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땅인가: 이스라엘의 정당성에 대한 성경적 역사와 지정학적 현실

웨인 그루뎀 교수. ©ChatGP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웨인 그루뎀의 기고글인 '이스라엘과 미국, 그리고 이란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Israel, US and the judgment of God on Iran)을 7월 29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웨인 그루뎀은 피닉스신학교의 신학 및 성경학 명예 석좌연구교수다. 하버드대학교에서 학사학위(BA)를,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목회학석사(MDiv)와 명예신학박사(DD) 학위를,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1948년 현대 이스라엘 국가가 수립된 이래, 이스라엘은 끊임없는 적대에 직면해 왔다. 이스라엘의 반대자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국가 수립 권리를 빼앗은 부당한 ‘정착민 식민주의자’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은 시위 현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다음 구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강에서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은 해방되리라.”

여기서 ‘강’은 요단강을, ‘바다’는 지중해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구호는 오늘날 이스라엘이 통치하는 모든 지리적 영역이 유대인의 지배에서 ‘해방’돼 아랍 또는 이슬람 국가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한 해석을 따른다면 이 구호는 결국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해체를 요구하는 것이며, 일부에게는 해당 지역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해야 한다는 의미까지 포함한다.

‘팔레스타인’은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지리적 명칭이다. 오늘날 이 용어는 지중해 동부 연안의 일정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여기에는 현대 이스라엘 영토와 가자지구, 이른바 요르단강 서안지구, 경우에 따라 이스라엘 인접 국가의 일부 지역까지 포함된다.

누구의 땅인가

팔레스타인 땅의 소유권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 가운데 하나는 창세기에서 발견된다.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다는 약속을 반복해서 기록한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창 12:5~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창 13:14~15)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창 17:8)

“야곱이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창 48:3~4)

창세기 전반에 걸쳐 이러한 약속이 반복되는 것은 유대 민족이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받았다는 언약의 지속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필자는 성경의 나머지 부분에서도 이 약속이 명시적으로 철회되거나 무효화되지 않았다고 이해한다.

모세가 죽은 뒤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수아와 사사들의 인도 아래 가나안 땅을 점차 차지했다. 이후 이스라엘의 통치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절정에 이르렀다.

가나안 땅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은 후대에 기록된 역대상에서도 다시 확인된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다윗은 다음과 같이 찬양했다.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법도가 온 땅에 있도다 너희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할지어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이는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 기업의 지경이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대상 16:14~18)

그러나 이후 이스라엘 민족의 우상숭배와 지속적인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셨다. 기원전 586년경 많은 유대인이 바벨론으로 끌려가 약 70년간 포로 생활을 했다.

이 시기를 역사적으로 ‘유배’ 또는 ‘포로기’라고 부르는 것은 유대 민족이 자신들의 고향에서 강제로 떠나게 됐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기원전 539년 바벨론 제국은 고레스 왕이 이끄는 페르시아에 의해 정복됐다. 이듬해 고레스는 유대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용했다. 많은 유대인이 귀환해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을 재건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 아래 있었다.

기원전 333년 알렉산더 대왕은 이스라엘 땅을 포함해 당시 알려진 세계의 상당 부분을 정복했다. 유대인들은 계속 그 땅에 거주했지만 알렉산더와 그의 후계자들의 통치를 받았다.

기원전 167년 유대인들은 그리스계 통치자들에게 반란을 일으켰고, 마카베오 가문의 지도 아래 기원전 142년 독립을 얻었다. 이 독립은 기원전 63년 폼페이우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비롯한 지역을 정복할 때까지 이어졌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 사역을 하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이후 수 세기 동안 이스라엘 땅은 비잔틴 제국, 이슬람 통치 세력과 십자군,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영국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됐다.

현대 이스라엘의 수립

1917년 11월 2일 영국 정부는 ‘밸푸어 선언’을 발표했다. 외무장관 아서 제임스 밸푸어가 서명하고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총리와 영국 전시 내각이 지지한 이 선언은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국왕 폐하의 정부는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을 위한 민족적 고향을 수립하는 것을 호의적으로 바라보며, 이 목적의 달성을 촉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단, 팔레스타인에 존재하는 비유대계 공동체의 시민적·종교적 권리나 다른 국가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누리는 권리와 정치적 지위를 침해하는 어떠한 행동도 행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영국은 이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의 ‘민족적 고향’을 세우는 것을 공식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이 구상이 현실화되기까지는 약 30년이 더 걸렸다.

1947년 11월 29일 유엔 총회는 결의안 181호를 채택했다. 이 결의안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국가와 아랍 국가라는 두 개의 독립 국가를 수립할 것을 권고했다.

유대인 지도부는 이 권고안을 수용했지만 아랍 지도부는 거부했다. 이들에게 분할안의 수용은 이스라엘 국가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은 독립 국가 수립을 선언했다. 미국은 이 선언이 발표된 직후 이스라엘을 새로운 독립 국가로 인정했다. 이후 여러 국가가 이스라엘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외교·통상 관계를 맺었다. 현재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들은 주로 이슬람권에 속해 있다.

