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된 정의는 판결 그 자체다: 수치로 드러난 인도 기독교 박해의 민낯

조셉 드수자 대주교. ©premierchristianity.com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조셉 드수자 대주교의 기고글인 ‘6년째, 인도 대법원은 여전히 개종금지법에 대해 판결하지 않고 있다’(6 years: India's Supreme Court still won't rule on anti-conversion laws)를 8월 16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조셉 드수자 대주교는 국제적으로 명성이 있는 인권 및 시민권 운동가이다. 그는 남아시아의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들을 옹호하며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하는 단체인 ‘디그니티 프리덤 네트워크(Dignity Freedom Network)’의 설립자이다. 또한 인도 성공회 굿 셰퍼드 교회의 대주교로 섬기고 있으며, 전인도기독교협의회(All India Christian Council)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8월 12일, 바로 그날이었다. 인도 대법원 심리 목록에 분명히 그 날짜가 적혀 있었다. 6년간 이어진 탄원과 13개 주의 관련 법률, 2025년 4월부터 계류돼 온 효력 정지(stay) 신청 끝에 마침내 심리일이 대법원 일정에 올라온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날이 왔을 때 사건은 다뤄지지 않았다.

인도 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대법원이 좀처럼 열어보지 않고 있는 그 서류철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2020년부터 현재까지 인도에서는 십여 개 주에서 시행 중인 이른바 ‘개종금지법(anti-conversion laws)’의 위헌 여부를 다투는 소송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월 대법원은 인도교회협의회(NCCI)가 제기한 청원과 관련해 연방정부와 12개 주정부에 통지서를 발부했다. 올해 1월에도 심리가 예정됐다가 연기됐고, 5월 다시 목록에 올랐다. 이후 8월 12일로 또다시 지정됐지만 본안에 대한 실질적인 심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법의 효력을 잠정 중단하는 결정 역시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 법은 멈추지 않고 확장되고 있다. 7월 31일 대통령은 ‘2026년 마하라슈트라 종교의 자유 법안’을 재가했다. 이로써 마하라슈트라는 법을 통해 종교적 개종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인도의 13번째 주가 됐다. 같은 날 봄베이대교구는 이 법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조목조목 지적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천천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법 곳곳에 자의적인 해석과 남용의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유혹’, ‘부당한 영향력’, ‘거짓 진술’ 같은 표현은 충분히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채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 성인이 자신의 의지로 종교를 바꾸더라도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이 당사자의 동의 없이 경찰에 신고할 수 있으며, 당사자의 문제 제기가 없어도 경찰이 자체적으로 수사에 나설 수 있다. 입증 책임이 피고인에게 넘어가는 구조도 문제다. 관련 범죄는 보석이 제한될 수 있으며, 종교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려는 이들은 개인적인 선택임에도 신고 절차를 통해 사생활이 외부의 감시 아래 놓일 가능성이 있다.

봄베이대교구가 밝힌 입장을 필자 역시 되풀이하고 싶다. 그것이 필자의 입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폭력과 사기, 강압, 부당한 유도에 의한 개종을 언제나 분명히 반대해 왔다. 어떤 그리스도인도 그런 행위를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필자 역시 그런 방식을 옹호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이 법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목적이 아니다. 문제는 법이 만들어진 뒤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법이 시행되자 곧바로 시작된 수사

그 일이 얼마나 빠르게 벌어지는지 마하라슈트라주의 사례가 보여준다. 법이 발효된 지 단 4일 만에 푸네(Pune) 지역 경찰은 새 법에 따른 첫 사건을 입건했고, 곧이어 두 번째 사건도 뒤따랐다. 인도 해외시민권(OCI) 카드를 가진 한 영국 시민은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받아들이도록 유도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여기에 외국계 카드 소지자가 설교하려면 별도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근거로 이민법 위반 혐의까지 추가됐다.

이것이 새 법이 시행된 첫 일주일 동안 나타난 모습이었다. 구출된 피해자는 보이지 않았고, 대신 또 하나의 형사사건 서류가 만들어졌다. 수년 동안 필자는 이런 법을 통과시키는 정부를 향해 같은 질문을 던져왔다. “실제 유죄 판결을 보여달라.”

최초정보보고서(FIR)도, 체포 기록도, 기자회견도 아니다. 십여 개 주에서 수년간 이런 법이 시행되고 수많은 사람이 체포됐다면, 법원이 강압이나 기만에 의한 개종 행위가 실제로 있었다고 인정해 유죄를 선고한 사례를 보여달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돌아온 답은 사실상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2025년 1월 마침내 우타르프라데시에서 한 사건이 등장했다. 달리트 공동체에서 사역하던 기독교인 부부 호세 파파찬(Jose Pappachan)과 시나 파파찬(Sheena Pappachan)이 해당 주의 개종금지법에 따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두 사람은 현재 보석으로 석방된 상태에서 항소를 진행하고 있으며, 기독교 인권단체들은 유죄 판단의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비판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개종금지법을 시행해 온 주에서 수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체포됐지만, 결국 제시되는 사례는 아직 항소 절차도 끝나지 않은 유죄 판결 한 건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거둔 ‘성과’라면, 이 법이 실제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다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수백 건의 사건, 수천 명의 체포, 그러나 유죄는 어디에 있는가

체포 건수와 비교하면 상황은 더욱 선명해진다. 우타르프라데시에서는 2022년 11월까지 주법에 따라 291건의 사건이 접수되고 507명이 체포됐지만, 당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507명이 체포됐지만 법정에서 유죄가 확정된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2024년 중반이 되면서 접수된 사건은 800건을 넘어섰고 체포된 사람도 1,600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유죄 판결은 여전히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2025년 한 해에도 수백 명의 기독교인이 체포된 것으로 보고됐다. 많은 사람이 이후 구금에서 풀려났고, 상당수는 법원에서 무죄 판단을 받았다. 그 사이 수많은 사람의 일상은 무너졌다.

