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무자비한 박해를 받은 이유는 획일적인 ‘황제 숭배’를 거부했기 때문일까? 바울이 전한 복음은 카이사르의 권력에 맞서는 정치적 정면 대결이었을까?
신간 『바울과 로마 황제 가문의 신격화 현상』은 신약학계에서 오랫동안 당연한 전제로 여겨져 온 이 ‘그리스도 대 가이사(카이사르)’의 단순한 대결 구도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 클린트 버네트는 고고학적 증거들을 통해 1세기 로마 제국의 복잡하고 생생한 역사적 풍경을 복원하며, 바울 신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해석학적 토대를 제공한다.
‘획일적 황제 숭배’라는 통념을 깨다
저자는 비문, 주화, 조각상, 신전 유적 등 일차 사료를 들여다보는 ‘고고학적 현미경’을 통해 제국 전역에 강요된 단일한 황제 숭배란 존재하지 않았음을 실증적으로 밝혀낸다.
사람들이 실천했던 것은 로마 황제가 베푼 평화와 번영에 감사하며 각 도시의 상황에 맞게 부여한 ‘황족의 신적 영예(Imperial Divine Honors)’였다. 저자는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핵심적인 세 도시의 고고학 자료를 비교하며, 이 영예가 도시마다 얼마나 다르게 적용되었는지 추적한다.
빌립보 (보수적 로마 식민지): 로마의 관습을 충실히 따라, 주로 이미 죽어서 신격화된 황제들을 기렸다.
데살로니가 (자유 도시): 살아 있는 로마 황족에게도 그리스 전통 신들과 동등한 신적 영예를 돌리며 그들을 숭배했다.
고린도 (국제 항구도시): 로마와 그리스의 관습이 뒤섞인 독자적이고 개방적인 영예 체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황족의 신적 영예가 전통 신앙과 긴밀히 결합해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있었다.
정치적 대결을 넘어선 ‘대항 문화적’ 충돌
이 책은 N. T. 라이트나 브루스 윈터처럼 초기 기독교의 박해 원인을 ‘황제 숭배 거부라는 단일한 정치적 이유’로 환원하는 현대 바울 신학자들의 도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당시 이교도들에게 황족의 신적 영예는 전통 종교를 위협하는 ‘경쟁자’가 아니라, 전통 신들이 로마 황족을 선택해 축복을 내린다고 믿는 ‘협력적’인 종교 체계였다. 따라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박해는 단순히 카이사르의 정치 권력에 맞섰기 때문이 아니다. 다신교적 관습이 촘촘하게 짜여 있던 고대 사회의 공적 구조 전체와, 복음의 절대적 일신교 신앙이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발생한 문화 전체와의 ‘대항 문화적’ 충돌이었다.
다원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교회를 위한 나침반
“결국 이 책은 고고학이 되살려낸 바울의 세계를 통해, 신앙과 문화가 충돌할 때 우리가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바울과 로마 황제 가문의 신격화 현상』은 성경 텍스트를 역사의 현장 속에서 입체적으로 읽어내고자 하는 목회자와 설교자들에게 탁월한 통찰을 제공한다.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서, 고린도전서의 역사적 배경이 선명하게 살아나면서, 고대 사회 못지않게 다원화된 오늘날의 사회 속에서 어떻게 복음을 선포하고 살아낼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마리를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