1948년 5월 15일에는 이집트와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등 주변 아랍 국가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이어진 전쟁에서 국가의 존립을 지켜냈다.

1949년 5월 11일 이스라엘은 유엔 회원국이 됐다.

필자가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통해 강조하려는 것은 유대 민족이 오랜 세월 현재 이스라엘 지역을 자신들의 고향으로 인식해 왔다는 사실이다. 유대인들은 외세의 지배 아래 있을 때에도 이 땅과 역사적·종교적 연관성을 유지했다.

필자는 이러한 점에서 현대 이스라엘 국민을 단순히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정착민 식민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

또한 많은 기독교인과 유대인은 아브라함에 관한 창세기의 기록을 실제 역사로 받아들인다. 필자 역시 창조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셨다는 기록을 사실로 믿는다.

이러한 성경관을 전제로 한다면 유대인들은 자신들과 무관한 땅을 점령한 외부인이 아니라, 그 땅에 대한 오래된 역사적·언약적 연관성을 지닌 민족이다.

현대 이스라엘이 이 지역에 존재할 정당성을 가진다고 보는 근거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아브라함에게 주어지고 이삭과 야곱에게 반복된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둘째, 유대인의 통치와 거주, 그리고 이 지역을 고향으로 인식해 온 오랜 역사가 있다.

셋째, 1917년 밸푸어 선언을 비롯한 영국 정부의 지지가 있었다.

넷째, 1949년 유엔이 이스라엘을 정식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다섯째, 오늘날 다수의 국가가 이스라엘을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여섯째, 이스라엘은 미국에 중동 지역의 중요한 동맹국이 되고 있다.

일곱째, 현대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유지하는 대표적인 국가 가운데 하나다.

여덟째, 이스라엘은 군사와 경제,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세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스라엘은 자국의 파괴를 추구하는 국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1947년 유엔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두 개의 독립 국가를 세울 것을 권고했다. 당시에는 합리적인 타협안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이후의 사건들은 오늘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인식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적대적인 세력이 통치하는 새로운 국가를 국경 바로 옆에 세우는 것은 자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한 우려를 강화한 대표적인 사례는 가자지구 철수와 2023년 10월 7일 공격이다.

가자지구는 이스라엘 남서쪽 국경을 따라 자리한 지역이다. 이스라엘은 2005년 ‘평화를 위한 영토 양보’라는 구상 아래 가자지구에서 병력과 정착민을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약 8,000명의 이스라엘인이 가자지구를 떠났다. 그러나 철수 이후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했고, 이스라엘을 겨냥한 로켓 공격은 오히려 증가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하마스가 예루살렘과 텔아비브에서 멀지 않은 지역을 통치하게 된 것이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 무장대원들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다수의 민간인을 포함한 약 1,200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어린이와 노인을 포함한 251명이 인질로 끌려갔다.

이스라엘이 독립된 팔레스타인 국가의 수립을 경계하는 이유는 이러한 경험과 관련돼 있다. 하마스는 오랫동안 이스라엘과의 무력 투쟁을 주장해 왔으며, 이란과 헤즈볼라 등도 이스라엘을 적대하는 구호를 반복해 왔다.

이스라엘 정부의 최우선적인 책임은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새로운 팔레스타인 국가가 평화로운 이웃이 아니라 또 다른 공격의 거점이 될 가능성을 심각하게 우려할 수밖에 없다.

10월 7일 공격과 이란의 책임

2023년 10월 7일 공격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테러 공격 가운데 하나였다. 홀로코스트 이후 유대인들이 하루 동안 겪은 최악의 학살로도 평가된다.

하마스는 이 공격의 직접적인 책임을 지고 있으며, 하마스를 지원해 온 이란도 정치적·군사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이란 정부는 하마스와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장기간 지원해 왔다. 이들 무장단체는 이스라엘 민간인 지역을 향해 로켓을 발사하고 이스라엘 국민을 지속적인 공포 속에 놓이게 했다.

이란 정부는 국내 반정부 시위도 강경하게 진압해 왔다. 필자는 이란 정권이 자국민과 주변 국가의 생명보다 정권의 이념과 영향력 확대를 우선해 왔다고 본다.

이처럼 광범위한 폭력과 파괴에 집착하는 모습은 단순한 정치적 대립을 넘어 영적인 악의 영향력을 떠올리게 한다.

예수님은 마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요 8:44)

필자는 이란 정권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몇 가지 요인을 다음과 같이 본다. 이란은 핵무기 개발 능력을 빠르게 확대해 왔으며,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발언을 반복해 왔다.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이란의 지원을 받아 이스라엘 민간인 지역을 향한 공격을 지속해 왔다. 이란 정부는 반정부 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하며 자국민에게도 극심한 폭력을 행사해 왔다.

일부 이란 지도자들은 종교적 전쟁에서의 죽음을 영예로 여기는 급진적 이념을 따르고 있으며, 이는 현실적인 타협과 억제를 어렵게 만든다.

