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에서 계시로

[신간] 모든 이야기의 시작
도서 「모든 이야기의 시작」

우주와 인류의 기원을 다루는 창세기 1~11장은 기독교 신학에서 ‘원(原) 역사’라 불린다. 현대인들에게 이 본문은 흔히 ‘창조냐 진화냐’를 논하는 과학적 논쟁거리로 소비되거나, 까마득한 옛날의 신화적 이야기로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신간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이러한 현대적 렌즈를 벗어던지고, 이 말씀이 처음 선포되었던 고대 근동 세계의 ‘인지환경(당시 공유된 지적·문화적 세계관)’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그리고 창세기가 당시 사회를 지배하던 가치체계와 치열하게 논쟁했던 ‘위대한 계시’이자, 차별과 폭력에 맞선 ‘혁명적 문서’였음을 탁월하게 밝혀낸다.

소수의 특권을 정당화하던 신화, 그 껍질을 깬 ‘하나님의 형상’

고대 근동의 신화 속에서 ‘신의 아들’이나 ‘신의 형상’이라는 칭호는 오직 왕과 귀족 같은 소수 지배계급의 전유물이었다. 그들은 신화를 이데올로기로 악용하여 다수를 향한 억압과 착취를 합리화했다.

그러나 창세기의 선포는 이와 정반대였다. 성경은 지배자들의 신화를 철저히 깨부수며, “권력이나 신분, 심지어 성별과 무관하게 모든 인간이 존엄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라고 선언했다.

"고대 근동 세계는 여성에게 매우 억압적이었지만, 성경은 일관되게 남녀의 차별 없이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 남성은 그 자체로 미완성입니다. 여성이 함께함으로써 남성은 비로소 한 인간으로 완성됩니다. ‘동등한 배필’이 보다 정확한 의미입니다."

여성을 종속적인 존재로 여기던 시대에 ‘돕는 배필’(내게 없어서는 안 될 온전한 짝)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차별 없는 창조 질서를 선포한 것은 고대 사회에 던져진 엄청난 파격이자 복음이었다.

스스로에게 ‘진노의 활(무지개)’을 겨누신 하나님

저자는 창세기의 굵직한 사건들—타락과 에덴 추방, 가인과 아벨, 대홍수 심판—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속마음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특히 대홍수 이후 구름 사이에 걸어두신 ‘무지개’에 대한 해석은 압권이다. 무지개로 번역된 히브리어 ‘케세트’는 본래 전쟁 무기인 ‘활’을 뜻한다. 저자는 활의 둥근 모양이 땅(인간)이 아닌 하늘(하나님)을 향해 있음을 지목하며, 인간의 끊임없는 죄악에도 불구하고 진노의 화살을 거두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에게 활을 겨누신 하나님의 자기희생을 읽어낸다. 이는 훗날 십자가에서 모든 죄악을 홀로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원형(原形)이라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라멕’과 ‘네피림’들

책은 고대 근동의 역사적 배경을 짚어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메시지를 치열한 오늘날의 현실로 끌어온다. 이웃을 해치고 폭력으로 군림하는 가인과 라멕의 후예들, 강자의 군림과 약자에 대한 착취를 당연시하는 ‘네피림’들이 오늘날 교회 안팎에도 무수히 존재한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우리 일상을 평화로운 에덴 정원처럼 가꾸고, 모든 생명을 존중하며 정의와 상생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우주적 성전의 청지기인 우리의 진짜 ‘부르심’이라고 역설한다.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창세기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처음 접하는 입문자부터, 고대 근동의 통찰을 성경 해석과 삶에 깊이 있게 녹여내고 싶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더없이 친절하고 명쾌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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