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대규모 유권자 정보 탈취와 전자투표 시스템 해킹 가능성을 제기하며 2020년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을 다시 꺼내 들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약 넉 달 앞두고 선거제도 개편과 투표 자격 검증 강화를 촉구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오후 9시 백악관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고 “미국 선거 기반시설의 충격적인 취약성을 보여주는 핵심 정보 문건을 즉시 기밀 해제해 공개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조사 결과가 백악관 정부 투명성 태스크포스와 대통령 정보자문위원회 직원들에 의해 수집됐으며, 미국 정보기관 수장들의 협조를 받아 자신이 직접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관련 자료는 백악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공개는 선거에 대한 신뢰를 약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취약성을 직시하고 바로잡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 “중국, 미국 유권자 정보 2억2000만 건 확보”
트럼프 대통령은 조사 결과에 대해 “중국이 2020년 선거 기간을 포함해 수년에 걸쳐 역사상 최대 규모로 여겨지는 선거 데이터 침해를 실행했다”며 “미국 유권자 파일 2억2000만 건을 불법적으로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당 자료에 유권자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정당 선호도 등 민감한 정보가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이를 분석하고 활용하기 위한 별도 조직까지 구성했다는 주장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정보당국이 2020년 당시 18개 주에서 수천만 명의 유권자 정보가 중국에 의해 구매되거나 탈취·해킹된 사실을 파악하고도 이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중앙정보국(CIA)과 국가안보국(NSA)의 관련 보고서 수십 건이 대통령 일일 정보보고에서 제외됐으며, 일부 당국자가 중국의 선거 개입 정보를 의도적으로 축소했다는 것이다.
그는 “정보당국은 해당 사실을 알고도 비밀로 유지했다”며 “당시 대통령이었던 나를 비롯해 의회와 국민에게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 중국의 불법 투표용지 제작 의혹도 제기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수사국(FBI)이 2020년 확보한 원천정보에 중국이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조 바이든을 위한 불법 투표용지를 제작하려 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당 정보의 구체적인 출처나 중국이 실제로 불법 투표용지를 제작·유통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 같은 행위가 2020년 미국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자료도 연설에서 제시하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은 연설에 앞서 백악관이 공개를 검토한 중국 관련 정보에 실제 투표 결과가 조작됐다는 증거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일부 행정부 관계자들은 관련 정보가 중국의 개입 수준과 선거 결과에 미친 영향을 둘러싸고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에 공개된 문건은 중국이 미국 선거에 개입할 의도와 역량을 갖췄을 가능성, 미국 선거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득표수가 변경됐거나 전자투표기가 조작됐다는 직접적인 증거와는 구분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 전자투표 시스템에 대한 외국의 공격 가능성 경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전자투표기와 개표 시스템도 외국 세력의 공격에 취약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새롭게 공개한 정보기관 평가를 인용해 러시아와 중국, 이란, 북한을 비롯한 적대국과 비국가 단체가 미국 유권자 등록 데이터베이스와 선거 기반시설을 침해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관련 보고서는 미국 정부와 모든 투표 관련 기계가 공격에 극도로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이 감사 과정에서도 적발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전자 득표수를 조작하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CIA 정보도 거론했다.
다만 이 같은 내용은 외국 세력이 미국 선거 시스템을 공격할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에 해당한다. 2020년 대선 당시 실제 전자투표 결과가 변경됐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는 제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토안보부 조사 결과를 근거로 약 27만8000명의 비시민권자가 연방선거 유권자로 등록돼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비시민권자가 유권자 명부에 잘못 포함된 것과 이들이 실제 선거에서 투표한 것은 별개의 사안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 신분증·시민권 증명 의무화 법안 처리 촉구
한편 AP통신은 미국에서 비시민권자의 불법 투표 사례는 드물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유권자 자격 검증 과정에서 합법적인 유권자까지 명부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조사 결과를 근거로 투표할 때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과 시민권 증명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질병과 장애, 군 복무, 여행 등 불가피한 사유를 제외하고 우편투표를 제한하는 내용의 ‘세이브 아메리카 법안’ 처리도 의회에 촉구했다.
그는 “이 법안에 반대하는 유일한 이유는 부정행위를 원하기 때문”이라며 민주당을 비판했다. 이번 연설을 계기로 미국 선거제도와 투표 자격 검증 문제가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주요 쟁점으로 다시 부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패배 이후에도 광범위한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주장을 이어왔다. 다만 당시 여러 주에서 진행된 재검표와 선거 관련 소송에서는 대선 결과를 뒤집을 만한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부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