이것을 단순한 법 집행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오히려 ‘절차 자체가 형벌이 되는 구조’에 가깝다. 체포되고, 감옥에 갇히고, 직장을 잃고, 지역사회에서 명예를 잃는다. 법원이 실제 위법행위를 인정하기도 전에 이미 상당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라자스탄에서 필자와 함께 사역하던 한 목회자는 보석으로 풀려나기까지 4개월 넘게 감옥에 있어야 했다. 그는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체포돼 갇혔고, 그렇게 삶의 네 달을 잃었다.

‘낮은 유죄 판결률’이 꼭 법의 실패를 의미하는가

이 법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모를 리 없다. 유죄 판결률이 낮다는 것이 반드시 법이 실패했다는 의미도 아니다. 오히려 만약 목적이 실제 범죄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종교 활동을 위축시키고 사람들을 겁먹게 만드는 데 있다면, 법은 의도한 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또 있다. 이러한 법은 자경단과 극단주의 세력에게 자신들의 편견이 국가 정책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먼저 기도모임에 들이닥치고, 예배를 방해하며, 사람들을 위협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후 개종금지법은 이러한 행동을 정당화하는 언어로 사용될 수 있다.

법은 단순히 법정 안에서만 작동하지 않는다. 사회의 분위기도 바꾼다. 그리고 법이 특정 공동체를 지속적으로 의심의 대상으로 규정하면, 그 의심은 거리로 내려온다.

민주주의는 투표함만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인도는 스스로를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른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유권자 수만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진정한 시험은 선거와 선거 사이에 시민이 어떤 자유를 누리는가에 있다. 무엇을 믿을 수 있는가, 누구와 결혼할 수 있는가, 어디에서 기도할 수 있는가, 자신의 신앙을 다른 사람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양심의 자유는 다른 많은 자유의 토대다. 왜냐하면 모든 자유는 국가가 소유하지 않는 인간의 내면이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시민의 가장 깊은 신념까지 관리하려 한다면 민주주의는 투표 숫자만 남은 껍데기가 될 위험이 있다.

공권력이 시민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문제는 교회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지난 7월 델리의 잔타르 만타르(Jantar Mantar)에서는 시험지 유출 문제에 항의하는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왔다. 이후 경찰과 시위대 사이의 충돌이 벌어졌고 많은 사람이 부상을 입었다. 국가가 비판적인 목소리를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척도다. 시민의 노래와 항의를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국가가 종교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얼마나 오래 존중할 수 있을지도 묻게 된다.

인도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 달라

필자는 이 말을 가볍게 하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 50년 넘게 사역해 왔다. 그리고 지금의 흐름을 보며 인도 사회와 국가 권력 안에서 반기독교적 분위기가 분명히 강화되고 있다고 느낀다. 지난 몇 년간의 기록은 인도가 국제사회에 제시하는 다원주의 국가의 이미지와 심각한 긴장을 드러낸다.

오픈도어(Open Doors)의 기독교 박해 국가 순위에서도 인도의 위치는 지난 10여 년 사이 크게 상승했다. 인도의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 가운데 극히 작은 비율에 불과하지만, 많은 지역에서 그들의 종교 활동은 점점 더 의심과 감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서구의 형제자매들에게 필자는 한 가지를 부탁하고 싶다. 인도가 자신에 대해 만들어낸 그럴듯한 이야기를 그대로 반복하지 말아 달라. 당신의 정부와 언론이 인도를 ‘모범적인 다원주의 민주국가’라고 묘사할 때, 이곳에서 필자가 던지고 있는 질문도 함께 물어 달라. “그렇다면 실제 유죄 판결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라자스탄의 감방에서 몇 달을 보내야 했던 목회자를 기억해 달라. 아직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비슷한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

대법원에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연기가 아니다

인도 대법원을 향해서도 필자는 예전에 했던 말을 다시 하고 싶다. 이것은 문제가 존재하는지 새롭게 조사해 달라는 요청이 아니다. 대법원은 이미 사건을 갖고 있다. 6년이 흘렀고, 13개 주가 관련 법을 시행하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이 체포됐다. 여러 청원이 접수됐고 법의 효력을 잠정적으로 중단해 달라는 신청도 계류돼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또 다른 날짜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심리다. 법원이 이 법들의 위헌성 여부를 본격적으로 판단하고, 필요한 경우 효력 정지 여부도 결정해야 한다.

사법적 지연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재판이 미뤄지는 동안에도 법은 계속 시행되고, 사람들은 계속 체포되며, 가족과 공동체는 그 대가를 치른다. 그렇기에 때로 지연은 그 자체로 하나의 판결처럼 작용한다. 그리고 이 법으로 이미 입건되고 구금돼 본 사람들은 그 침묵의 판결이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고 있다.

#크리스천포스트 #기독일보 #기독일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