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 총회장 김인수 목사) 통일선교협의회(회장 김원정 목사)가 15일 대전대흥침례교회에서 ‘열방을 향한 교회의 통일선교 사명’이라는 주제로 2026년 침례교회 통일선교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주제강연 강사로 김영식 목사(포타미션)가 나섰다. 그는 “초장기 탈북민 선교는 물질 위주의 선교방침이었다. 1995년과 1996년 북한 대홍수에 따라 한기총 등 교계단체들이 북한동포 돕기운동을 벌였다. 북한에 직접적인 인도적 지원과 더불어 탈북민의 보호에 집중했지만 개교회별로 탈북민의 교회 등록에 치중하면서 불필요한 경쟁 초래 등 문제가 생겼다. 문제의 원인은 탈북민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교회 재건의 핵심은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정확히 복음을 전하는 데 있다”고 했다.
또한 “이를 위해선 첫째, 탈북민 가운데 소수 지하교인들의 이야기와 간증을 먼처 들어야 한다. 둘째, 중국 NK 사역자들의 경험과 정보를 취합해 북한 지하교회 현황을 파악해야 한다. 셋째, 그루터기 성도들의 후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례들을 취합하고 연구해야 한다. 넷째, 북한교회 재건의 리더는 결국 북한 주민 성도이어야 한다. 남한교회는 헌금을 통한 자본과 그들의 인프라 구축 지원을 돕는 형태로 출발해야 한다. 결국 남한에서 훈련된 탈북민 목회자들 및 탈북민과 교제한 남한 성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탈북민 출신 뉴코리아교회 김은진 사모가 간증했다. 김 사모는 “내 친가와 외가 모두 기독교 집안이다. 친가는 함경북도 선봉에서, 외가는 평양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면서추방됐다. 아버지와 어머지가 만나 결혼하고 내가 태어나게 됐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집에서는 남몰래 예배가 드려져왔다. 할머니가 예배를 인도하셨다. 외할아버지나 다른 할아버지가 말씀을 나누기도 하셨다. 저는 할머니를 통해 찬송가를 많이 배웠다”고 했다.
이어 “1990년대 중반 집에서 드리던 예배가 발각되기 전까지, 할머니로부터 말씀과 찬송가를 배우며 자랐다. 발각된 아버지와 할머니는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는 등 모진 핍박을 받았다. 저는 가까스로 조선족 목회자를 통해 탈북해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뉴코리아교회 사모로 사역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증조부는 함경북도 선봉군 사회리에서 사회침례교회를 담임하셨던 김대남 목사라는 사실을 한국에 와서야 알게 됐다. 증조부는 1951년 선봉군 서포항 바닷가에서 공산당원에 협박에 밀려 찬송가를 부르며 바닷가에 수장됐다”고 했다.
또한 “북한 땅의 문이 열렸을 때 우리 집을 찾아서 십자가를 세우고 싶다. 그것이 우리 교회의 뿌리를 찾는 일이기 때문이다. 증조부의 교회터를 다시 찾고 싶다. 제가 증조부, 할머니, 아버지의 신앙 유산을 이어받았던 것처럼, 사회침례교회는 1889년 조선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들어온 캐나다 선교사 말콤 펜윅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위로는 펜윅의 조선 선교를 다짐하게 했던 허드슨 테일러와 D.L 무디에게로 올라간다. 그리고 이들의 신앙은 종교개혁자들에게로 올라가고, 그 이전 교부들, 그리고 초대교회 시대 사도들에게로 거슬러 간다. 그리고 그 이상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대물임이다”라고 했다.
이 밖에 김성우 선교사(한선미션)가 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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