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영성(Spirituality)’의 시대다. 종교적 경계를 넘어 명상, 요가, 마인드풀니스 등 내면의 평화와 위로를 구하는 ‘세속 영성’이 현대인들의 일상 깊숙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각자도생과 자기착취에 지친 이들에게 제공되는 이 영성은 과연 우리를 온전한 삶으로 이끌고 있을까? 아니면 신자유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대체 소비재’에 불과한 것일까?
신간 『세속 영성, 그리스도교 영성』은 21세기 한국 사회에 불어닥친 ‘영성 광풍’의 이면을 날카롭게 해부하며, 세속 영성의 무차별적 확장 속에서 길을 잃은 그리스도교 영성의 참된 본질을 묵직하게 묻는 책이다.
무기력한 ‘앉아서 하는 신학’에 대한 뼈아픈 반성
저자 이충범 교수는 현대 교회의 침체 원인 중 하나로, 이론적 사변에만 머물며 시대의 차별과 폭력 앞에 무력했던 ‘앉아서 하는 신학’을 꼬집는다. 신학이 사회과학의 주변을 맴돌며 메마른 교리로 굳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내적 치유와 성장에 대한 갈망을 채우기 위해 교회가 아닌 ‘세속 영성’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스도교가 세속적 영성을 비난하는 데 전력하고 있는 동안 사람들과 후세대는 교회를 선택하지 않고 세속 영성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책은 미셸 푸코의 ‘자기배려’, 리처드 슈스터만의 ‘신체미학’ 등 방대한 현대 철학과 심리학을 경유하여 세속 영성의 지형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이를 통해 말뿐인 신학을 넘어, 지속적인 훈련과 ‘몸의 실천’을 통해 주체의 변용을 이루어내는 영성의 실천적 능력을 복원해야 함을 역설한다.
사적 위로를 넘어선 ‘사회적 변혁’으로서의 영성
오늘날 세속 영성은 철저히 개인화되어 종교적 사회 이상이나 공동체의 상호 책임을 소거해 버렸다. 그러나 저자는 기독교 역사 속 신비주의와 영성의 유산은 결코 사적인 도피처가 아니었음을 명확히 밝힌다.
“기실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역사를 반추해 보면 신비주의는 단순한 1인의 내적 체험에 머물렀던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변혁과 혁명의 역사였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단순히 일시적이고 극적인 황홀경(상태, state)을 좇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재창조하며 질적으로 성숙해 가는 훈련의 과정(단계, stage)이다. 저자는 이러한 영성의 역동성을 바탕으로 생태 위기, 페미니즘, 그리고 진정한 ‘사람다움’을 회복하는 교육학적 차원으로까지 영성의 지평을 확장한다.
오리무중의 시대, 다시 영성의 닻을 내리다
신학에 실천적 책임(제자도)을 불어넣어 ‘온전함’을 회복하려는 이 책의 시도는 무척 도발적이면서도 시의적절하다.
『세속 영성, 그리스도교 영성』은 극도로 물질화된 사회 속에서 내적 성장의 요구에 응답하지 못한 한국 교회를 향한 뼈아픈 성찰이자, 파편화된 현대인들에게 건네는 단단한 영적 처방전이다. 값싼 위로와 힐링이 범람하는 시대 속에서, 나를 바꾸고 세상을 변혁하는 그리스도교 영성만의 고유한 묵직함을 되찾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