정규 고등학교에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었고, 깊은 방황 속에서 위탁보호 시스템에 들어오기 전까지 여러 차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여학생들을 위한 한 기독교 그룹홈에서 안정적인 거처를 찾았고, 헤리티지 빌더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던 지역 교회와 연결됐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열악한 환경이 미래까지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은 한 명의 어른을 만났다. 누군가가 그녀의 가능성을 믿어주기 시작했다.
그녀는 온라인으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고, 결국 오번대학교(Auburn University)에 진학했다. 한때 노숙 생활로 인해 고등학교 교실에 제대로 앉아보지도 못했던 청년이 이제 대학생이 된 것이다. 한때 자신의 삶을 포기하려 했던 이 청년이 이제는 자신의 미래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녀의 삶이 하루아침에 바뀐 것은 아니다. 환경도 즉시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와, 과거의 비참한 환경이 앞으로의 인생까지 정의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멘토는 거창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 청년이 불리한 통계와 확률을 넘어설 수 있었던 데에는 끝까지 곁을 지킨 신실한 멘토의 역할이 컸다. 멘토는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실질적으로 그녀를 지원했다.
대학 준비반 수강료를 대신 내주기도 했고, 필요한 곳까지 차로 데려다주기도 했다. 그녀의 꿈을 응원하고, 실패했을 때도 포기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계속해서 곁에 머물렀다.
어쩌면 그중 가장 중요한 일은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전문적인 기술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계속 나타나주는 것이었다. 약속한 날에 찾아오고, 연락을 끊지 않으며, “나는 여전히 네 곁에 있다”고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런 일들이 한 청년에게 전혀 다른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교회가 기꺼이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고자 할 때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
이것은 프로그램보다 더 큰 이야기다
궁극적으로 이 이야기는 하나의 프로그램에 관한 것이 아니다. 취약한 아동과 청소년을 돌보라는 부르심에 응답하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관한 이야기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환영받았고, 구속받았으며, 마침내 속할 수 있는 자리를 얻었다.
그렇다면 이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주변의 연약한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그 은혜를 흘려보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어야 한다.
위탁보호가 끝났다고 해서 관계도 끝나서는 안 된다. 보호 시스템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공동체까지 사라져서는 안 된다. 자립을 시작했다고 해서 혼자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 청년들은 자신과 함께 기뻐하고, 함께 울며, 기도하고, 격려하며,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곁에 있어 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성인기를 시작해야 한다.
교회가 해야 할 일
전국의 아이들이 새 학기를 준비하는 8월은 어떤 청년들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누군가는 새 가방을 메고 학교로 돌아가지만, 누군가는 이제 아무도 자신의 생활을 책임져주지 않는 현실과 마주한다.
누군가는 부모에게 대학 등록이나 자취방 문제를 상담하지만, 누군가는 도움을 요청할 사람조차 떠올리지 못할 수 있다.
그 청년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안전망 하나 없이 홀로 성인의 삶을 시작해야 하는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
위탁보호가 종료되는 청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자신이 속한 교회가 이들의 곁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 물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기신 시간과 재능, 관계와 자원을 사용해 눈앞에 있는 필요를 채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멘토가 되는 일이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취업 준비를 도와주는 일이 될 수 있다. 집을 구하는 과정을 함께하거나, 차를 태워주거나, 식사를 같이하거나, 명절에 혼자 있지 않도록 초대하는 일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거창함이 아니다.
끝까지 곁에 남는 것
결국 부르심은 단순하다. 나타나고, 곁에 머물고, 끝까지 함께하는 것이다. 위탁보호 시스템은 어느 날 종료될 수 있다. 정부의 지원도 끝날 수 있다. 프로그램에도 종료일이 있다. 그러나 교회의 사랑까지 종료되어서는 안 된다.
청년들이 제도적으로는 ‘독립’했다고 해서 실제 삶에서도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할 준비가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바로 그때가 누군가의 지속적인 관계가 가장 필요한 순간일 수 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그 자리에 남을 수 있다. 계속 이름을 불러주고, 계속 찾아가며, 계속 믿어주고, 계속 함께 걸어갈 수 있다. 어쩌면 한 청년의 인생을 바꾸는 데 필요한 것은 거대한 제도가 아니라 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 끝까지 곁에 남아주는 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