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 강단 뒤가 아니라 ‘침묵하는 리더십’일 수 있다

티시 캐넌 작가. ©teasicannon.com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티시 캐넌의 기고글인 ‘교회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 (힌트: 항상 강단 뒤에 서 있는 사람만은 아니다)’[The most dangerous person in your church (Hint: It’s not always the one behind the pulpit)]를 4월 22일(현지시각) 게재했다.

티시 캐넌은 작가이자 강연가이며 ‘트루 컴포트(True Comfort) 팟캐스트’의 진행자이다. 그는 평생 배움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다른 이들이 예수님을 향한 건강하고 지속적인 헌신을 세워가도록 돕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만약 선장과 승무원이 전문적인 훈련과 자격이 아니라 단지 바다를 사랑하는 열정 때문에 고용된 크루즈 선박이 있다면, 그 배에 오르겠는가?

필자라면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음식과 엔터테인먼트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필자를 포함해 교회를 선택할 때 비슷한 방식으로 결정해 왔다. 우리는 단순히 편의나 분위기를 넘어, 우리의 영적인 삶을 맡기는 곳을 선택하면서도, 예배 음악이 좋은지, 어린이 사역이 흥미로운지, 설교자가 얼마나 열정적이고 카리스마 있는지를 중심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 나서 “은혜를 받았다”, “뭔가 얻었다”는 느낌이 들면 만족한다.

하지만 그 모든 방향을 책임지고 보호해야 할 사람들, 즉 장로들에 대해서는 거의 질문하지 않는다. 그들이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을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가정한다.

보이지 않으면,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수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신실하게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고 있다. 그러나 최근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이러한 ‘무비판적 신뢰’가 얼마나 큰 대가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유명 교회 지도자들이 비성경적이고 심지어 학대적인 행동을 오랫동안 반복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문제는 단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주변에 제대로 된 책임 구조가 없었다는 점이 더 큰 문제였다. 공동체를 보호해야 할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고, 결국 그 피해는 모두에게 돌아갔다.

건강하지 않은 교회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항상 강단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다.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자리의 사람이 더 위험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단순히 현대 교회의 리더십 실패가 아니다. 이미 하나님의 말씀은 이 문제를 예견하고 분명히 다루고 있다.

성경은 교회가 한 사람의 절대적 카리스마에 의해 운영되도록 설계되지 않았음을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은 공동 리더십의 구조를 세우셨다. 자격을 갖춘 장로들이 함께 교회를 이끌며, 바른 교리를 가르치고, 그것을 지키며, 경건한 삶을 본으로 보이고, 양 떼를 보호하도록 하셨다(디도서 1장, 디모데전서 3장).

이 자격 기준은 모호하지 않다. 교회 리더는 교만하지 않고, 쉽게 분노하지 않으며, 권력이나 이익을 탐하지 않아야 한다. 절제된 삶을 살고, 바른 교리 위에 서 있으며, 영적으로 성숙해야 한다. 최근에 회심한 사람은 그 자리에 설 수 없다. 리더십은 자유를 확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책임과 기준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많은 장로회가 단순한 ‘승인 기구’로 전락해 있다. 이미 내려진 결정을 추인하고, 문제의 징후를 외면하며, 어려운 대화를 피한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관계적인 이유로 죄를 지적하는 것이 배신처럼 느껴질 수 있다. 재정적 이해관계나 사역 협력, 직업적 안정성 때문에 정직한 말을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또는 목회자의 ‘기름부음’이 그를 책임 구조 밖에 두는 것처럼 오해하는 신학적 혼란도 있다. 때로는 단순히 좋은 쪽으로만 믿고 싶은 마음이 현실을 직면하지 못하게 한다.

어떤 이유이든 결과는 같다. 아무도 양 떼를 보호하지 않게 되고, 결국 모두가 위험에 노출된다. 그래서 성경적 자격과 준비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위험한 바다를 항해할 때 훈련된 승무원을 원하듯, 교회의 장로들도 준비되고 훈련된 사람들이어야 한다. 무엇을 믿는지, 하나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물론 신학 교육이 완벽한 교회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최소한 그 사람이 교리의 복잡성을 고민해 보았고, 교회가 어디에서 흔들릴 수 있는지를 이해하며, 무엇이 본질적인 진리인지 분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가 된다.

이러한 준비는 영원한 결과를 다루는 사역에서는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요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의심 많은 조사관이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분별하는 사람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태복음 7:16)고 말씀하셨다. 이는 우리가 실제로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교회를 보호할 장치를 이미 주셨다. 명확한 리더십 자격, 공동 감독, 그리고 책임 구조이다. 이것은 교회의 건강을 유지하는 일종의 ‘면역 체계’와 같다. 그러나 이러한 장치들이 무시되거나 무력화될 때, 보호해야 할 구조가 오히려 해를 끼치는 구조로 변할 수 있다.

특히 리더들이 서로를 바르게 이끌지 못할 때 그 피해는 가장 심각하게 나타난다. 신실한 리더들은 진정한 책임 구조를 필요로 하며 그것을 원한다. 그들은 어려운 질문을 받는 것이 배신이 아니라 성경적 사랑임을 안다. 통제되지 않은 권력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작은 타협이 반복되면 결국 문화가 되고, 그 문화는 사람들을 해칠 수 있다는 사실도 이해한다.

그들은 에스겔 34장에서 양 떼를 돌보지 않는 목자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고 공동체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섬기기를 힘쓴다.

물론 완벽한 교회도, 완벽한 리더도 없다. 그러나 더 성경적인 교회는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더 나은 질문을 통해 그것을 분별할 수 있다.

“이 교회가 마음에 드는가?”라는 질문을 넘어서, “누가, 어떻게 이 교회를 이끌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설교자가 은사가 있는가?”를 넘어서, “그는 책임 구조 안에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느낌이 좋은가?”를 넘어서, “이것이 성경적인가?”를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의 건강은 단지 리더십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속한 모든 사람의 삶과 믿음, 그리고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열정은 강력하고 전염성이 있지만, 그것은 성경적 자격이 아니다. 그리고 결코 책임 있는 리더십을 대신할 수 없다.

아무리 매력적인 사역이라도 방향을 잃을 수 있다. 그렇기에 교회를 선택할 때 이 기준을 붙드는 것은 평탄한 항해와 난파 사이의 차이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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