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복음 전도가 ‘인권 침해’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No, evangelism isn’t a human rights violation)를 5월 25일(현지시각)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2025년 가을, J.D. 밴스(J.D. Vance) 부통령이 자신의 아내 우샤(Usha)가 언젠가 힌두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를 바란다고 말했을 때, 즉각적인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밴스는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아내도 제가 교회에서 감동받았던 그 무언가에 마음이 움직이길 바라느냐고요? 네, 솔직히 그러기를 바랍니다. 저는 기독교의 복음을 믿고, 결국 제 아내도 저와 같은 시선으로 그것을 보게 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그는 참으로 무례한 인간이었다. 비판가들은 즉시 그를 향해 무례하고 편협하며 심지어 '영적 제국주의자'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그 비난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비영리 단체 인디카(INDICA, 인도 지식 체계 연구소)의 회장이자 이사인 아바탄스 쿠마르(Avatans Kumar)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오피니언 글에서 밴스를 다시 비판하며,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종교에 머물 권리가 있으며, 개종을 바라는 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쿠마르는 이어서 이렇게 적었다.
"인권 담론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종교를 바꿀 권리 자체는 본질적으로 절대적이지만, 타인의 종교를 바꾸려고 시도할 권리는 다른 사람의 종교적 자유를 간섭하고 침해하지 않고서는 결코 절대적일 수 없다."
어느 정도는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 정치적 목적이나 물리적 힘에 의한 조작, 강압, 혹은 거짓된 개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위협을 통해 진정한 믿음을 기계적으로 찍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 당시 일어났던 비극들과는 반대로, 기독교 자체는 '강요된 신앙'을 단호히 거부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제자들에게 누군가의 목에 칼을 겨누고 신앙을 맹세하게 하라고 명령하신 적이 없다.
대신 예수님은 이렇게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그리고 여기에 현대 문화가 필사적으로 외면하고 싶어 하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기독교는 그 본질상 '전도 지향적(evangelistic)'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가 오만해서가 아니다. 갈등을 즐겨서도 아니다. 우리가 두려우면서도 동시에 영광스러운 어떤 사실, 즉 '영원(eternity)'이 실재함을 믿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실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고(실제로 그러하셨다), 오직 그분을 통한 구원이 참으로 존재하며(실제로 존재한다), 하나님과의 영원한 단절이 실재하는 끔찍한 비극이라면, 기독교인이 아닌 이들을 잘못된 길에 그대로 방치하는 우리의 침묵은 결코 '배려'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랑의 정반대인 '무관심'일 뿐이다.
무신론자인 펜 질렛(Penn Jillette)은 이 점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그는 언젠가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저는 전도하지 않는 사람을 존경하지 않는다고 항상 말해왔습니다. 전혀 존경하지 않아요. 만약 당신이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믿고, 사람들이 지옥에 갈 수도 있고 영생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이건 사회적으로 어색해질 수 있으니까 굳이 말할 필요가 없어'라고 여긴다면요? 혹은 개종을 권유해서는 안 된다며 '나를 그냥 내버려 둬. 종교는 너 혼자만 믿어'라고 말하는 무신론자들이 있다면요? 대체 누군가를 얼마나 미워해야 전도를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누군가를 얼마나 미워해야 영원한 생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굳게 믿으면서도 그들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제 말은, 만약 거대한 트럭이 당신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데 당신은 그것을 믿지 않는 상황이라면, 어느 순간 저는 당신을 덮쳐서라도 구해낼 거라는 겁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그 어떤 사회적 체면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니까요."
질렛의 이 발언은 현대 종교의 그럴듯한 체면 치레를 정면으로 찌른다. 현대 문화는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독교는 비록 그것이 불편하고 당장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지라도 진리를 말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고 가르친다. 바울이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갈 4:16)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원수를 만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우리는 바울이 묘사한 대로 이 진리를 정중하고 친절하게 전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20). 우리는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약 5:20)을 알며, "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잠 11:30)는 말씀을 굳게 믿는다.
여기에는 사람들이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무시하지 않도록 반드시 경고해야 한다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의 측면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선지자 에스겔에게 주신 말씀과 같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겔 3:18).
기독교는 결코 교회 담장 안에 얌전히 숨겨져 있어야 할 '사유화된 영성'이었던 적이 없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투옥과 위협, 처형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사도행전 5장에서 당국은 사도들에게 예수에 대해 말하는 것을 완전히 멈추라고 명령했다. 그들의 대답은 단호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
이것이 바로 현대인들이 전도를 불편해하는 진짜 이유다. 기독교는 단순한 개인적 취향을 표명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진리'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은 나에게 좋은 분이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온 세상의 주님이시다"라고 선포한다.
쿠마르는 그의 기고문에서 "전도의 핵심에는 배타성이 있다"며 이 점을 불평한다. 그의 말이 맞다. 그리고 보편적 진리에 대한 주장은 현대인들에게 그 어떤 것보다도 불쾌하게 다가간다.
오늘날 최고의 도덕적 계명은 거룩함이나 진리, 심지어 사랑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불간섭(non-interference)'이다. 침묵을 지켜라. 신앙은 개인적인 영역에 머물게 하라. 다른 사람이 틀릴 수도 있다는 암시조차 주지 마라. 영적인 편안함을 방해하지 마라. 이것이 오늘날의 시대정신이다.
기독교계에는 19세기 영국의 악명 높은 범죄자 찰스 피스(Charles Peace)가 처형장으로 끌려갈 때의 일화가 자주 회자된다. 한 목사가 그에게 지옥과 심판에 대해 말하자, 피스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선생님, 만약 당신과 하나님의 교회가 믿는다는 그 사실을 내가 '진짜로' 믿었다면... 나는 깨진 유리 조각 위를 기어서 영국 끝까지 가서라도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경고했을 겁니다."
만약 이 이야기가 당신을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안주하고 있는 모순을 찔렀기 때문일 것이다. 즉, 영원을 믿는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영원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는 우리의 민낯 말이다. 그러나 초대 교회가 확장된 것은 기독교인들이 사회적으로 세련되고 매끄러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이 아님을 기억하라. 교회가 퍼져나간 이유는 그들이 깊이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음을, 심판이 실재함을, 하나님의 자비가 활짝 열려 있음을, 그리고 침묵하는 것은 사랑이 없음을 그들은 확신했다.
우리는 종종 그리스도께 불순종하는 것보다 세상으로부터 편협하다는 낙인이 찍히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예수님의 가장 명확한 지상명령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동안, 우리는 자신의 평판과 안락함, 사회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따라서 당신은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결국,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가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을 믿는다면, 전도는 쿠마르가 주장하는 것처럼 인권 침해가 아니다. 그것은 긍휼과 자비의 가장 위대한 행위이며, 당신이 복음을 전하는 그 사람은 영원한 시간 속에서 당신에게 깊이 감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