정부는 악을 징벌하는 하나님의 사역자인가

사도 바울은 범죄자를 처벌하는 정부 권력의 책임에 관해 분명히 말했다: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롬 13:3~4)

악을 행한 사람에게 합당한 처벌을 가하는 일은 매우 엄중한 책임이다. 그러나 경찰이나 군인이 살인과 폭력으로부터 무고한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때, 그들은 공적 정의를 세우는 정부의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다.

바울의 이러한 가르침은 대홍수 이후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하신 말씀과 연결된다: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창 9:5~6)

필자는 이러한 성경적 원리를 바탕으로, 이스라엘과 미국이 자국민을 공격하거나 공격을 계획하는 세력을 군사적으로 억제하는 행위를 공적 정의를 수행하는 정부의 역할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책임을 수행하는 정부 지도자나 군인이 도덕적으로 완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당시 로마 황제는 네로였으며, 그와 그의 관리들이 의로운 인물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구약성경에서도 하나님은 바벨론을 사용해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지만, 이후 바벨론의 교만과 죄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으셨다(렘 50~51장).

물론 국가가 수행하는 군사 행동이 언제나 정당한 것은 아니다. 군대는 민간인을 보호하고, 불필요한 피해를 피하며,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이스라엘의 비판자들은 이스라엘군이 민간인을 의도적으로 공격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스라엘 정부는 이를 부인하며, 불법적으로 민간인을 살해한 군인에게 징계 조치를 내린 사례가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학교와 병원, 민가 주변에 군사 시설을 설치해 민간인을 방패로 이용한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 측은 공격 전에 전단과 전화, 인터넷 등을 이용해 주민들에게 대피를 경고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과 반론은 구체적인 사건별로 독립적인 조사를 통해 검증돼야 한다. 정당한 자위권을 행사하는 국가라 하더라도 민간인을 보호할 책임에서는 면제될 수 없다.

이란을 향한 군사 행동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필자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의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행동을 고려할 수 있는 근거를 크게 세 가지로 본다:

첫째,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지원하고 이스라엘과 미국 국민의 생명을 위협한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는 차원의 대응이다.

둘째, 미래의 유사한 공격을 막고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한 자위권의 행사다. 이란의 미사일 사정권 안에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여러 미군 기지도 존재한다.

셋째, 이란과 그 대리 세력의 전쟁 수행 능력이 더욱 확대되기 전에 공격 능력을 제한하려는 예방적 방어의 성격이다.

다만 이러한 군사 행동이 정당화되려면 실제적이고 임박한 위협이 존재해야 하며, 공격의 필요성과 비례성, 민간인 보호 원칙이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

필자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하마스나 이란을 상대로 군사 행동을 수행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곧바로 ‘집단학살’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어떠한 국가도 국제법과 도덕적 책임을 넘어 무제한적인 폭력을 행사할 권리를 갖지는 않는다.

정부는 악을 억제하고 무고한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졌다. 동시에 정부 자신도 정의의 기준 아래 있으며, 자신이 행사한 무력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을 향한 적용

과거 수십 년 동안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초당적으로 지지해 왔다.

오늘날에도 두 정당의 공식적인 입장은 대체로 이스라엘의 국가적 존립을 지지한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 작전을 ‘집단학살’이라고 비판하고, 미국의 군사·재정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늘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 대한 정책은 민주당 내부에서 중요한 논쟁이 될 가능성이 있다. 기독교인들은 각 정치인의 발언과 정책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화당 내에서도 이스라엘 정부의 개별 정책에 대한 비판은 존재한다. 그러나 연방 차원의 주요 선출직 지도자들은 대체로 이스라엘에 대한 강한 지지를 유지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신 본문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도 담겨 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창 12:3)

이 약속은 오늘날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에게도 계속 적용되는가? 한편으로 창세기 12장은 이 약속이 모든 미래 세대의 정치적 국가에 직접 적용된다고 명시하지 않는다. 또한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을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의 영적 상속자로 설명한다.

그러나 신약성경의 여러 구절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은 유대 민족에게도 독특한 미래가 있음을 보여준다.

바울은 로마서 11장에서 유대 민족을 감람나무에서 꺾인 가지에 비유한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실” 수 있다고 말한다(롬 11:24).

하나님께서는 유대 민족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으며, 그들을 향한 미래의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이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롬 11:28)

이 구절에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은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바울은 그들이 이미 구원받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상들에게 주어진 약속으로 인해 그들이 여전히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을 향한 계획을 여전히 가지고 계심을 시사한다.

바울은 미래에 많은 유대인이 예수님을 메시아와 구주로 믿게 될 때가 올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들은 다시 자신들의 감람나무에 접붙여질 것이다.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롬 11:12),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롬 11:15)

이러한 말씀은 장차 많은 유대인이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게 될 미래가 있다는 해석과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롬 11:26).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사람을 축복하시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사람을 심판하시는가.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해 완전한 확신을 주장할 수는 없다고 본다. 현대 이스라엘 정부의 모든 정책과 행동을 무조건 지지하는 것이 곧 성경적 충성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고, 그들을 향한 특별한 목적을 여전히 가지고 계신다는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고려할 때, 필자는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유대 민족을 향한 태도를 중요하게 여기신다고 믿는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는 약속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성경적 경고이자 소망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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