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바트 어만이 받아들이고 싶은 것은 ‘예수의 윤리’이지 ‘예수의 하나님’은 아니다"(Bart Ehrman wants Jesus’ morality without Jesus’ God)를 5월 18일(현지시각)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바트 어만(Bart Ehrman)은 기독교 신앙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으로 평생의 커리어를 쌓아왔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채플힐의 종교학 명예교수이자 신약성경 및 초기 교회사에 관한 다작을 남긴 그는, 저명한 보수 신학자 브루스 메츠거(Bruce Metzger) 아래서 수학했으며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목회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기독교 신앙을 버렸고, 이제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자 구원자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리스도를 그저 그런 평범한 종교 교사 중 한 명으로 치부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의 최근 저서 《낯선 자를 사랑하라(Love Thy Stranger)》는 오히려 그 정반대의 주장을 펼친다. 어만은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이 외부인에게 거의 무관심했던 잔인한 고대 세계에서, 예수님이 '지극히 작은 자들'을 돌보라는 급진적이고 새로운 도덕적 비전을 제시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낯선 자를 사랑하고 돕도록 가르침으로써 서구 문화의 도덕적 양심을 근본적으로 재편했다.
이 책에 관한 그의 블로그 글에서 어만은 이렇게 말한다: "곤경에 처한 낯선 사람을 향한 이러한 도덕적 의무감은 고대 인류의 DNA에 새겨져 있지도 않았고, 우리 서구 문화 유산의 뿌리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먼 곳에 있는 생면부지의 낯선 이를 도와야 한다는 의식은 애초에 도덕적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다. 나의 주장은, 예수의 죽음 이후 기독교가 고대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윤리적 의무에 대한 이해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고, 이것이 서구의 도덕적 양심에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만의 이러한 주장은 결국 기독교인들이 오랫동안 고수해 온 한 가지 사실, 즉 '예수님이 진정으로 세상을 바꾸셨다'는 것을 확증하는 셈이 된다. 하지만 어만의 주장이 내포하고 있는 명백한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약 도덕이 단지 사회적 발전을 통해 진화한 것이라면, 도덕적 가치는 '발견'된 것이 아니라 '발명'된 것이 된다. 이 틀 안에서라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존경받을 만할지는 몰라도, 객관적인 진리는 될 수 없다. 그것들은 그저 인류가 오랜 세월 끝에 안착하게 된 선호도, 즉 영원한 도덕적 실재라기보다는 세련된 '문화적 취향'에 불과하게 된다.
우리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객관적 율법
성경은 이와 전혀 다른 그림을 제시한다. 성경은 우리가 도덕을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며, 도덕은 객관적이고 우리 존재에 내재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시편 19:7)라고 말씀하며, 우리가 이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고 선언한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로마서 2:14-15).
어만은 이를 거부한다. 선악의 객관적 기준이 되시는 선하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개념 자체를 폐기했기 때문이다.
최근 기독교 변증가 션 맥도웰(Sean McDowell)과 이 주제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어만은 "나는 어떤 종류의 보편적 객관성에도 접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많은 회의론자들이 그러하듯, 우리의 윤리적 행동을 안내할 객관적인 도덕적 선악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맥도웰은 그에게 단도직입적인 윤리적 예시를 들며 반문했다. 오락을 위해 어린아이를 고문하는 것은 어떻냐고 말이다. 맥도웰은 그것이 "보편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잘못된 일임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어만의 대답은 이러했다. "아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만은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 고대 세계에서는 같은 인간임에도 인신공양, 특히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관습을 흔히 행했습니다. 그 과정은 몹시 고통스러웠죠.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그들이 도덕의 객관적 진리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혹은 우리가 모두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졌다고 믿었던 그 도덕적 진리가 사실 그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발언에서 어만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행하는 바(존재, is)'와 마땅히 '행해야 할 바(당위, ought)'를 동일시하는, 다른 많은 이들이 저지르는 실수를 똑같이 범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객관적 도덕성을 부인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객관적 도덕성을 버리고 나면, 남는 것은 오직 '개인의 의견'뿐이기 때문이다.
그의 입장은 한 기독교 변증가가 회의론자와 대립하며 던졌던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만약 내가 당신 눈앞에서 아기를 산채로 토막 낸다면, 당신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잘못된 일이라고 말하겠습니까?" 회의론자는 발을 굴리며 머뭇거리다 이렇게 인정했다. "내 마음에 들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끔찍하게 들리겠지만, 그 사람은 단지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가 남긴 말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을 뿐이다. "당신에게는 당신의 길이 있고, 나에게는 나의 길이 있다. 올바른 길, 정확한 길, 그리고 유일한 길에 관하여 말하자면,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맥도웰은 인터뷰에서 이 점을 파고들며, 예수님이 가져온 가르침이 객관적인 진리인지 물었다. "제 질문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당신이 이것을 도덕적 변혁이라고 부를 때, 이것은 그저 시대에 따라 옷차림의 유행이 바뀌듯 수평적 차원에서의 변화를 뜻합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가져오신 객관적으로 선한 변혁, 즉 우리가 마땅히 예수님이 사셨던 방식대로 살고, 병원이나 고아원, 구빈원 같은 것들을 지원'해야만 하는' 그런 변화입니까?"
이에 어만은 이렇게 답했다. "내 의견으로는 어떤 것들은 객관적으로 선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병원이 있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고아원이 있는 것도 좋은 일이죠. 재난 구호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나는 이것들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내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내 개인적인 의견이기 때문에, 이것이 객관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어만은 마지막에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내 의견으로는 어떤 것들은 객관적으로 선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말하건대, 하나님이 없다면 도덕의 영역에서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개인의 의견뿐이다.
어만의 이러한 발언들이 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도덕의 방정식에서 하나님을 제거하고 나면 남는 것은 원칙의 탈을 쓴 '개인적 선호'뿐이라는 사실이다. "선", "악", "정의", "인권" 같은 단어들은 모든 사람을 구속하는 진리가 아니라 단순한 취향의 표현으로 전락해 버린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어떤 것들이 단순히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그분의 도덕법을 새겨 놓으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율법을 주신 입법자를 인정하든 안 하든, 우리의 양심은 매일 이를 증언하고 있다.
동시에 양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간은 도덕적 진리를 억압하고, 왜곡하며, 합리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 안에 그분의 율법을 새겨 놓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말씀(성경)을 통해 이를 명확히 계시하셨다. 성경은 변화하는 문화적 합의나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변함없으신 하나님 그분의 성품에 뿌리를 둔, 인류에게 절실히 필요한 '객관적 기준'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필자는 어만이 그리스도를 재조명하고, 예수님이 다른 종교나 그들의 교사들과 뚜렷이 구별됨을 인정해 준 점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아이작 뉴턴이 중력을 발명한 것이 아닌 것처럼, 예수님 역시 도덕을 '발명'하신 것이 아니다. 주님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성품에 기초하고 있는 도덕적 진리를 '계시'하셨을 뿐이다. 그리고 그 진리들은 거룩하고 완전하신 창조주로부터 온 것이기에, 세상이 그것에 환호하든, 무시하든, 혹은 철저히 부인하든 상관없이 영원한 진리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