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은 구원자가 아니다: AI 시대, 기독교인이 새겨야 할 세 가지 경고

마이클 유세프 목사.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마이클 유세프의 기고글인 ‘모든 그리스도인이 AI에 영적 질문을 던지기 전에 알아야 할 세 가지 경고’(3 warnings every Christian needs before asking AI spiritual questions)를 8월 1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이집트 출신의 신학박사 마이클 A. 유세프는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사도교회(Church of The Apostles)의 담임목사이자, 190개국에 방송되는 라디오 프로그램 ‘리딩 더 웨이’의 설립자이다. 그는 무어 신학교, 풀러 신학교, 에모리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으며, 50권이 넘는 저서를 집필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한 아이가 한밤중에 거대한 도서관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곳에는 수백만 권의 책과 번쩍이는 화면이 있고, 모든 질문에 즉시 대답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그러나 사서도, 목회자도, 목자도 없다.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오류인지 일러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이 인공지능(AI)에 영적인 질문을 던질 때 들어서는 세계가 바로 이와 같다. 그러므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더 이상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2026년 7월 21일 바나그룹이 발표한 「새로운 바나 데이터: 실천적 기독교인들의 빠른 AI 도입」 보고서에 따르면, 이른바 ‘실천적 기독교인(practicing Christians)’은 일반 미국인보다 AI를 훨씬 자주 사용하고 있다.

미국 성인 전체의 31%가 개인 생활에서 AI를 ‘매우 자주’ 또는 ‘자주’ 사용한다고 답한 반면, 실천적 기독교인 가운데서는 그 비율이 44%에 달했다. 직장에서도 미국 성인 전체의 26%가 AI를 자주 사용한다고 답했지만, 실천적 기독교인은 39%가 AI를 활용하고 있었다.

실천적 기독교인의 거의 절반은 자신의 영적 성장을 AI에 맡길 수 있다고 답했다. 약 3분의 1은 최근 한 달 동안 영적 조언이나 성경 관련 질문을 위해 AI를 사용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3명 중 1명은 AI 활용에 관해 목회자의 지도를 원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충분히 준비돼 있다고 느끼는 목회자는 12%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이제 질문은 “기독교인들이 AI를 사용할 것인가”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AI를 사용하고 있다. 교회는 도구를 사용하되 그 앞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도구 자체를 무조건 두려워하지 않았다. 인쇄술은 성경의 대량 보급을 가능하게 했고, 라디오는 복음을 각 가정으로 실어 날랐다. 위성 텔레비전은 닫힌 국가들에 성경적 메시지를 전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는 그리스도를 선포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합법적인 수단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도구는 끝까지 도구로 남아 있어야 한다.

필자는 다보스포럼과 ‘AI 종교’에 관한 글에서 이 점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우리는 AI를 종으로 부리는 것이지, 구원자로 환영하는 것이 아니다.” 최종 권위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진정한 스승은 AI 모델이 아니라 성령이시다. 지역교회의 신실한 목회자는 디지털 비서로 대체할 수 있는 영적 장식품이 아니다. 그는 그리스도 아래에서 양 떼를 맡은 목자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들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요일 4:1)고 명한다.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유 1:3)고 권면하며,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경고한다(마 6:24).

AI는 검색을 돕고 정보를 정리할 수 있다. 설교를 찾고, 특정 주제를 요약하며, 관련 성경 구절을 제시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AI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사람을 거룩하게 만들 수도 없다. 십자가에서 죽을 수도 없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할 수도 없다. 도구는 사람을 진리로 안내하는 데 사용될 수 있지만, 결코 진리의 근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다보스포럼에서 법과 책, 심지어 종교를 포함해 “단어로 이루어진 모든 것이 AI에 의해 장악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필자는 저서 『하나님의 마지막 부르심』에서 AI가 설계한 종교와 AI가 쓴 ‘성경’이 사람들을 속이기에 충분할 만큼 그럴듯한 기독교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도 십자가와 부활의 메시지는 교묘히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치명적이면서도 매혹적인 타협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의 교회에는 어느 때보다 예리한 분별력이 필요하다. 또한 이것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예배의 문제다.

다음 세 가지 경고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경고 1: 매끄러운 답변이 성경적 진리를 왜곡할 수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답변이 충분히 기독교적으로 들린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그러나 가장 위험한 오류는 언제나 노골적인 거짓말의 모습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부분적인 진실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문장은 그럴듯하고 어조는 부드럽다. 답변은 균형 잡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내용이 빠져 있을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미 이러한 문제를 수치화하려 했다.

제이슨 오언(Jason Owen)은 2026년 학술지 《AI와 윤리(AI and Ethics)》에 발표한 「AI 생성 답변에서 나타나는 교리적 평탄화 현상 탐지」를 통해 거대언어모델이 교리적으로 민감한 기독교 질문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교리문답과 신앙고백서, 신경, 교단 선언문 등을 바탕으로 교리적 지식 기반을 구축했다. 이어 권위와 삼위일체, 구원론과 성례전, 종말론과 인간론, 교회론과 기독교 윤리 등 여덟 영역에서 576개의 교리적 주장을 추출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AI 모델이 특정 교리를 설명할 때 개별 문장 자체는 대체로 정확했다. 그러나 해당 교리가 실제로 가르치는 핵심 요소를 지속적으로 누락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를 ‘교리적 평탄화(doctrinal flattening)’라고 부른다.

