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의 직접수사권과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31일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재석 의원 178명 가운데 찬성 175명, 반대 2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으며 국민의힘은 표결에 불참했다.
오는 10월 2일 검찰청이 폐지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하면 경찰 등 사법경찰이 일반 범죄 수사를 담당하고, 공소청 검사는 공소 제기와 유지에 주력하게 된다. 검사는 경찰이 송치한 기록을 토대로 기소 여부를 판단하되 필요한 경우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사에게 집중됐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 형사사법 체계를 정상화하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반면 법조계와 피해자 지원단체에서는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피해자가 부담해야 할 절차와 법률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직접 보완수사 사라져 ‘사건 핑퐁’ 우려
기존에는 검사가 경찰이 송치한 사건을 검토하다 새로운 증거나 혐의를 발견하면 직접 보완수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검사 보완수사권이 폐지되면 공소청 검사는 직접 수사하지 못하고 경찰 등 수사기관에 추가 수사를 요구해야 한다.
경찰은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를 받은 날부터 원칙적으로 한 달 안에 수사를 마친 뒤 결과와 사건 기록을 보내야 한다. 수사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검사는 다시 보완수사를 요구하거나 상급 관서 또는 다른 수사기관에 수사를 맡길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검사가 단기간에 확인할 수 있었던 사건도 경찰과 공소청을 오가는 이른바 ‘사건 핑퐁’을 거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이 혐의가 없다고 판단해 사건을 송치하지 않은 경우에도 검사는 직접 수사할 수 없고 재수사를 요구해야 한다.
대검찰청이 일선 검찰청 12곳을 조사한 결과, 지난 4월 검사가 경찰 송치 사건을 직접 보완수사한 비율은 44.28%였다. 검사가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한 사건은 지난해 기준 10.7%였다. 검사 보완수사권 폐지로 경찰의 업무가 늘어나면 사건 처리와 피해 회복도 늦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 검찰 간부는 “사건 처리가 지연될수록 폐쇄회로(CC)TV 영상이나 통신 자료 등 주요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 변호사 의존도·비용 증가 가능성
검사가 직접 보완수사를 할 수 없게 되면서 범죄 피해자의 변호사 의존도와 법률 비용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피해자가 고소장 작성과 수사관 면담, 이의신청 등 경찰 수사 단계마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야 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가 미흡해 검사가 보완수사를 요구하면 피해자가 자료를 보완하고 진술하는 절차가 반복될 수도 있다. 일부 변호사 업계에서는 검찰 출신보다 경찰 출신 전관 변호사에 대한 수요가 늘고 수임료도 높아지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금융 범죄 피해자를 대리한 변호사가 담당 경찰로부터 적용 법리 등을 담은 ‘송치 의견서’를 작성해 달라는 요구를 받은 사례도 전해졌다. 일부 변호사는 고소·고발 사건을 맡은 뒤 경찰이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착수하면 추가 보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피해자가 수사에 필요한 증거를 직접 확보해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 확대되면 경제적 여력이 부족한 사람은 피해를 구제받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 부실수사 견제 기능 약화 논란
경찰 수사를 견제하고 보완하는 기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광주 여고생 살인 사건의 피고인 장윤기는 애초 경찰에서 살인 혐의로 송치됐지만, 검찰의 보완수사를 통해 성범죄 목적의 범행 정황과 수사 과정의 증거인멸·수사기밀 유출 의혹 등이 추가로 드러났다. 장윤기는 이후 재판에서 ‘강간 등 살인’ 혐의를 인정했다.
개정 형사소송법은 검사가 경찰이 송치한 사건 관계자의 의견을 듣거나 관련 자료를 제출받을 수 있는 ‘사실관계 확인’ 절차를 두도록 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확보한 진술이나 자료는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어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경찰이 불송치한 사건에 고소인이 이의를 제기해도 검사는 피해자를 직접 조사하거나 추가 증거를 확보할 수 없다. 필요한 경우 경찰에 보완수사나 재수사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 등 5개 여성단체는 개정안 통과 후 공동성명을 내고 “부실수사 등 수사 절차상 하자를 피해자가 개별적으로 다퉈야 하는 방식으로 부담을 떠넘겼다”며 “피해자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는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