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6개월 만에 3%대로 올라섰다. 중동전쟁 여파로 국제유가와 석유류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여행 관련 서비스와 개인서비스 가격이 물가 상승을 이끈 것으로 분석됐다.
3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1%를 기록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를 넘어선 것은 2024년 3월 이후 처음이었다. 정부는 이번 물가 상승이 석유류와 일부 서비스 품목을 중심으로 나타난 현상이며, 아직 중동전쟁에 따른 전반적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한 단계는 아니라고 진단했다.
5월 물가 상승은 국제유가 상승에 영향을 받은 개인서비스 부문이 주도했다. 개인서비스의 물가 기여도는 1.3%포인트로 전체 물가 상승분의 41.9%를 차지했다. 이는 전월 1.1%포인트보다 확대된 수치로, 서비스 가격 상승이 전체 물가 흐름에 미친 영향이 커졌음을 보여줬다.
재정경제부는 석유류 가격 급등과 이에 따른 여행 관련 서비스 가격 상승이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끌어올린 주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유류할증료 인상 여파로 국제항공료는 33.5%, 해외단체여행비는 26.3%, 승용차임차료는 25.7%, 호텔숙박료는 9.3% 각각 상승했다. 가계의 구입 빈도가 높은 144개 품목을 대상으로 산출하는 생활물가지수도 전년 동월 대비 3.3% 올랐다.
◈ 석유류 가격 24.2% 상승… 물가 상승 압력 확대
석유류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24.2% 상승했다. 석유류의 물가 기여도는 0.9%포인트로 전월 0.8%포인트보다 커졌다. 국제유가 상승이 휘발유와 경유 등 에너지 가격에 반영되면서 가계가 체감하는 물가 부담도 확대된 것으로 풀이됐다.
정부는 석유류 가격 상승이 항공료와 여행비 등 개인서비스 가격을 밀어올린 영향은 크지만, 전쟁 여파가 모든 품목으로 광범위하게 번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농산물은 전년 동월 대비 0.8% 하락했고, 가공식품은 0.8% 상승에 그치는 등 일부 먹거리 품목은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는 것이다.
재정경제부는 석유제품 최고가격제와 유류세 인하 조치가 물가 상승률을 낮추는 데 일정한 효과를 냈다고 분석했다. 정부 추정에 따르면 이들 조치가 없었다면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7% 수준까지 높아졌을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정책 효과로 5월 물가 상승률이 0.6%포인트 낮아졌다는 설명이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최고가격제나 유류세 인하는 물가에 상당히 도움이 되고 있다”며 “이런 정책이 없었다면 다른 품목으로의 파급도 더 빨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3월에는 0.6%포인트, 4월에는 1.2%포인트, 5월에는 0.6%포인트가량 물가 상승 압력을 낮춘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 먹거리 물가 관리 강화… 가공식품·외식 전이 가능성 주시
정부는 현재의 물가 상승이 석유류와 여행 관련 서비스 등 특정 품목의 영향이 큰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국제유가 상승이 시차를 두고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에 반영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판단했다.
가공식품의 경우 최근 업체들의 원재료 가격 인하와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제재 등으로 상승세가 둔화된 상태다. 그러나 에너지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생산비와 물류비 부담이 다시 커질 수 있어 향후 물가 흐름을 안심하기는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농축수산물과 먹거리 물가 안정을 위한 추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중동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충격이 생활물가 전반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품목별 가격 동향과 유통비용, 수급 상황을 점검하겠다는 방침이다.
재정경제부는 특히 민생과 직결되는 먹거리 물가를 중심으로 안정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석유류 가격이 서비스 가격을 통해 이미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주고 있는 만큼, 하반기에는 가공식품과 외식 등 생활 밀접 품목으로의 전이 여부가 주요 변수로 꼽힌다.
◈ 하반기 물가 정점 가능성… 기준금리 인상 여부도 주목
중동전쟁이 장기화돼 전반적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경우 하반기 물가 상방 압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생산비와 물류비, 서비스 가격에 순차적으로 반영될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더 높은 수준을 나타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정부의 정책 지원 효과 등을 고려할 때 하반기 중 물가가 정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향후 적절한 시점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도 열어둔 상태다.
정부가 기대하는 명목성장률 10% 수준의 성장세가 현실화할 경우 물가에는 또 다른 압력이 생길 수 있다. 석유류를 중심으로 한 공급 측 물가 상승에 더해 경기 회복에 따른 소비 수요가 확대되면 물가 안정이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5월 소비자심리지수는 반도체 중심의 수출 호조와 증시 활황 등에 힘입어 3개월 만에 상승 전환했다. 소비 심리가 회복되는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 충격이 이어질 경우 하반기 물가 흐름과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 여부가 함께 주목될 전망이다.
재정경제부는 이달 말 발표할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서 올해와 내년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수정해 제시할 예정이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현재 물가 상승은 특정 품목의 영향이 큰 상황으로, 다양한 품목으로 확산되는지 계속 점검하고 있다”며 “민생과 직결되는 먹거리 물가를 중심으로 안정 관리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