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곧 동조다: 파키스탄의 강제 개종과 흔들리는 사법 정의 앞에서

베키 머레이.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베키 머레이의 기고글인 '13세에 강제 결혼당한 기독교인 소녀: 마리아 샤바즈와 파키스탄의 숨겨진 위기'(13, Christian and married by force: Maria Shahbaz and Pakistan's silent crisis)를 7월 22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베키 머레이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전역에서 활동하는 인신매매 방지 단체 ‘원 바이 원(One By One)’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유럽의회는 13세 기독교인 소녀 마리아 샤바즈가 납치된 뒤 강제로 개종하고 결혼까지 하게 된 사건과 관련해 파키스탄을 향해 이례적이고도 긴급한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이달 초 채택된 결의안에서 유럽의회 의원들은 소수종교 공동체의 딸들이 납치되거나 강제 개종을 당했다는 가족들의 호소를 조사할 국가 차원의 기구를 설립하라고 파키스탄에 촉구했다. 또한 파키스탄 당국이 마리아에게 법률 대리인과 가족과의 연락, 심리적 지원을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유럽의회는 마리아가 겪은 사건을 단지 개인의 비극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파키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더 광범위한 인권 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규정하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마리아의 이야기는 결코 예외적인 비극이 아니다. 수많은 사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매년 파키스탄에서는 많은 기독교인 소녀들이 납치된 뒤 이슬람으로 강제 개종되고,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남성과 결혼을 강요받는다. 이 아이들은 위조된 혼인증명서가 버젓이 인정되고, 강압의 정황이 묵살되며, 겁에 질린 채 자신에게 강요된 ‘선택’을 스스로 변호해야 하는 법적 체계 속으로 사라진다.

한 아이가 납치되고 강요받아 자신이 원하지 않은 삶 속으로 내몰릴 때, 피해는 눈앞의 폭력을 훨씬 넘어선다. 아이의 정체성은 동의 없이 지워지고, 기독교 신앙은 오히려 표적이 되는 이유가 된다. 납치범이 그 아이를 자신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순간, 아이의 법적 권리는 사실상 사라진다.

마리아의 사건은 그나마 국제적인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수많은 다른 소녀들은 끝내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모든 사건은 같은 참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빼앗긴 어린 시절, 착취당한 신앙, 그리고 마땅히 보호해야 할 이들을 반복해서 외면하는 사법제도의 실패다.

전 세계 교회에 이 사건은 단순히 지나가는 해외 뉴스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도덕적 시험대다. 마리아의 이야기는 가장 보호받아야 할 이들을 계속 저버리는 구조를 폭로하며, 전 세계 교회에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사회의 제도가 취약한 이들을 보호하기를 거부할 때, 그들을 지킨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위기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정치적 편의나 외교적 신중함에 따라 결정돼서는 안 된다. 철저히 기독교적 가르침에 기초해야 한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백성에게 쉽게 간과되는 이들, 곧 어리고 약하며 힘없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라고 명령한다.

문제는 복잡하지 않다. 어린아이가 위협받고 소녀가 무방비 상태에 놓였을 때 기독교인은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오히려 기꺼이 나서야 한다. 그들을 보호하고, 상처와 폭력이 그들의 삶에 대한 마지막 결론이 되지 않도록 함께해야 한다. 따라서 이것은 정치가 아니라 신앙의 순종이다.

아울러 그리스도로 빚어진 공동체는 우리의 아들딸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돼야 한다.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은 단순한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신성한 소명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법제도가 한 아이의 인간성조차 인정하기를 거부할 때, 교회는 주저하지 말고 그 아이의 존엄을 선언해야 한다.

우리가 당장 파키스탄의 법제도를 바꿀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비극을 먼 나라의 일이나 어쩔 수 없는 현실로 치부하는 태도만큼은 분명히 거부할 수 있다. 우리는 상징적 수준에 머물지 않는 실질적인 국제 압박을 촉구할 수 있다. 피해 가족과 현장에서 직접 일하는 이들을 후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는 감상적인 기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진지하고 지속적인 기도를 드려야 한다. 나아가 이렇게 처절한 기독교인의 고통 앞에서 침묵하는 것은 결국 악에 힘을 보태는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필자가 15년 전 설립한 인신매매 방지 단체 ‘원 바이 원’은 지난 수년 동안 파키스탄에서 활동하며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수천 명의 아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왔다. 우리는 이 현실을 추상적인 정책 논쟁으로 접하지 않는다. 위험에서 구해내야 할 한 명 한 명의 아이가 지닌 절박한 삶의 이야기로 마주한다. 우리가 만난 아이들은 어떤 아이도 겪어서는 안 될 끔찍한 트라우마를 견뎌냈다. 동시에 우리를 숙연하게 만들고 많은 것을 깨우치게 하는 놀라운 회복력도 보여줬다.

우리의 활동에는 안전한 주거 제공과 트라우마 치료, 교육, 장기적인 회복 지원이 포함된다. 이러한 지원은 단순한 자선이 아니다. 폭력으로 산산이 부서진 삶을 다시 세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회복은 느리고, 때로는 몹시 고단하다. 언제나 한 사람의 삶과 깊이 맞닿아 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적 긍휼과 확신에 뿌리를 둔 개입이 실제로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제 전 세계 교회는 이 위기를 한때의 관심사로 흘려보낼 것인지, 반드시 감당해야 할 도덕적 명령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모든 기독교인에게 선택은 분명하다. 13세의 기독교인 소녀가 법정에 서서 정의를 요청했지만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녀의 사건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결코 정상적인 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빼앗긴 어린 시절과 짓밟힌 정체성, 신앙을 빌미로 한 잔혹한 착취는 원칙 있고 끈질긴 대응을 요구한다. 납치된 모든 소녀가 온전히 안전해질 때까지, 교회의 사명은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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