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의 왕으로 추대되었던 다윗이 2년만에 통일왕국 시대를 연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이는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 성취이자 하나님의 계획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체제가 구축된 축복이다.
정적들이 사라지고
다윗이 유다의 왕으로 추대되었을 때 열한 지파의 왕으로 추대되었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2년간 북왕국 이스라엘을 통치하다가 자신을 보좌하던 두 군지휘관 레갑과 바아나에 의해 피살당한다(7절). 두 지휘관이 암살 후 목을 베어 다윗 왕에게 갖다 바친 것, 하지만 다윗과는 무관한 일이다. 그러니 다윗은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최고의 정적을 제거한 셈이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사울과 요나단 때도 그랬다. 블레셋과의 전쟁 중에 그들이 죽은 것, 그것도 다윗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북왕국의 최고 실세 정치군인 아브넬도 마찬가지,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에 의해 피살당했지만 다윗과는 무관했던 것, 죄다 다윗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그런데 다윗은 이스보셋을 죽이고 그 목을 잘라온 레갑과 바아나를 처형한다(12절). 죽이고 손발 자르고 헤브론 못가에 매단다. 분노했던 것이다. 사울 왕과 요나단이 죽었을 때도 다윗은 슬퍼했고, 장례식을 치러주며 애도했었다. 그리고 사울 왕을 찔렀다던 아말렉 청년은 죽였고, 아브넬의 장례식도 정성껏 치러주었다. 정치적인 쇼였을까? 아니다. 이게 다윗의 인품이다.
다윗의 이런 태도가 온 이스라엘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다. 결국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는 다윗에게로 가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5:1)이라 한다. 원문에 1인칭 복수 대명사 ‘우리’(אֲנָחְנוּ)가 강조된다. 단결된 모습과 일치된 충성심을 나타낸 그들,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옹립한다(5:3). 양분되었던 이스라엘이 하나된 것, 통일왕국 시대를 열겠다고 억지 정책을 편 결과가 아니다. 어떤 법적 조치를 취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을 배제하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게 지리멸렬(支離滅裂)하던 이스라엘이 하나의 리더십으로 모아진 것이다.
그런데 정적들이 정리되는 과정에서 다윗은 정말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았을까? 다윗과 무관한 것처럼 정리된 것이 혹시 승자를 미화한 것은 아닐까? 합리적 의심 운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소개한다. 악인들의 술수와 음모로 정적들이 죽은 것도 하나님께서 그 일들을 통해 당신의 계획을 성취하고, 약속을 이루신 것으로 다룬다. 그렇다. 하나님은 정적들을 정리하고 다윗에게 통일왕국이라는 새 시대를 활짝 열어주신다.
시온을 빼앗고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5:7).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이는 자신이 왕이 된 만큼 중요한 사건이다. 예루살렘 성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로서 지정학적 요충지, 가나안 7족속 중 하나인 여부스 족속이 거하는 가나안 중심부에 위치한 천혜의 요새다. 여호수아 이후 수백 년 동안이나 망설여 왔던 일, 다윗에게는 통치 기반을 든든히 세우기 위한 필수적인 정치 과제였다. 그런데 드디어 예루살렘 점령했으니, 이건 왕국의 초석을 단단히 놓는 역사를 이룬 것이다.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성이었기에 다윗이 이곳을 치려고 할 때 그들은 조롱했다(6절). 하지만 다윗은 성을 탈취했다. 1867년에 기혼 샘에서 예루살렘 성 안으로 통해 있는 비밀 수로가 발견되었는데, 학자들 가운데는 그 길이 다윗의 정예부대가 공격한 통로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여하튼 예루살렘에서 약간 높은 구릉지인 시온 산에 다윗성이 세워졌고, 여기서 확장되어 성도(聖都) 예루살렘이 건설되었다. 7년 6개월을 헤브론에서 다스린 다윗은 이곳에서 33년간 다스린다. 12지파 중 어느 지파에도 속하지 않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강성대국(强盛大國)의 기초를 닦은 것, 예루살렘은 성전이 건축된 후에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도시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중심은 이제 시내 산에서 시온 산으로 옮겨진다. 온 천하보다도 더 크신 하나님이 유일하게 좌정하신 곳이다”(시48:2). 해발 800m밖에 되지 않는 낮은 산, 에베레스트 산(8,848m)의 1/10밖에 안 되고, 북쪽 헐몬 산(3,000m)과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가장 아름다운 산이다. 거기에 하나님이 거하시기 때문이고, 그들에게 시온이 이스라엘의 중심을 넘어 온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시온에 대한 찬양은 급기야 시온 난공불락 설로 이어졌다. 하나님이 선택하셨기에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신앙이다. 예루살렘이 불타고 멀리 포로로 끌려갔을 때 그들은 무엇보다 시온을 그리워했다. 급기야 19, 20세기에는 2천 년 동안 팔레스틴에서 쫓겨나 유랑하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자는 시오니즘(Zionism)을 일으켰고, 그 결과 이스라엘 나라가 섰다.
