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일부 사람들은 왜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을 증오하게 되는가"(Why hating Israel comes natural to some people)을 7월 20일(현지시각)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도덕적·법적·사회적 관점에서 인종차별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오늘날의 문화는 인종차별적 언행을 한 사람에게 즉각적이고 엄중한 책임을 묻는다. 독자들도 이 점에는 필자와 대체로 동의할 것이다.
주요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은 공적 영역에서의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갖추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자신이 인종차별주의자임을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유대인을 향한 증오에 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예외가 허용되는 듯하다.
반명예훼손연맹(ADL)에 따르면 2025년은 이 단체가 1979년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반유대주의 사건이 세 번째로 많이 발생한 해였다. ADL은 2025년 미국에서 6,274건의 반유대주의 사건을 집계했다. 이는 2024년의 9,354건과 비교하면 33% 감소한 수치지만, 10년 전보다는 약 5배 증가한 규모다.
이번 달 시카고대학교의 여론조사기관 NORC는 오늘날 미국에 거주하는 유대인 성인 가운데 자신이 유대인으로서 안전하다고 느끼는 비율이 34%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이는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이다.
이러한 불안감은 컬럼비아대학교를 비롯한 대학 캠퍼스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유대인 학생들은 괴롭힘과 협박을 당하고 정상적인 캠퍼스 생활을 방해받았다고 호소했다.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대학 지도부가 미 의회의 조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하버드대학교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미시간대학교 등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반유대주의적 행동을 옹호하는 이들은 이스라엘이 현재 적대 세력을 대하는 방식을 근거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한다. 물론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역시 이 과정에서 비판받아야 할 과오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유대인을 향한 적대감이 오늘날의 분쟁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인류 역사 속에 존재해 왔다는 것이다.
기원후 600년 무렵 이슬람이 부상하기 시작했을 당시 아라비아와 북아프리카의 유대인들은 살해와 박해의 대상이 됐다. 11세기 이슬람 세력을 겨냥한 십자군 전쟁이 시작됐을 때에도 유대인들은 공격받았다. 당시 일부 십자군 사이에서는 “유대인을 죽이고 네 영혼을 구원하라”는 구호가 사용되기도 했다.
13세기와 14세기에는 유럽 전역을 휩쓴 흑사병의 원인이 유대인들에게 있다는 누명이 씌워졌고, 수많은 유대인이 학살당했다. 15세기 말 스페인에서는 대규모 추방이 벌어져 수많은 유대인이 바다와 길 위에서 목숨을 잃었다.
19세기 러시아에서는 러시아정교회로 개종하지 않는 유대인들이 살해되거나 강제 추방됐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많은 러시아 유대인이 간첩으로 몰려 시베리아로 유배됐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유대인들에게 벌어진 참상이 무엇이었는지는 더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인류가 마치 유대인을 미워하도록 프로그램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유대인을 향한 증오가 사람들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 이유를 영적인 관점에서 설명한다.
하나님의 눈동자
먼저 성경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담대하게 선포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명기 7장 6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 안에서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말한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스가랴 2장 8절도 같은 진리를 선포한다: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성경은 유대 민족이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과, 육신이 되신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하는 통로로 사용됐다고 기록한다. 바로 그 역할 때문에 이스라엘의 등에는 특별한 표적이 새겨졌고, 사탄과 그를 따르는 세력은 끊임없이 그 표적을 겨냥해 왔다.
그 전선은 에덴동산에서부터 형성됐다. 하나님은 뱀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세기 3:15)
여자의 후손은 궁극적으로 유대인의 혈통을 통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됐다. 그러나 원수는 그분의 오심을 막기 위해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였다.
가인은 경건한 계보의 첫 인물인 아벨을 죽였지만, 하나님은 셋을 통해 그 계보를 이어가셨다. 창세기 6장에서는 인간 사회 전체가 심각하게 타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집트에서는 히브리인 남자 아기들을 모두 죽이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후 오랜 핍박 속에서 메시아의 계보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요아스 한 사람에게까지 위태롭게 이어지기도 했다.
