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 토라를 받기에 가장 완벽한 곳: 유대적 관점으로 읽는 '민수기'의 은혜

아이린 랭카스터 작가. ©thetimes.com

영국 크리스천투데이(CT)는 아이린 랭카스터 작가의 기고글인 '주님은 왜 모세를 광야에서 부르셨을까'(Why did the Lord speak to Moses in the desert?)를 5월 15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히브리어 성경에서 민수기의 본래 이름은 '바미드바르(BaMidbar)', 즉 '광야에서'이다. 민수기 1장 1절 역시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라는 문장으로 문을 연다.

그렇다면 왜 하필 광야가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기에 가장 좋은 장소였을까? 유대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광야는 주인이 없고 소유물이 존재하지 않는 텅 빈 곳이기 때문이다. 광야가 그러하듯, 하나님의 말씀인 '토라(Torah)' 역시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따라서 토라는 어느 특정인의 전유물이 될 수 없으며, 인간의 헛된 소유욕을 부추기지도 않는다.

토라가 광야에서 주어진 또 다른 이유는 그곳이 물질적 소유에 얽매이지 않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짐이 가벼워지고 물질에 주의를 빼앗길 일이 적어지면, 사람은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온전히 토라의 말씀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유대 전통에서 이 책은 주로 칠칠절(Shavuot, 오순절) 직전에 낭독된다. 칠칠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이 광야에 위치한 시내산에서 토라를 받은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다.

칠칠절과 광야가 연결되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이 절기에 우리는 '룻기'를 함께 읽는다. 룻기는 기근과 빈곤이라는 메마른 상황 속에서도 선한 행실이 꽃을 피우고, 그것이 궁극적인 구속(구원)과 마침내 메시아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과정을 다루고 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참된 회개에 대해 선포한 말씀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내가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예레미야 2:2).

흥미롭게도, 성경의 네 번째 책인 민수기를 시작할 때 함께 읽는 두 개의 '하프토라(Haftorah, 안식일이나 절기에 읽는 예언서 예전 독회)' 본문이 있다. 종종 선지자 호세아의 말씀(호세아 2:1-22)이 낭독된다. 호세아는 메마른 광야와 대조적으로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라고 백성들에게 희망을 전한다.

예레미야 선지자와 마찬가지로 호세아 역시 처음에는 백성들을 꾸짖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이내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이렇게 대언한다.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그러나 안식일이 월삭(새달이 시작되는 날) 전날에 겹칠 때는 다른 특별한 하프토라가 낭독된다(사무엘상 20:18-42). 이 본문은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과 다윗 사이에 맺어진 깊은 우정을 다룬다. 시완월(Sivan)이라는 새로운 달을 맞이하며 5월 16일에 이 본문이 낭독되는 올해가 바로 그 경우다.

본문에서 요나단은 다윗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이토록 친밀하고 이상적인 우정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맺어진 언약적 유대 관계를 인간의 삶 속에 평행하게 보여주는 아름다운 그림이다.

모든 관계에는 늘 굴곡이 있기 마련이며,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백성들로부터 배신당하고 멸시받는다고 느끼실 때가 있다. 그러나 회개하고 기꺼이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태도는 매우 긍정적인 특성이며, 유대교에서도 이를 강력하게 권장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언약을 맺으시고 우리가 곁길로 빠진 후에도 끊임없이 그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는 것처럼, 우리 역시 이웃과 동료들을 대할 때 이와 같은 긍휼과 용서의 태도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다.

노예와 같았던 환경에서 해방된 유월절(Pesach)로부터 49일이 지나 칠칠절을 맞이할 때, 우리는 그 위대한 해방의 진짜 목적이 바로 '광야의 경험'이었음을 기억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40년이라는 시련의 시간을 견뎌냈고, 마침내 시완월 6일에 시내산에서 토라를 받게 되었으니, 이것이 곧 칠칠절의 기원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 다시 노예의 상태로 전락할 수 있는 우리의 잠재적 연약함을 기억함과 동시에, 이집트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신 기적 같은 구속의 은혜를 되새기기 위해 애쓴다. 유대인들은 광야에서의 험난했던 여정과 마침내 선물로 주어진 토라를 결코 잊지 않도록 배운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매일의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자 오늘도 치열하게 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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