3천 년 도시 예루살렘의 이름에는 ‘평화의 터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도시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비운의 성이었다. 지난 3천 년간 20회 이상 주인이 바뀌었다. 성벽이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던 것만도 10번이다. 성경에서 시온을 지칭할 때 의인화하여 ‘딸 시온’ ‘처녀 시온’이라 부르는 것도 여자들의 비참한 운명을 떠오르게 한다.
지금도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성지로 항상 긴장감이 감도는 예루살렘, 한쪽에서는 기도 시간에 맞춰 코란 읽는 소리와 흰옷을 입은 군중들이 알라를 경배하고, 그 아래쪽 통곡의 벽에서는 유대인들이 머리를 벽에 대고 기도한다. 그리고 성당의 종소리가 퍼져나가며 십자가의 길을 따라 기독교인들이 행진한다. 서로 공존하고 다양성을 인정해야 평화를 이룰 수 있다. 가끔씩 전쟁이 일어나지만, 유대인이나 팔레스타인이 서로를 인정할 때 예루살렘의 평화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다.
옛 예루살렘의 모습은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8절)는 배제와 차별의 논리가 지배하는 모습이었지만, 예루살렘은 이사야의 예언대로 유대인만의 도시가 아니다(사2:2-3, 56:6-7). 많은 민족들과 이방인들과 저는 자들이 함께하는 열린 도시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새 예루살렘이다.
강성한 나라를 이루다
한낱 양치던 목동이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었다(5:2). 꿈이 이루어지고, 더 강성해졌다(10절). 중심이 시내 산에서 시온 산으로 바뀌듯 중심인물도 바뀐다. 모세에서 다윗으로 옮겨진 것, 모세가 나라의 비전과 질서를 제시했다면, 다윗은 그 비전을 성취한다. 다윗은 율법에 기초하여 가장 부강한 나라를 이루고, 가장 광대한 영토를 다스린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시려던 복을 성취하고, 이후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스라엘이 회복해야 할 모델이 된다. 이스라엘이 그렸던 메시아의 모습도 다윗이 모델이다.
하지만 다윗은 현실적인 왕, 두로왕 히람을 통해 왕궁을 비롯한 많은 건축물을 짓는다(11-12절). 광야와 토굴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일까? 다윗은 자신의 영예와 부귀가 이스라엘의 명예와 직결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왕들이 흔히 빠지는 착각에 빠진 거다. 그 결과 다윗은 이미 많은 아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서 더 많은 아내들을 정략적으로 둔다(13-16절). 많은 왕자들 간에 피비린내 나는 권력다툼이 벌어질 필연적 상황을 만들고 만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평생에 전쟁이 없는 날이 별로 없었다. 오죽하면 후계자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했을까? 솔로몬은 다른 이름이 ‘여디디야’(יְדִידְיָה), ‘주의 사랑을 받는 아이’, ‘평화’라는 뜻을 담았다. 17-25절은 블레셋과의 싸움 이야기다. 블레셋은 본래 미즈라임(מִצְרַיִם), 애굽의 후손들이다.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갓, 에그론 등 5대 도시를 중심으로 지중해 연안의 옥토를 차지하고 있었다. ‘블레셋’에서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블레셋은 사울 왕국을 끈질기게 침공하다가 사울 왕을 죽이고 그 머리를 베고 그 시신은 성벽에 못 박았던 강하고 잔인한 세력, 이제는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자기들의 ‘신들’까지 총동원해서 공격해 온다.
다윗은 하나님께 물으며 싸웠다(5:19). 하나님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는 말씀을 듣고 공격한다. 첫 전투는 기습공격,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다(5:20). 하나님이 블레셋 군대를 휩쓸어 버리신 거다. 두 번째 전투는 배후를 공격하는 형태였다. 하나님의 지시대로 후미로 기습했는데(23절), 결과는 대승이었다.
이 승리가 중요하다. 사울도 블레셋의 침공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 물었지만, 하나님은 전혀 대답하시지 않았었다(삼상28:6). 그런데 하나님이 대답하실 뿐만 아니라, 함께하는 사령관이 되셔서 승승장구하게 하셨다. 더 이상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적수가 되지 못하게 하신 것, 그들은 그저 몇몇 도시 국가 형태로 연명했을 뿐이다. 다윗이 팔레스틴 땅을 차지하는 승리자가 되면서 이스라엘은 왕정국가에서 신정국가로 부흥한다.
강성한 나라를 이룬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다. 예수님이 가져오시는 모든 영광과 승리를 보여준 것이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복과 평화를 가져오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사람들은 힘 있는 예수님을 원했지만 예수님은 섬김으로, 자기 부정으로, 낮아짐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평화를 주길 원하셨다. 이는 평화가 힘으로 밀어붙여서 누리는 게 아니며, 일방적인 주장으로 얻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기억하라. 사랑과 공존과 낮아짐! 이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의 길이다.
인천신기중앙교회 담임 이희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