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갇힌 신앙: 진보적 기독교와 기독교 민족주의가 놓치고 있는 것

피터 라이너스. ©eauk.org

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피터 라이너스의 기고글인 '기독교 민족주의와 진보적 기독교: 서로 다른 듯 같은 두 극단'(Christian nationalism and progressive Christianity two poles on a continuum)을 5월 28일(현지시각) 게재했다.

피터 라이너스는 영국복음주의연맹(Evangelical Alliance)의 대외협력(옹호) 팀을 총괄하며, 영국을 구성하는 네 지역 전반에서 연맹의 사역을 이끌고 있다. 그는 공적 영역에서 신앙이 갖는 역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조 프로스트와 함께 ‘빙 휴먼(Being Human)’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앙과 정치가 점점 더 얽히고설키는 현실에 불안해하고 있다. 어떤 이들의 눈에 진보적 기독교(Progressive Christianity)는 '포용성'이라는 미명 하에 성경의 가르침을 껍데기만 남기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기독교 민족주의(Christian nationalism)는 신앙을 문화적 혹은 국가적 정체성으로 굳어지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이 둘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기독교가 복음 그 자체보다 현대 정치에 의해 더 많이 형성될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는 문제다.

진보적 기독교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칭찬할 만한 동기에서 출발했다. 역사적 불의에 도전하고, 가부장제와 식민주의의 유산을 해결하며, 평등과 소외된 자들에 대한 돌봄을 강조하고자 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회개와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한 것은 지극히 옳은 일이었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 진보적 기독교는 종종 단순한 비판의 선을 훌쩍 넘어섰다. 포용성이라는 이름으로 낙태와 동성 결혼, 그리고 상당한 수준의 성적 자율성을 긍정하기에 이르렀다. 성경의 권위를 대놓고 거부하는 일은 드물지만, 개인의 경험과 현대적 도덕 직관이 그 자리를 꾸준히 대체해 나갔다. 결국 성경은 주류 문화의 분위기와 거의 충돌하지 않을 때까지 끊임없이 재해석된다.

기독교 민족주의는 이와는 다른 우려에서 출발한다. 도덕적 혼란, 문화적 파편화, 그리고 공유된 가치관의 붕괴에 반발한다. 법과 질서, 국경, 그리고 서구 사회가 물려받은 기독교적 유산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이러한 본능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마땅히 공동선과 공공 생활의 도덕적 기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는 이내 혼란으로 빠질 수 있다. 기독교 민족주의는 종종 기독교인에 대한 특혜 요구, 소위 '기독교적이었던 과거'에 대한 향수, 그리고 때로는 종교적 언어로 얄팍하게 위장된 민족적·문화적 우월주의로 흘러가곤 한다. 십자가는 국기와 얽히고, 하나님 나라는 특정 국가의 흥망성쇠와 혼동되고 만다.

이 지점에 이르면, 양측의 유사성을 더 이상 무시하기 어려워진다. 두 운동 모두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를 실천하고 있다. 한쪽은 무지개 깃발을 흔들고, 다른 한쪽은 국기를 흔든다. 한쪽은 소외된 성적 정체성을 중심에 두고, 다른 한쪽은 국가적 혹은 민족적 정체성을 격상시킨다. 두 경우 모두 신앙은 회개와 제자도로의 부르심이 아니라, 단순한 소속을 나타내는 배지로 전락할 위험에 처한다.

두 진영 모두 진리가 자신들의 서사(narrative)를 위협할 때 그 진리를 외면하거나 타협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진보적 기독교는 문화적 압력 아래에서 도덕적, 생물학적 명확성을 유지하는 데 한계를 보인다. 소위 "살아있는 경험"과 개인의 진정성에 대한 호소가 실증적 현실이나 기독교적 가르침보다 더 우위에 서게 되며, 특히 성(sex)과 신체, 태아에 관한 문제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기독교 민족주의 역시 비슷한 왜곡에 빠질 수 있다. 국가의 기독교적 특성은 종종 과장되고, 식민 지배의 역사는 선택적으로만 기억되며, 대중의 지지에 대한 주장은 부풀려진다. 이러한 움직임의 기저에는 소속감에 대한 두려움 가득한 접근이 깔려 있으며, "누가 진정으로 우리에게 속해 있는가"라는 질문에 방어적이고 배타적인 방식으로 답하게 된다.

더 깊은 문제는 신학적인 데 있다. 두 운동 모두 문화와 정치가 앞장서기 시작하고, 성경은 이미 도달한 결론을 뒷받침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진보적 기독교는 세속적인 도덕적 본능이 성경을 읽는 방식을 형성하도록 내버려 둔다. 기독교 민족주의는 문화적 두려움과 부족주의적 충성심이 성경 해석을 좌우하도록 방치한다.

방식은 다르지만, 두 진영 모두 결국 복음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진보적 기독교는 복음에서 도덕적 도전을 비워내고, 회개 없는 긍정만을 제공한다. 기독교 민족주의는 복음의 범위를 좁혀, 그 복된 소식을 특정 민족이나 장소, 혹은 과거에 얽매어 버린다.

복음은 이 두 가지 왜곡을 모두 거부한다. 복음은 도덕적 명확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이웃(이민자, 나그네, 취약한 자들을 포함하여)을 사랑하라고 우리를 부른다. 국가와 문화의 선함을 인정하되, 그것들을 우상화하지 않는다. 정체성 정치가 아닌 '십자가'를 통해 진정한 소속감을 제공하며, 바로 그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족속과 방언으로부터 하나의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신다.

교회에 닥친 진짜 위험은 어느 한쪽이 이 문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전쟁을 치르느라 '우리가 누구인지'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기독교적 사고가 복음보다 정파적 정치에 의해 더 많이 형성될 때, 거울 속에 일그러진 기독교의 모습(그것이 진보적이든 민족주의적이든)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해도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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