AI 시스템은 특정 신앙을 ‘기독교인 전체의 믿음’으로 뭉뚱그리는 경향이 있다. 복잡한 전통과 교리적 차이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약으로 축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성례전과 종말론 관련 주제가 취약했고, 구원론과 성례전에서는 교리 왜곡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위험은 분명하다. 기계에 “기독교인은 무엇을 믿는가”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인터넷에 흩어진 종교적 콘텐츠의 평균값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갈등을 줄이고 누구도 불편하게 하지 않는 매끄러운 합의점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엄밀함과 확신은 약화되고, 성경적 진리의 날카로운 부분은 둥글게 깎일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온라인 종교 콘텐츠의 평균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말씀과 회개, 은혜와 구원, 거룩함과 심판, 하나님 나라와 영생에 관한 진리다.

무해한 교리적 오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에서 벗어난 작은 일탈이 사람을 더 큰 미혹으로 이끌 수 있으며 속도가 지혜를 뜻하지 않으며, 정보가 곧 진리는 아니다.

경고 2: AI는 정보를 줄 수 있지만 영혼을 돌볼 수 없다

목양에는 결코 흐려져서는 안 되는 분명한 경계가 있다. AI는 정보를 제공하고 대화를 흉내 낼 수 있다. 성경 구절을 찾아주고 여러 해석을 비교하며 성경공부 질문을 제안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목회적 돌봄은 단순히 종교적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 아니다.

목자는 양을 안다. 이리가 오는지 살피고, 사랑으로 교정하며, 눈물로 기도한다. 죄에 맞서고 고통받는 이를 위로하며 하나님 앞에서 맡겨진 영혼에 대한 책임을 진다.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행 20:28)고 권면했다.

베드로는 목자장 아래 있는 장로들에게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라”(벧전 5:2)고 명했다. 히브리서는 영적 지도자들이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같이 한다”(히 13:17)고 말한다.

그러나 기계는 이 일을 할 수 없다. 챗봇은 예배당 한쪽에서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알아채지 못한다. 교회 권징을 시행할 수도 없고, 새 신자에게 세례를 베풀 수도 없다. 성찬을 집례하거나 병상 곁에서 죽어가는 사람의 손을 잡고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눈물로 권면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 아래에서 한 사람의 영혼에 대한 책임을 짊어질 수 없다.

교회 지도자는 자신과 양 떼를 함께 살펴야 한다. 자신의 영적 성숙을 방치한 채 다른 사람을 온전히 돌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목양이다. 목양은 육신을 지닌 인격과 인격 사이에서 이루어지며, 하나님 앞에서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성경적 사역이다.

경고 3: 모든 ‘기독교’ 앱이 신실한 목자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출처가 불분명한 신앙 앱은 목양을 대체할 수 없다. 모든 ‘기독교’ 앱이 신앙의 목자들에 의해 개발된 것은 아니다. 모든 영적 도구가 성경에 굳게 뿌리를 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 종교적인 언어로 포장된 모든 답변이 성경적 가르침과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도구는 사람의 관심을 끌어 수익을 얻기 위해 만들어진다. 또 어떤 도구는 사용자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다. 복음에 대한 헌신도, 교회를 향한 책임감도,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경외심도 없는 개발자들이 만든 도구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교리와 성경의 문제를 다룰 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평균적인 의견이 아니다. 교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혼란의 하나님이 아니시며, 스스로 모순되는 분도 아니시다. 이 원칙은 설교단과 교실, 가정에 적용된다. 이제는 우리의 채팅창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도구는 그리스도와 성경, 교회로 이끌어야 한다.

긍정적인 소식이 있다면 교회가 기술을 무조건 피해 달아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복음을 위해 기술을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기술이 곁길로 새지 않도록 통제하고, 그리스도와 경쟁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섬기도록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출처가 중요하다.

‘마이 페이스 어시스턴트(MY Faith Assistant)’는 사람들이 영적 질문을 던질 때 모호함을 벗어나 성경적 진리로 나아가도록 돕는다는 사역적 목적을 가지고 개발됐다. 이 도구는 인터넷에 떠도는 영적 의견을 모아 제공하는 일반적인 챗봇이 아니라, 사용자의 시선을 다시 성경으로 돌리도록 설계됐다고 소개된다.

그러나 이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원칙이 있다. 어떤 도구도 성경과 지역교회, 개인의 기도와 목회 상담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신앙의 다음 단계를 충실히 밟도록 돕는 하나의 디지털 징검다리일 수 있을 뿐이다.

징검다리는 목적지가 아니다. 지도는 식사를 대신할 수 없으며, 종은 구원자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도구를 지혜롭게 사용하라.

질문을 던지고, 성경을 검색하며, 설교를 찾고, 성경공부 모임을 준비할 수 있다. 그러나 양심 전체를 기계에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 분별력을 익명의 온라인 집단에 외주 줘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서 누리는 살아 있는 교제를 자신만의 폐쇄적인 영적 확증편향과 맞바꾸지 말며 매일 말씀으로 돌아가라. 지역교회에 굳게 뿌리를 내리라. 지혜를 구하며 기도하고, 모든 것을 성경으로 시험하라. 죄를 지었을 때는 신속히 회개하고 즉시 그리스도께 나아가라.

“나는 누구인가.”, “내가 용서받을 수 있는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죽음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단순한 정보 요청이 아니다. 인간의 정체성과 죄, 구원과 영원에 관한 질문이다. 이 질문들에 대한 궁극적인 답을 차가운 기계에서 찾고 있었다면 사랑으로 주는 이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떤 알고리즘도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오직 한 분만이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오직 한 분만이 무덤의 권세를 이기셨다. 오직 한 분만이 영생을 주실 수 있다.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 10:11)라고 말씀하셨다.

오늘 그분께 나아가라.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와 주님으로 믿으라. 선한 목자는 단순히 질문에 무미건조한 답변을 내놓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시며, 자신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품으시는 분이다. 아무리 강력한 기술이라도 결코 그분을 대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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