에스더서에서는 하만이 모든 유대인을 몰살하려 했고, 신약시대에는 헤롯이 유대인의 어린 사내아이들을 죽이는 일을 벌였다.
이스라엘을 향한 사탄의 공격은 요한계시록에도 묘사된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요한계시록 12:13)
성경은 이 여자를 이스라엘과 연결해 해석할 수 있는 상징으로 제시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이스라엘을 향한 공격은 단순한 정치적·민족적 갈등을 넘어 영적인 차원을 지닌다.
성경은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요한일서 5:19)이라고 말한다. 또한 원수들이 이스라엘을 향해 다음과 같이 모의한다고 기록한다: “우리가 가서 그들을 멸하여 다시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다시는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시편 83:4)
오늘날 유대인을 미워하고 박해하는 이들 역시 성경이 말하는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에베소서 2:2)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오래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할 경우 열방 가운데 흩어지고 조롱과 비방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여호와께서 너를 끌어 가시는 모든 민족 중에서 네가 놀람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신명기 28:37)
신명기 28장은 이스라엘이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져 평안을 얻지 못하고 끊임없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게 될 모습을 매우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 여러 민족 중에서 네가 평안함을 얻지 못하며 네 발바닥이 쉴 곳도 얻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거기에서 네 마음을 떨게 하고 눈을 쇠하게 하고 정신을 산란하게 하시리니.”(신명기 28:65)
그러나 이스라엘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보존될 것이라는 약속도 함께 받았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편 121:4)
그 약속의 가시적인 증거 가운데 하나로 많은 이들은 유대 민족이 다시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온 역사를 주목한다.
이사야는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모일 것을 예언했다: “주께서 다시 그의 손을 펴사 그의 남은 백성을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니.”(이사야 11:11-12)
또 이사야 66장에는 한 나라가 하루 만에 생겨나는 듯한 놀라운 장면이 기록돼 있다: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순식간에 태어나겠느냐.”(이사야 66:8)
많은 기독교인은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을 이러한 예언과 연결해 이해한다. 이스라엘은 독립을 선언한 직후 국제적으로 국가로 인정받았고, 이튿날 주변 국가들의 공격을 받으며 독립전쟁에 돌입했다.
이들은 한 국가가 먼저 탄생하고 그 이후 전쟁의 고통이 시작됐다는 역사적 순서 역시 이사야의 예언을 떠올리게 한다고 본다.
성경은 이스라엘이 다시 그 땅에 심기고 더는 뽑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아모스 9:15)
사탄과 그를 따르는 세력은 유대 민족을 향해 자신들이 가진 거의 모든 수단을 사용해 왔다. 제국의 압제와 종교재판, 흑사병에 대한 누명, 가스실, 그리고 편협함을 혐오한다고 말하면서도 유대인을 향한 증오에는 이상할 만큼 관대한 현대 문화에 이르기까지 그 모습은 시대마다 달라졌다.
그럼에도 유대 민족과 이스라엘은 여전히 존재한다. 성경적 관점에서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나 그들의 힘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과 말씀을 지키고 계시기 때문이다.
성경이 진리라면, 이스라엘을 향한 지속적인 증오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성경은 그 증오의 영적 기원이 사탄에게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메시아가 세상에 전해지는 통로로 사용된 민족을 겨냥한 공격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파라오와 하만, 히틀러에 이르기까지 유대 민족을 역사에서 지워버리려 했던 모든 시도는 결국 실패했다. 성경은 오늘날의 증오 역시 그 결말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원수와 그를 따르는 인간 세력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향해 맹렬한 분노를 쏟아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작정을 뒤집을 수는 없다. 유대 민족이 오랜 세월 수많은 박해 속에서도 살아남은 것은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존하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패배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데 자신을 거는 것과 같다. 그리고 역사는 그러한 시도가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