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가 인공지능(AI) 기술 확산에 대응하기 위한 윤리 지침 마련에 나섰다. 신앙과 윤리, 교육, 사목 현장 전반에 AI가 미치는 영향이 커지는 가운데, 교회 차원의 공동 대응과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최근 열린 상임위원회에서 AI 관련 전문가들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주교회의는 TF를 통해 AI 기술이 교회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고, 한국 천주교회 차원의 AI 활용 지침을 마련할 계획이다.
주교회의는 TF 구성 배경에 대해 “신앙, 윤리, 교육 등 교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AI 기술에 한국 교회가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TF는 다음 달 첫 회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간다. 책임은 주교회의 홍보국장이자 사회홍보위원회 총무인 임민균 신부가 맡는다.
주교회의는 교황청의 관련 자료와 해외 교회의 논의, 국내 AI 제도 환경 등을 함께 검토해 한국 실정에 맞는 지침을 올해 안에 발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TF 논의를 바탕으로 AI기본법과 관련한 한국 천주교회의 공식 입장도 정리할 방침이다.
교황청, AI 위원회 설치… “인간 존엄성 수호” 강조
한국 천주교회의 AI 대응 움직임은 교황청의 최근 행보와도 맞닿아 있다.
교황청은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통합적 대응을 조율하기 위해 교황청 내에 ‘AI 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AI 기술의 급속한 확산과 그것이 인류에 미치는 영향, 특히 인간 존엄성 문제를 고려해 위원회 설치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청의 AI 위원회는 앞으로 AI 기술 발전에 대한 교회의 공식 대응을 조율하는 기구로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AI 개발과 활용 과정에서 윤리적 접근, 인간 책임성, 사회적 영향 등을 핵심 의제로 다룰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결정은 레오 14세 교황의 첫 회칙 발표를 앞두고 이뤄졌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회칙은 교황이 전 세계 주교와 신자들에게 보내는 최고 권위의 공식 사목 교서로, 교회의 도덕적·사회적 지침을 담는다.
교황은 이미 회칙에 서명했으며, 해당 문서는 수주 내 공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회칙에는 노동과 정의, 평화 등 가톨릭 사회교리의 틀 안에서 AI 문제가 깊이 있게 다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AI 확산 속 교회의 윤리적 책임 부각
레오 14세 교황은 그동안 AI 문제에 대해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우려와 책임 있는 대응을 강조해 왔다.
교황은 선출 직후 추기경단과 만난 자리에서 가톨릭교회가 인간 존엄성과 정의, 노동에 대한 AI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교리라는 자산을 세계에 제시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또 AI의 긍정적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기술이 이기적인 이익을 위해 오용되거나 갈등과 공격성을 부추기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AI가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교황은 미래 세대가 성숙과 책임을 향해 성장하는 과정에서 AI가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AI와 첨단 무기 기술에 대한 과도한 투자가 세계를 위험한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하며, AI가 군사·민간 분야에서 어떻게 개발되고 사용되는지에 대한 감시가 강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AI가 인간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흐리게 하거나 분쟁의 비극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활용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 교회, 신앙·교육·사회 영역 아우르는 지침 준비
한국 천주교회가 마련할 AI 활용 지침은 단순한 기술 사용 안내를 넘어 신앙과 교육, 사목, 사회적 책임을 함께 다루는 방향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AI는 이미 글쓰기와 교육, 상담, 행정, 미디어 제작 등 다양한 영역에서 빠르게 활용되고 있다. 교회 역시 사목 자료 제작과 신자 교육, 홍보, 행정 업무 등에서 AI 활용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AI가 제공하는 정보의 신뢰성, 개인정보 보호, 저작권 문제, 인간의 존엄성과 관계성 약화, 사목적 책임 소재 등은 교회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주교회의가 전문가 TF를 구성한 것은 이러한 변화에 교회가 수동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신앙과 윤리의 관점에서 기준을 세우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특히 교황청의 AI 위원회 설치와 맞물려 한국 천주교회도 세계 교회 흐름 속에서 AI 윤리 논의를 구체화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